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는 좋은 인재가 없다고 탓하고 학자는 좋은 책이 없다고 탓하며 여행가는 좋은 산수가 없다고 탓한다. 그러나 좋은 인재, 좋은 책, 좋은 산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에 달린 문제다. 윤기(尹愭)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천하에 좋지 않은 사람은 없고, 좋지 않은 책은 없으며, 좋지 않은 산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취하는 방법이 어떠한가가 문제일 뿐입니다. 저 좋은 사람이 없다는 ‘무호인(無好人)’이라는 세 글자는 정말 학식이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1) 좋은 책이나 좋은 산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 천하 후세 사람을 그릇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이 말이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대개 그 근본을 소급하여 따져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품부 받았으니 이 성품은 본디 선한 법인지라, 그 사이에 애초에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따로 있었던 적이 있었겠습니까? 오직 그 기질에 구애되고 물욕에 의하여 가려진 것인데, 그 말단을 살펴보면 어쩌다 가지런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실질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글자가 만들어진 이래 바로 이러한 책이 있었으니, 삼분(三墳)과 오전(五典), 팔색(八索)과 구구(九丘)2)에서부터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책3)에 이르기까지, 어떤 책은 의리의 영역에 대하여 거듭하여 따졌고, 어떤 책은 치평(治平)의 계획을 연역하기도 하였으니, 어떤 책이든 좋지 않은 것은 없지만, 수천 년 사이에 오직 사람이 가지런하지 못함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왕왕 좋은 책과 배치되는 것이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산수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온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모두 산과 물입니다. 두텁고 무거워서 옮길 수 없으니 나는 그것이 산인 줄 알고, 두루 흘러 막힘이 없으니 나는 그것이 물인 줄 압니다. 비록 어쩌다 기상(氣象)과 경계(境界)가 같지 않음이 있기는 하지만, 요컨대 모두가 좋은 산수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인은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긴다는 가르침이 있었지만,4) 그렇다고 산과 물에 좋다는 호(好)자를 붙인 적이 없었으니, 그 즐길 만한 모습을 즐긴 것일 뿐입니다.

  이를 가지고 본다면 사람은 절로 좋은데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고, 책은 절로 좋은데도 읽지 않을 때가 많으며, 산수는 절로 좋은데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을 알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산수를 보는 데 뜻을 둔다면, 우리 눈앞에 있는 사람이나 책상 위의 책, 그리고 눈과 발이 미치는 산수는 모두 이른바 좋다고 말할 만한 것이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어찌 꼭 특별한 사람을 알아야 하고 특별한 책을 읽어야 하며 특별한 산수를 본 다음에야 비로소 평소의 소원을 통쾌하게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더 따져보겠습니다. 좋다는 호(好) 한 글자를 붙여놓고도 마음은 이미 절로 좋아하지 않으면 또 어찌 진짜 좋은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좋은 사람과 좋은 책과 좋은 산수라는 말을 붙인다면, 그 마음에 범상한 말과 범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온 천하가 함께 읽는 책,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산수는 팽개치겠다고 하는 것이요, 구하고자 하는 바는 기괴한 물이나 괴벽한 문장, 세속과 단절된 빼어난 땅일 것입니다. 이는 비록 죽을 때까지 분주하게 다니면서 몸과 마음을 다하더라도 끝내 과보(夸父)가 해를 따라 가려 한 우려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5) 비록 이런 좋은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 또한 내가 이른바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니, 어찌 귀하게 여길 만하겠습니까?

  저는 예전에 좋은 사람을 다 알고 좋은 책을 다 읽고 좋은 산수를 다 본 사람은 우리 주자(朱子) 선생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알고 지낸 사람으로는 장식(張栻)과 여조겸(呂祖謙), 채원정(蔡元定), 황간(黃榦) 등이었고,6) 읽은 글은 시골 선비들과 함께 글자를 짚어가며 읽은, 남아있는 단 몇 권의 책이었으며,7) 본 것은 봄날 한 번 오른 무이구곡(武夷九曲)이었기 때문입니다.8) 이 외에 다시 무엇을 구하였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군자가 원하는 바는 정말 기이함이 지나쳐서는 아니 되며, 또 반드시 진짜 좋은 것을 기다린 다음에야 바야흐로 그 원할 만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만일 어쩌다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속물로서 흥을 깨었다는 탄식이 나오게 하고,9) 글을 읽었는데 비루해서 협오스럽다는 말이 있게 하며,10) 유람하며 완상을 하였는데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다고11) 한다면, 이는 또한 도리어 안 적도 없고, 읽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어 도리어 아무런 폐단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어찌 한 가지로 논단해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기록하되, 책을 읽고 산수를 본 좋은 사람을 우리 시대에 한 번 만나 고상하게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집사(執事)께서는 이 문제를 들어 질문을 하셨으니, 집사께서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저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1)《소학》에 “좋은 사람이 없다는 세 글자는 덕이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無好人三字, 非有徳者之言也]” 라 하였다.
2) 고대의 서적인데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공안국(孔安國)의 설에 따르면 삼분은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의 글이고, 오전은 소호(少昊)ㆍ전욱(顚頊)ㆍ고신(高辛)ㆍ요(堯)ㆍ순(舜)의 글이며, 팔색은 팔괘(八卦)에 대한 글이고, 구구는 구주(九州)의 지리지를 가리킨다.
3)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의 저술을 가리킨다.
4) 《논어》에서 이른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는 말을 가리킨다.
5) 과보가 제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해를 쫓아가고자 하여 우곡(嵎谷)까지 갔는데, 목이 말라 하수(河水)와 위수(渭水)의 물을 마셨지만 물이 부족하였고 이에 다시 대택(大澤)으로 가서 물을 마시려 하였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목이 말라 죽었다는 고사가 《열자》에 보인다.
6) 모두 송나라의 학자로 주자와 절친한 벗이었다.
7) 주자가〈진동보에게 답하는 편지[答陳同父書]〉에서 “나물뿌리를 씹어 먹고 남과 서로 간섭하는 일 없이 몇 권의 읽지 못한 책을 이해하여 시골의 선비들과 글의 자구나 따지는 것 또한 한 가지 일거리입니다.[咬菜根, 與人無相干涉, 了却幾巻殘書, 與村秀才子, 尋行數墨, 亦是一事]”라 하였다.
8) 주자가 살던 무이산(武夷山)에 아홉 굽이가 있어 무이구곡이라 하였는데, 주자가 구곡시(九曲詩)를 지은 바 있다.
9) 삼국시대 위(魏)의 혜강(嵇康)과 완적(阮籍) 등이 죽림(竹林)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적에 왕융(王戎)이 오자, 완적이 “속물이 또 와서 사람의 흥치를 깨뜨린다.[俗物已復來敗人意]”라고 핀잔을 준 고사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보인다.
10) 주자가 《주자어류》〈식미(式微)〉에서, 전에 아무의 시를 보았는데 내용이 비루해서 혐오스럽다고 한 말을 인용한 듯하다.
11) 소식(蘇軾)의 시 〈제서림벽(題西林壁)〉에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으니,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하였다.
 
 
조선 말기의 문인 윤기는 글을 잘 지어 1791년 유생을 대상으로 한 제술 시험에서 1등을 한 바 있다. 그의 문집에 수록된 산문은 문(文)과 책(策)으로만 양식이 구분되어 있다. ‘문’에는 전통적인 다양한 양식이 두루 수록되어 있지만 ‘책’만은 따로 구분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제목을 받아 지은 글을 모은 전책(殿策) 23편과 과거 시험관으로부터 제목을 받아 지은 글을 모은 책(策) 80편이 실려 있다. 또 ‘책제(策題)’라 하여 책문의 제목에 대한 글을 다시 19편 실었다. 과거를 이렇게 많이 보았을 리 없으니, 스스로 과거시험 문제를 내고 스스로 답안을 쓰는 글을 지은 것이라 하겠다.

  〈좋은 사람 좋은 책 좋은 산수〉라는 이 글 역시 그 중 한 편이다. 시험 문제의 연원은 송(宋)의 조사서(趙師恕)라는 사람의 고사에 있다. 조사서는 평소 세상의 좋은 사람을 모두 알고, 세상의 좋은 책을 모두 읽고, 세상의 좋은 산수를 모두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 하였다. 시험 문제는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좋은 책이 어떤 책이며 좋은 산수가 어떤 산수인가를 답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윤기가 제출한 답안의 핵심은 이러하다. 좋은 사람이나 좋은 책, 좋은 산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진리는 평범한 데 있다. 범상한 언행을 하는 사람, 온 천하가 다 읽는 책, 늘 가까이 하는 산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과 책과 산수가 좋은 것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18세기는 기(奇)를 추구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벽(癖)이라는 문제에 대한 책문에서 윤기는 이렇게 답하였다. 벽은 사람들이 편벽되고 매우 좋아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정의하고 이는 하나의 질병이라고 하였다. 마땅히 벽으로 삼아야 할 것을 벽으로 삼는다면 그 벽이 심할수록 아름답지만, 이때는 이미 병이라 할 수 없고, 벽으로 삼아서는 아니 되는 것을 벽으로 삼는다면 벽이 심할수록 병이 심해지니 이를 일러 벽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학문을 좋아한다 하여 학벽(學癖)이라는 말은 없고 도를 독실하게 믿는다 하여 도벽(道癖)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예를 들었다. 진리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음식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 함께 즐겁게 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하여 진리를 좋아하는 것을 벽이라 부를 수 없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만큼, 어진 이를 어질게 대접한다는 말이 있다 하여 어진 이를 어질게 대접하는 것을 벽이라 불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윤기는 그 차이를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 좋아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신기를 추종하는 것이 벽이라 하였다.

  특이한 사람, 이상한 책, 신기한 산수만을 찾으려든다면,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과 책과 산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다면 평범한 사람, 흔한 책, 가까운 산수가 오히려 가장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글쓴이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저서(역서)
- 해동강서시파연구, 태학사, 1995.
-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 浮休子談論, 홍익출판사, 2002.
- 조선의 문화공간(1-4), 휴머니스트, 2006.
- 우리 한시를 읽는다, 돌베개,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