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울므당의 은은한 회동이 있는 날이었어요

오늘의 스케쥴은
이촌동 미타니야에서 7시에 저녁을 먹고
8시에 루시파이에서 파이를 먹고
9시에 디저트 카페에 가는 거였어요

근데 제가 생각을 해 보니
1시간 내에 밥을 다 먹고
도보 15분 거리의 파이집까지 간다는 건
좀 힘든 일 같았어요
 
그래서 6시쯤 그 근처에 가서 파이를 미리 사서
약속 장소에 갔어요

약속 시간은 6시 50분이었는데
저는 당원들에게 이미 공지로
'7시 예약이기 때문에 6시 50분에 칼같이 출발합니다.
늦게 오시는 분은 이렇게 이렇게 알아서 찾아오세요.'
라고 예고를 드렸어요

사실 3-1번 출구에서부터 가기 어렵지는 않은 길인데
일부러 복잡하고 길게 설명을 썼지요

6시 40분이 되자
제일 먼저 ㅊ양에게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어요

저는 문자를 받고
이 분이 드디어 제 번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전화를 해서 어디쯤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려는데
그 분이 먼 곳에서부터 한눈에 저를 알아보셨어요
한 다섯 번쯤 만나고 나니
저를 정말 알아보기 시작하신 거예요!

그렇게 ㅊ양과 감격의 상봉을 하고
나머지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출구 안쪽에서 ㅌㅇ님과 a양이 함께 나타나셨어요

길고 복잡한 공지에 겁을 먹고
이미 10여 분 전에 도착해 계셨던 ㅌㅇ님은
저를 보자마자 시간을 확인하신 후
'자, 50분이니까 얼른 칼같이 출발해요'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원래 55분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미타니야를 향해 출발했어요

우리가 절반 정도 왔을 때 (시간 상으로는 한 2분?)
ㄱ양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지금 ㅈ양과 같이 출구로 나왔는데
1분 사이에 정말 출발한 거냐며 부랴부랴 쫓아오셨어요

결국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미타니야에 도착했고

가츠동과 카레우동, 사케오야꼬동, 문어튀김 등을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어요

ㄱ양이 '맛있다'는 얘기를 몇 번 했는지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암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나온 그 분은
동네 부동산에 붙어 있는 매물 시세들을 일일히 확인하시고
이촌동 이사 계획을 세우셨어요

전세 9억, 매매 25억 이런 숫자들에 좀 움찔하시긴 했지만
정 안 되면 3-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꽃게 놀이터를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점거해서 획득하자는 plan B도 나왔으니까요,
ㄱ양이 그 꽃게집에서 환갑잔치를 열게 되면
베팍 유저분들도 모두 초대하기로 했답니다

근처의 P 카페로 이동한 후에는
아메리카노, 아이스 라떼, 핫초콜렛, 젤라또 등을 사서
페퍼민트 초콜렛 파이, 피칸파이, 레몬머랭과 함께 먹었어요

여러 가지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중요한 것은 a양이 요즘 재즈댄스 수업을 들으면서
아브라카다브라를 마스터했다는 사실이에요

요즘 저에게 자꾸 아브라카다브라 춤 어쩌구 하시는 불량한 유저들이 몇 분 계신데요
(정확히는 두 명 : ㄱㅍㅇ님과 ㄱㅂㅇㄱ님)
앞으로 그와 관련된 리퀘스트는 간지작살 a양에게 하시면 되겠습니다


디저트인 파이를 다 먹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자
시간은 겨우 8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어요..
밥 먹는데 15분, 디저트 먹는데 20분이 걸리다니
원래 처음 계획대로 움직였어도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요즘 야구를 끊고 공부만 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던 ㅈ양은
중간 중간 DMB로 엘지와 삼성의 경기 스코어를 계속 확인했는데,

마침 DMB를 다시 켰을 때
9회초 엘지 공격 무사 만루의 상황이 펼쳐져 있자
흥분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어요

ㅈ양의 양옆에 앉은 두 롯데팬(저와 ㄱ양)이
'엘지팬의 설레발은 될 일도 그르친다'며 진정을 시키고자 했지만
그녀의 엘레발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짧은 플라이로 주자 못 들어온 채 원아웃이 되었어요


그 순간 차분하게 앉아 사태를 주시하시던
ㅌㅇ님(역시 엘지팬)께서 조용히 입을 열어

'하아.. 어디 보자. 그렇다면 이제.. 병살?'
하시자

대략 1분 후 이진영이 정말 병살을 쳤고
엘지의 공격이 끝났어요

모두가 ㅌㅇ님의 신통력에 놀라 어찌된 것이냐 물었더니
그 분은 그저 겸손하게  
'무사 만루에서 점수를 낸다면 그건 엘지가 아니다'
라는 한 마디를 남기실 뿐이었어요

ㅈ양이 공수 교대에 DMB를 끈 후에도
경기 결과를 계속 확인하고 싶어하자
ㅌㅇ님께서 다시 그녀를 만류하시며

'어찌 됐든 이 경기는 이길 것이다. 지금은 보지 말라'
하셨는데

나중에 경기 결과를 확인하니
정말 엘지가 이긴 것이었어요......

우리는 더욱 깜짝 놀라 '옥보살님'이라 부르며
그 분을 칭송했습니다

옥보살님은 ㅊ양(한화팬)에게 직접
다음 해의 한화팀 감독을 예언하시고 축복을 내리셨는데
어쩐지 ㅊ양은 그 예언을 듣자 기운이 쭉 빠진 상태가 되어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라는 말만 반복했어요

그렇게 10시반까지 재미있게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나와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다행히 6명 중 3명이 우산을 가지고 와서
사이좋게 둘씩 나눠쓰고 걸어갔지요

제일 먼저 ㅈ양을 보내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빈 차가 오지 않아
또 옥보살님께 여쭤보았어요
'보살님, 택시는 언제 오는 것입니까?'

보살님께서는
'다음 신호에 올 것이다'

그러자 과연 다음 신호에 빈 택시가 나타났고
ㅈ양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드리고 집에 갔어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ㄱ양의 꽃게집에 들러 내부를 확인하고 사진을 한 장 찍고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했답니다

오늘의 결론 :
하루 한 번 옥보살님을 외치세요
이 분은 세 번까지도 필요없습니다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