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얘기지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5년 쯤 되었습니다.

잠깐 외할아버지 얘기를 하자면, 교육청에 재직하시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아무 직업 없이 계셨는데...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도 좋아하시던 소주와 담배를 벗삼아서 자택에만 계속 계셨습니다. 간혹 일어나 주변만 왔다갔다하셨지만 그것도 아주 조금. 대부분 외할아버지 방에만 계셨지요. 소주는 알콜중독이란 말도 무색할 정도로 계속 드셨으니 언제나 약주에 쩔어계셨고, 담배는 하루에 88담배 한 보루는 금새 바닥날 정도였네요.

이런 나날이 반복되니까 안쓰는 몸은 퇴화되고, 머리는 퇴색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죠. 튼튼하셨던 다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앙상해져가고, 배에는 흔히 말하는 "술살" "술뱃살"이 늘어만가고,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언가 애매해지십니다.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치매로 치닫으시는거죠. 그래도 생전의 고집과 오기가 안꺾이셔서 끝내 집에 계시기를 고집하시다가 고집이 꺾일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셨을 때 겨우겨우 노인요양원에 입원시켜드렸습니다. 그런데 입원시키면서 약주를 안드시기 시작하니 치매 진행속도가 급격하게 늘어나더군요. 나중에는 제 얼굴 못알아보시더랍니다. 제가 손자/외손자 중에서는 둘째라 제 얼굴 보신지가 꽤 됐는데 말이죠.

뭐 고인께서 생전에 약주 좋아하신 것 때문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민폐 많이 끼쳤지요. 의식이 계셨을 때도 그랬는데, 치매가 진행되니까 그 폐라는 것이 정말 엄청나더군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웃과 싸우시고, 아파트 경비원님께 괜히 소란 피우시고.... 참 힘들었습니다. 그 쯤 되면 정말 살아계신 것도 짐이더군요. 건강도 안좋아지셨기 때문에 조만간 돌아가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생각보다 아주 오래 사셨지만, 돌아가셨을 때를 대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다 되어있었다는 것이죠.

군에 입대하기 몇년 전부터 그러셨는데 군에 들어가서 상병을 달 때까지도 여전히 요양원에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상병 말호봉 때 유격훈련을 다녀왔는데, 유격훈련이 끝나고 소속부대에 돌아와 훈련뒷정리를 하고있자니 갑자기 대대장이 부르더군요.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미 정기휴가는 다 써버렸고 외가쪽의 상에는 규정상 청원휴가가 따로 나오는 게 아니라서 말년휴가 사흘 잘라서 휴가를 받고 나갔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행군하고 물집잡힌 발바닥 질질 끌면서 휴가나갔지요. 그리고 피곤한 몸 이끌면서 시키는 것이라도 이것저것 했습니다.

당시에는 별로 슬픈 게 없었습니다. 일단 훈련에 지친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마음의 준비란 것도 대충 되어있을 뿐더러 장기간 지속되는 외할아버지의 병환에 다들 질려있던 탓도 컸네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음식 차리고, 상 치우고, 단순작업만 반복했네요. 나름대로 제 스스로 시니컬한 면이 크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네요. 저 뿐 아니고 다른 친지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올 때가 왔다... 는 그런 아무 생각없는 풍경들.

이게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고인을 배웅하기 위해 화장터에 갔을 때부터는 그게 아니더군요.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곡소리. 하나둘씩 흐느끼기 시작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겁니다. 그냥 한없이 슬프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고, 왜 고인 생전에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나 하는 후회감도 들고... 스스로는 나름대로 물질론적인 생각- 어치파 죽음이란 건 단백질덩어리로 변하는 것. 그것 뿐 - 을 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냉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조금이라도 생각했던 제 자신이 정말 웃기더랍니다. 그건 논리적인 생각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철없는 어린이의 바보놀음이었을 뿐이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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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이 중생들이 기거하는 이 세상에서 떠났습니다. 자살이라네요. 산에서 절벽 아래로 투신했다네요.
비록 제가 크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희망을 걸었던 사람이고, 그 사람과 관련된 투표에서 표를 던졌지만
저랑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이전에 한 국가의 원수직에 있었던 사람일 뿐이었지요.
긍정적인 면도 많았지만 실정도 많았고, 간혹 무모하게도 보였던 사람이기도 했구요.

분명히 냉정하게 생각하면 저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아야합니다.
그냥 일어나서 아침에 야구게임을 보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 하는 알바를 하러가는
주말에 늘 하는 일상을 반복해야했지요.
오늘도 알바는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서 먹고살아야하니까요.
하지만 다음주까지 꼭 해야하는 공부란 건 도저히 못하겠더군요. 알바시간을 제외하면 인터넷만 뒤적거렸습니다.

하루 참 깁니다. 슬픕니다. TV를 보면 허탈합니다. 울적합니다.
떠난 사람은 저에게 향하는 인연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 그 사람은 연이 많았던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머리 속이 하얗게 휑했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화장터에서 떠나보낸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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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하는 알바는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겁니다. 동네학원이라서 수강생이 많지는 않지요.
오늘은 한 클래스당 2시간씩 배정된 수업에서, 1시간 정도는 떠난 사람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적어도 오늘을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름 똑똑한 애들이기는 하지만 놀랍더군요. 의외로 차분한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고인의 업적이라면 업적일 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