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근처 고등학교에서 텝스시험을 보았습니다.

고사장 안에서 제 자리는 창가쪽 뒤에서 세번째 자리!!
제 뒷자리에는 키 165가량의 다부져 보이는 50대 아저씨가 츄리닝을 입고 있었습니다.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듣기 시험을 치뤘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뭔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나오더군요.
귀를 쫑긋! 세워가며 집중력을 쏟아내던 순간
어딘가에서 진동이 울리더군요.
정적이 흐르던 교실에서 그 소리는 너무나도 크게 들리더군요.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몇 문제에서 집중을 놓쳤습니다.
듣기시험 중이라서 그런지 감독관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법,어휘,독해 뭐 이런 걸 하게 됐지요.
황당하게도 복도쪽 맨 뒷자리 사람이 시험 못치겠다며 나가버렸습니다.
당황한 감독관이 복도로 따라나가고
뭐라뭐라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잠시 후 복도에서 누가 들어와서 고사장 감독관이랑
뭐라뭐라 궁시렁궁시렁!
그리고 제 뒷자리 사람에게 뭐라뭐라 궁시렁궁시렁!!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집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제 뒤에서 들리는 대화내용은...
핸드폰 울렸다고 민원이 들어왔으니 시험장 밖으로 나가달라.
국가위기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왜 이걸 이해하지 못하나.
뭐 이랬습니다.

그리고 복도에서 들어온 사람 나가고,
잠시 후 다시 들어왔다가 나가고,
또 들어와서 강력하게 제 뒷사람에게 궁시렁궁시렁~

곳곳에서 들리는 한숨소리!
저는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제 뒷사람의 목소리 크기가
이미 일상대화할 때의 소리보다 커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뒤돌아보며 한마디 했습니다.
짜증스런 말투로 "조용히 좀 해주세요."
좀 수그러들거라고 예상했으나
되려 화를 내며 "뭐라고?"
이런 쉬바르~! "시험중이거든요..>.<"
갑자기 뒷골이 땡기면서 무개념 아저씨를 향한 폭력행사의 욕구까지 치밀어올랐지만
저까지 시험장에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감독관이 이전보다 강하게 퇴실을 요구했고,
개념없는 아저씨는 문까지 걸어가면서도
왜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냐고 난리더군요.

저한테 미안하다는 감독관의 한마디가 있었지만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겠더군요.
그 시간 이후로 시험을 치룰 수가 없었습니다.
500점 넘는 성적표가 필요해서 치른 시험이었는데
결과는 꽝이 되었습니다.

시험시간이 끝나고 감독관이 양해해달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제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군인이고 계급은 대령.
참고로 4월 5일에 북한에서 인공위성(?)을 쐈습니다.
감독관의 말로는...
시험 시작 5분전에 긴급비상상황이라서 핸드폰을 끌 수 없다고 하였고
감독관은 시간이 없어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먼저 나간 사람이 고사본부에 신고했고,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더군요.

저는 어이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긴급비상상황인데 영어시험은 도대체 왜 치러 옵니까?
1년에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달 아니면 다음달에 보면 되고~
군인은 응시료도 반값인데 국가안보에나 힘쓸 것이지
시험장에는 왜 오는건지~ㅡ.ㅡ;
퇴실하라고 했을 때 국가안보가 어떠니 하면서
사람들이 왜 이해못하냐는 권위적인 태도는 도대체 뭔지~
나이어린 놈이 조용히 하라고 하니...
자기눈에는 짬도 안되는 쉐이로 밖에 안보였나봅니다. 미친~

진급에 눈이 멀어서 북한이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 쏘는 날
영어시험치는 대령이 별을 단다면... 이 나라 정말 깜깜합니다.
이런 일을 계기로 개념없고 얼빠진 군인들의 사고체계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저는 거센 항의의 대가로 1회 무료응시권을 받았습니다. 제기랄~
또한 그 개념없는 대령양반은 2년간 시험 못치게 됐다더군요.


여기서 재미난 사실 하나는...
먼저 퇴실했던 사람 역시 군인이며, 계급은 대령이랍니다.
그 사람도 비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휴대폰이 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시험치다 머리에 쥐가 났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진급심사대상자로서 휴대폰 울린 자의 발목에강한 태클을 남기고 갔다더군요.
한마디로 물귀신 작전이지요..ㅋㅋ


쓰고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