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요,
생각해보면 세상엔 신기한 일들이 참 많아요.

오늘 케잇냥의 손을 잡고 대학로를 걷다가 곧 홍대에서 와우북 페스티벌을 시작한다는 현수막을 봤어요.
작년 가을 슬슬 반팔을 옷장 속에 넣어놓고 긴팔을 입고 다닐 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니다, 그때는 좀 더 쌀쌀했지. 역시 지구는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군요.
그때 우린 손을 꼬옥 잡고 이책 저책 구경하러 돌아다니면서 지름신을 억제하고 있었죠.
말씀드리는 순간 빠른 속도로 날고 있는 모기 한 마리를 빛의 속도로 잡았습니다. 모기는 일정 기온 이상에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면서요? 늦여름, 초가을에 기승을 부린답니다.
지름신을 억제하면서 '이 사람이랑 같이 살면 책장에 책 꽉꽉 채우면서 살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었죠.


그 뒤로 1년이 지났네요.
이성을 1년 넘게 만나본 적이 없어서, 한 사람과 보냈던 가을을 다시 맞이하는 일은 짧은 인생을 지나면서 한 번도 없었어요.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져서 바삭바삭해지면 이리저리 어린아이처럼 밟으러 깡총거리면서 일식집의 깻잎튀김 씹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면 괜히 입속이 허전해지고, 교정에 가득한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이 악취를 풍기며 땅바닥을 더럽히면 코를 쥐어잡고 피한다던지, 혹은 은행을 주우면서 소일거리하시는 아주머니들께 붙잡혀 죄없는 은행나무에 강한 플라잉 하이킥을 작렬시켜 환호성을 듣곤 했죠.
가을엔 낡은 검정색 재킷 깃을 세우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괜히 손질하지 않은 부시시한 머리에 입가엔 담배를 물고 길을 홀로 걷는 남자였죠. 마음도 흔들리고, 눈빛도 흔들리고, 손짓도 흔들리고, 나무도 흔들리고.


그런 가을이 작년에는 따뜻한 가을이 되었어요.
다른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음..
손을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고, 때로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딸한테 김치 싸주는 친정어머니의 넉넉하고 애정어린 손길처럼 내 마음을 듬뿍 담아 싸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신기해요. 인연이란 건.


더더욱 신기한 사실은..
이제 두 번째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거에요.
작년하고 서로가 처한 상황은 달라진 것도, 같은 것도 있지만, 한 사람과 같은 계절을 또다시 보내게 된 사실이 제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좋아하고, 고마워요 케잇냥..





(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