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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경제공황기의 전설적인 은행털이범인 존 딜린저와 그를 뒤좇는 멜빈 퍼비스의 일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하지만 마이클 만 감독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조직에서 벗어난 남자와 조직에 들어간 남자와의 대립에 있습니다.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딜린저를 꽤나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행돈 외에는 일반인들의 돈에는 손을 대지 않고 여자들에게 꽤나 신사적입니다. 여자를 조심하라는 동료의 경고에도 여자가 없는 삶은 감옥과 같다고 응수합니다.

영화 초반에 딜리저가 감옥에서 탈출을 할때 그를 막는 간수에게 딜린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영웅으로 죽을래? 겁쟁이로 살래?" 그건 어쩌면 딜린저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짧고 굵게 살고 싶었던 욕망. 하지만 그의 시대는 얼마 못가서 막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은행털이 사업도 이제는 한물가기 시작합니다. 그와 알고 지내던 동료들은 경마 조작에 손을 대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니까요. 암투와 배신 속에 딜린저의 조직은 점차 와해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에드가 후버가 이끄는 FBI 조직은 점점 강력해집니다. 그 최전선에 민완 수사관 멜빈 퍼비스가 있는거지요. 어떻게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은행털이범과 같은 낭만적인 도적들은 하나 둘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보다 강력한 범죄 조직과 그에 대항하는 FBI 조직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실망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마 멜빈 퍼비스와 존 딜린저의 마지막 대립이 싱거웠다는 것일 겁니다. 딜린저는 영화관에서 나오다가 뒷통수에 총을 맞고 죽습니다. 하지만 (범죄) 조직에서 추방된 자가 (FBI) 조직에 개죽음을 당한다는 면에서 이보다 적절한 결말 없었다고 봅니다. 대공황기 갑자기 직장에서 실직을 당했던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뒷통수를 후려 맞았던 딜린저와 같은 인물들일 겁니다. 실업률이 나날이 치솟고 있는 경쟁 불황기에 딜린저의 이야기를 본다는 것은 야릇한 울림이 있습니다

재밌는 건 영화 속에서 존 딜린저는 멜빈 퍼비스가 이끄는 수사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처럼 수사관들은 딜린저를 영원히 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딜린저는 그의 애인에게 자기가 떠나갈 곳은 쿠바보다 먼 곳이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딜린저는 수사관이 그를 사살함으로서 그들이 영원히 좇아 갈 수 없는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죠.

조직에서 살아 남았던 멜빈 퍼비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이클 만 감독은 자막으로 퍼비스가 자살을 했다고 후일담을 들려줍니다. 그 역시 삶이 순탄하지 않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직이 와해되어 죽은 자와 조직에 들어가 죽은 자와의 대결이었다고 할까요. <퍼블릭 에너미>는 모처럼 재밌게 본 갱스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