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건 훼이크...라고 할수만도 없겠군요
(사실 독거노인이라는 표현 자체를 안 좋아해서 그것만 훼이크입니다)

유명한 모 평론가가 왕가위 영화를 설명하면서 "<화양연화>가 훌륭한 것은 <2046>을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것과 얼추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아야 그 의미가 확실해집니다.
몇몇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던 장면들이 확실해지더군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감독 샘 멘데스는 아시다시피 케빈 스페이시 주연 <아메리칸 뷰티>의 감독이고
<타이타닉>의 헤로인인 케이트 윈슬렛의 남편 되겠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이 커플을 다시 맡은 영화로 기대를 모았죠.
(그들의 동반 출연과 여주인공과 감독이 부부인 사실이 중요한 것인가? - 어떤 면에서는요)

 
<아메리칸 뷰티>의 마지막 부분
- 케빈 스페이시는 "내가 이렇게 소중한 가족을 두고 이제까지 뭘 한 것인가"라고 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뒤늦게 이야기하다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습니다.
총을 맞고 머리에 구멍이 난 채 피를 흘리는 그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지요.
케빈 스페이시의 딸과 야반도주하는 대마초를 파는 옆집 소년은 (그가 새의 시체를 보고 그랬듯이)
그의 죽음을 아름답다는 듯이 바라봅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느니 죽는 게 낫거나 더 아름답다고 하는 영화입니다.
그 가족이란 서로의 욕망을 억압하고 더 이상 서로에게 판타지를 갖지 못하는 관계지요.
그래서 그들은 바람을 피거나, 딸의 친구에게 욕정을 품을 때 활력과 에너지, 상대에 대한 판타지를 되찾게 됩니다.
가족이란 처음에는 소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판타지가 고갈되어 가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 강제적 유지에는 폭력이 동원되고(아버지는 권위를 잃어가나 아버지는 그걸 되찾으려고 군림하려 들고)
자기 욕망에 대한 억압이 가해지며 행복에 대한 상상력이 마비됩니다.
이건 죽은 상태와 별 다른 게 없죠.
이 상태를 벗어나려면 (딸처럼) 가족을 떠나거나 버려야 하는데
케빈스페이시는 그걸 실천하다가 가족에게로 돌아오려 합니다.
죽음과 다름없는 가족 관계를 유지하느니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고 가족에게 벗어나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일게죠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아메리칸 뷰티>의 다른 판본이며 <아메리칸 뷰티>에 대한 친절한 해설입니다.
이번엔 아예 가족을 유지하는 것과 타협도 불가능하게 못을 박더군요.

샘 멘데스가 부인인 윈슬렛에게 두번의 섹스 장면을 연출한 것은(사실은 더 많이 과격하게 넣었을듯)
자신의 가족 관계의 보수적 유지에 관한 금기를 상상력으로 뒤흔든 것이고,
영원한 마스터 커플일 것 같았던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을 일부러 캐스팅한 것은,
예전의 레전드 커플이 부부가 돼서 후에 그 관계가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배가시키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이란 그 관계의 존재 자체가 보수적인 것일게죠
가족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영화를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젊은이는 가족을 생각해서 접고 공무원 시험 보든지, 자격증 따든지 해야 합니다.
가족 때문에 행복에 대한 '레볼루셔너리'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 한 거죠.
결혼을 해도 처음엔 좋지만 서로에 대한 판타지가 점점 줄어들고 사실상 의무적 관계만이 남습니다.
그걸 '가족은 소중하다'라는 절대 이데올로기에 복종하고
(한국에는 게다가 이 가족 이데올로기의 여러가지 강화 변형본이 있죠 무슨 동문 향우회) 
'또 다른 나인 내 자식의 계급상승'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사교육 투자하며 견뎌나가는 것일테죠.
물론 제 생각이라기보다는 샘 멘데스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결혼이란 할 게 못되고 독거노인으로 평생 살거나 결혼을 했으면 하루 빨리 깨는 게 좋은 겁니다?
..라고 이 영화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건 누가 '담배 끊어라'고 했다고 '너는 왜 내 정신 건강을 억압하냐'고 반문하는 것하고 비슷하겠죠
현재 가족 관계가 가짜라면 거기에 노력하는 것 또한 가짜 노력이라는 거겠죠
가짜인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