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그냥 걷기 보다가 생각났어요.
제가 젊을 적에(...) 지리산 종주를 함 해보자! 하고 여름에 짐싸서 떠난 적이 있었거든요.
대딩 1학년때 떼거리로 지리산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냥 저냥 갔다올만 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보니 그때 집에 있던 군용담요를 가볍고 따뜻하겠지, 하고 들고 갔었는데 웬걸ㅠㅠ 이건 누가 군인들 못살게 굴려고 만든 건가요. 하나도 안 따뜻하고 무겁기만 하더군요ㅠㅠ 이불에 깔려 죽는 줄 알았어요ㅠㅠ
암튼 짐을 바리바리 싸서 동네 전철역까지 갔는데 짐이 너무나 무거운거에요(...)
전철역 벤치에 널부러져서 걍 가지 말까 아니면 집에 가서 이불을 내려놓고 올까 고민을 잠시 했는데 다행하게도 예매한 기차 시간에 너무 바투게 나와서 할 수 없이 기차를 타러 갔습니다.
그렇게 준비 안 하고 떠났는데 고생없이 잘 다녀온 걸 보면 산이 참 너그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산에 갔더니 의외로 혼자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때는 여덟 명쯤 뭉쳐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봐야 길이 갈라질 때까지 두세시간 함께 다니던 것에 불과하지만 책에서나 보던 어, 저도 혼자 왔어요, 같이 가요, 를 제가 하고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근데 제가 산행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지도를 보면서 오늘 이만큼 가면 네시에는 산장에 도착하겠지 하고 여정을 짰는데 여덟 시쯤 되어서 사방이 컴컴한데 아직도 산장은 안 나타나고 있으면 참 정말 흑흑 나 산에서 조난당하는 거 아닐까 하면서도 기어가는 속도로 가다보면 산장이 드디어 나타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러는 저녁을 세번 보냈습니다. 달이 휘영청 밝은 것 같은데 발밑은 제가 맘놓고 걷기에는 어둡고, 그러면서도 사위가 밤안개에 희미하게 떠오르던 그 밤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요.
그렇게 도착한 산장에서는 이불을 500원에 빌려주더군요.ㅎ 숙소가 남녀 나뉘어 있는데 남자쪽 숙소는 자리가 없어서 복도에서도 자고 그랬다던데 저는 여자쪽 숙소 끝에서 뒹굴면서 잤습니다.ㅎㅎ
그때 배낭이 너무 무거워서, 이거 집에 가면 꼭 무게를 재봐야지, 틀림없이 20킬로그램은 넘을거야 했는데 집에 와서는 까맣게 잊고 삽시간에 해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ㅎ 머 10킬로그램이나 되었으려나요.

그후로 작년까지도, 여름이면 그때 못 가본 길로 다시 가야지 하고는 못 가고 있네요.
게다가 그때야 젊을 때라(...) 훌쩍 떠났지, 지금은 정말 그 배낭 메고는 전철역까지도 못 갈 것 같아요. 음 역시 새해에는 운동을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