한 3분정도 걸었을까.  안경에 빗방울이 젖어 시야가 조금 흐려지고 빗방울이 속옷을 젖여 조금은 짜증나는 상황에서 대로를 벋어나 골목길에 막 접어 들려는데...

“얘..... 같이쓰고 가자...”   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목 뒤에서 들려온다.

반사적으로 획 뒤를 돌아보니 빗물에 번져 흐릿한 안경사이로 노란색 우산을 써서 얼굴은 가려졌지만, 비오는날 어울리지 않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흰색 플레어 치마를 입고 흰색 단화를 신은 여인이 뒤에서 우산을 민수쪽으로 내밀고 있다.

민수가 어쩔줄 모르고 머뭇 거리는데, 민수와 그 사람과 사이에 시야를 가로막던 우산이 들쳐 오르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찰랑거리는 머리를 한, 미인이라기 보다는 뭔지 풋풋한 느낌이 드는, 쌍커플이 짝짝이고 루즈를 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술이 놀랄만큼 선명한 붉은색을 가진 20대 초반의 여인이 살며시 웃음을 띄고는 우산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뭐라 말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민수를 대신하여 그 여인이 한 발자국을 떼더니 민수 가까이로 와서는 우산을 씌워준다.,

“어디까지 가니?”

“아  예.  저기 안쪽 슈퍼마켓 네거리에서 조금 더가면 됩니다.”

이 동네에서는 처음보는 분이였다.   비오는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보리 브라우스와 흰색  치마 그리고 아직 흙탕물이 묻지 않은 양말을 신지않은 단화가 그녀를 더욱 깔끔한 인상으로 느끼게 하였다.

“교련복 마크를 보니까, 계성고등학생이네...  우리 오빠도 거기 나왔는데...  명문고등학교 다니는구나...”

“지금은 뭐 평균화 되어서 그렇지도 않아요.”

“그래도 학교 기풍이라는게 있잖아.  우리 오빠가 계고 합격했을 때 우리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생각이 난다,...몇학년이니? ”

“1학년입니다.”

“그래...  어쩐지 얼굴이 아직 뽀송뽀송하더니만....  호호호...”

별로 나이차이도 안나 보이는 여인에게 약간 어린이 취급을 받아 민수는 부끄러움에 대답을 못하고 입을 닫았다.

약간은 어색한 침묵이 흐르며 또박또박 둘은 보폭을 맞추며 넓지않는 우산으로 두 몸을 가리며 걸음을 옮겼다.

보도가 파여있는 곳인지 빗물이 고여있는 작은 웅덩이가 나타났다.  그냥 보폭을 맞추며 걸으면 빗물에 신발속까지 젖을 우려가 있었다.

“얘야...   조기서 우리 폴짝 뛰어 건너자....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뛰어서 조기 넘어..?  알았지...?”

민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하나, 둘, 셋...”  하고 숫자를 세었고 반사적으로 민수는 우산이 흔들려 빗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웅덩이를 건넜는데

그녀는, 한손에 우산을 들고는 뒤따라 폴짝 뛰다가 물 웅덩이 끄트머리를 딛고는 약간 휘청하며 민수 앞으로 넘어질듯 쓰려지려하였다.

반사적으로 민수는 그녀에게 손을 뻗어 넘어질 것 같은 그녀를 잡다가, 민소매로 들어난 어깨 아래쪽 말캉한 살과 봉긋한 가슴의 촉감이 오른손 손바닥과 손목에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뭉클했다.

“아휴....  넘어질뻔 했네...  고마워...”

 씨익  웃는 그녀의 미소에 민수는 찰라이지만 느꼈던 그녀의 촉감이 부끄러웠다. 

다시 우산을 같이 쓰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빗줄기가 내리는 공기속에서 아까는 느끼지 못한 그녀의 향긋한 냄새가 느껴졌다.

숨을 깊게 드리쉬면 흔적없이 사라지지만, 얕은 숨을 쉬면 살며시 느껴지는 눅진한 공기속의 달콤한 내음.  샴프냄새인지 그녀의 체취인지...   민수는 약간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체취는, 그녀의 부드러운 팔과 가슴의 촉감을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뭐라 뭐라 날씨와 계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으나 민수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와 우산을 더 쓰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수는 그녀의 체취와 촉감을 느끼는 자신을 들킬까바 두려워졌다.

“저기....  이제 다 왔습니다.”

“어?  저 안쪽 슈퍼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어?”

“ 이골목으로 가면 지름길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민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골목길 안으로 빠르게 달려 들어갔다. 

“얘얘.....  조심해 넘어져....”하는 그녀의 인사가 귓전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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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좀 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비오는 날이 많았다.

민수는 그날 이후부터 한동안 방과 후 버스 정류장에서 내릴 때 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녀와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 보기도 하고,  우산을 가방에 넣어 두고는 비를 맞으며 귀갓길을 걸어도 보았으나,

다시는 우산을 씌어주는 사람도 그녀의 비슷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한 5-6분 이나 되었을까.  너무나 짧았지만,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 아이보리 브라우스와 흰색 플레어치마, 그리고 흰색 단화의 이미지.

짝짝이 쌍커플 눈과 선명한 붉은빛 입술...  그리고 손끝으로 전해진 촉.....감....

민수는 그날 이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언제나 문신처럼 그날의 기억이 선명이 드러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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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무얼 그리 곰곰이 생각하세요”

인사성이 바른 강대리가 자신도 커피 한잔을 들고는 창밖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민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건다.

“응?...  후후...  어떤 사람.”

“비오는날 생각나는걸 보니 혹시 첫사랑 아니세요..?  하하하”

민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