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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잊혀진 지명이 많다. 송동(宋洞)도 그러하다. 송동은 거유 송시열(宋時烈)의 경저가 있던 곳이라 그 성을 따서 동네 이름으로 삼았다. 송동은 송시열로 인하여 생긴 동네인데 조선 후기 도성 안의 중요한 문화 공간이었다. 홍직필(洪直弼)의 글을 따라 송동으로 가보자.
 
  
 
   
   백악(白岳)의 한 줄기가 구불구불 동으로 내려오면 응봉(鷹峰)이 되는데 응봉은 창덕궁과 창경궁 두 궁궐의 진산이 된다. 창경궁 동쪽은 성균관이고, 성균관 동북쪽에 송홍동(宋洪洞)이라는 동네가 있다. 어떤 연유로 이러한 명칭이 생긴 것인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선조가 이곳에 세거하였고 우리 선조 판윤공(判尹公)께서 조선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판한성윤(判漢城尹)이 되어 숭교방(崇敎坊)에 집을 정하였는데 또한 바로 이 구역이다. 후에 자손이 번창하여 반수(泮水) 동서쪽에 흩어져 살았기에 세상에서 “서울 동촌은 땅 가득 홍씨들이라(洛陽東村滿地洪)” 하였다. 이것이 그 명칭이 생긴 유래다.

  이 구역은 마을 전체가 넓고 트여 있으며 지세가 원만하면서 반듯하다. 또 산수가 절경이고 바위가 10척 이상 높다랗게 솟아있는데, 고고한 자태가 빼어나다. 각이 져 있으나 칼날처럼 날카롭게 드러나 있지 않으며 맑아서 마치 옥돌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고운 모습으로 은은하게 솟아 있어, 벽옥처럼 푸른빛이 엉겨 있네(隱起磷磷狀, 凝成瑟瑟胚).”1)라고 한 것이 이 바위를 위하여 준비해 둔 말인 듯하다. 우암이 ‘증주벽립(曾朱壁立)’이라 큰 글씨를 써서 바위에다 새겼는데 은줄과 쇠사슬을 얽어놓은 듯 굳세니, 늠름한 그 기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바위에 틈이 있어 겨우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수 있는데 물과 흙이 없는데도 청개구리가 그 안에 살면서 가끔 출몰한다고 하니 또한 기이하다. 화산(華山, 삼각산)의 바위틈에 자라나는 복숭아나무를 여기에 붙여도 바로 살아나므로 씨를 심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는 이른바 “기는 몰래 통하는 바가 있고 운수는 암합하는 바가 있다.”2)고 한 것이라 하겠다. 사물의 변화는 일반적인 이치로 국한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아, 판윤공의 후손이 서울과 지방에 흩어져 살아서 마치 바람에 날리는 쑥이나 물에 떠다니는 허수아비와 같이 되었다. 우리 집안 또한 증조부이신 찬성부군(贊成府君) 때부터 반촌(泮村)을 떠났고 예전에 살던 집은 사현사(四賢祠)3)가 되었다. 예전에 이덕유(李德裕)는 별서 평천장(平泉莊)을 짓고 천하의 진기한 나무와 괴이한 바위를 모아서 완상할 만한 정원과 못을 갖추고는 “평천장을 팔아먹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 나무 하나, 돌 하나도 남에게 주는 자는 좋은 자제가 아니다”라 하였다.4) 그런데 남쪽 변방에서 옥사하여 제 몸조차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평천장은 말할 것이 있겠는가? 어찌 그리 멀리 보지 못하였던가? 백세 뒤의 사람에게 놀림을 받은 것은 정말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 선조는 청렴을 법도로 삼아 십수 대 동안 전하다가 비로소 옛 집터를 떠나게 되었으니 이덕유에 비한다면 그 득실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실로 후손에게 물려준 유산이 앞선 사람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겠다. 위가(韋家)의 묵은 일5)을 더듬으면서 삼가 계승할 것을 수고로이 생각하고, 왕씨(王氏)의 문풍(門風)6)을 그리워하면서 조술(祖述)할 것을 깊이 바라는 것, 이것이 곧 내가 고심하는 바였는데 지금 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어 다시 거론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지경에 이르니 어찌 마음에 한이 맺혀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네에는 예전에 서당이 있었는데, 성균관의 하인 정학수(鄭學洙)가 거기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불패(拂牌)의 고사7)를 지켜나가고 있다. 아이들 백여 명이 열심히 강학하는 아름다운 서하(西河)의 기풍8)이 있다. 그 사이 여러 번 그 주인이 바뀌었는데 우암의 후손 송흠상(宋欽象) 계지(戒之)9)가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마땅하지 않다고 하고서는 서재를 구입하여 꽃과 과일나무를 심어 그 빼어난 풍광을 더하게 하였다. 이는 가히 집안 대대로 가업을 닦아 이어나가고 대대로 그것을 지켜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계지가 죽은 후 계속 보유하지 못하였다. 나도 또한 여력이 없어서 주인이 바뀌는 것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그저 송홍동 이름만 외울 뿐이었으니 계지에게 크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아, 물은 차마 마르게 둘 수 없고 땅은 차마 황량하게 둘 수 없는 법10), 어찌 감히 이를 잊을쏜가?

1) 백거이의〈사암상공이 이소주가 보내온 태호석이 장대하고 기이하여 출중하기에 20운을 지어 보여준 시에 화답하고 아울러 몽득에게도 드리다(奉和思黯相公以李蘇州所寄太湖石竒壯絶倫因題二十韻見示兼呈夢得)〉라는 시를 가리킨다. 이 구절 다음에 “각이 져서 칼날처럼 드러나 있는데, 맑아서 옥구슬을 두드리는 듯하네(廉稜露鋒刄, 清越叩瓊瑰).”라 하였다.
2) 곽박(郭璞)의〈자석찬(磁石贊)〉에 나오는 말이다.
3) 숙종 때 성균관 대성전과 남문 바깥에 세운 사당으로 당(唐)의 태학생(太學生) 하번(何蕃), 송(宋)의 태학생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澈) 등의 제사를 지냈는데 처음에는 숭절사(崇節祠)라 부르다가 영조 때 사현사(四賢祠)로 고쳐 부르고 어필(御筆)로 사액(賜額)하였다.
4) 이 고사는 조선시대 널리 읽힌 《산당사고(山堂肆考)》권26의〈진송괴석(珍松怪石)〉에 보인다.
5) 당의 위장(韋莊)이 화수(花樹) 아래에 친족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신 고사가 있어 화수회라는 말이 나왔다.
6) 진(晉)의 왕헌지(王獻之)가 도둑이 들어 방 안의 물건을 다 가져가려 하자 “푸른 담요[靑氈]는 우리 집의 오랜 물건이니 그것만은 놓아두라.”라 하였다.
7) 《주서절요(朱書節要)》의〈답황직경(答黃直卿)〉에 집 뒤에 정사(精舍)를 지어 불진을 걸고 패를 잡겠다[掛拂秉牌]는 구절이 있다. 그 주에 승려들이 불진을 걸고 패를 잡고 설법을 강론하는 것을 가지고 강학에 비유한 것이라 하였다.
8)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서하에서 교수(敎授)로 지내면서 위문후(魏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9) 방목에는 자가 계지(繼之)로 되어 있다.
10) 정호(程顥)의〈안락정에 새긴 명[顏樂亭銘]〉에 보이는 구절이다.
 
 - 홍직필(洪直弼),〈송홍동기(宋洪洞記)〉《매산집(梅山集)》

서울과학고등학교 서쪽 길로 올라가다 보면 주택 한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는 ‘증주벽립(曾朱壁立)’이라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송시열이 평생 사모한 증자(曾子)와 주자(朱子)의 정신을 기린 것이다.

  원래 이곳은 숭교방(崇敎坊)에 속한 곳으로 송시열의 선대가 이곳에 살았기에 조선시대에 이곳을 송동(宋洞)이라 하였다. 그 인근 산으로 이어진 포동(浦洞)에 송시열의 정적(政敵) 윤휴(尹鑴)가 살고 있었기에 후에 정조는 이를 꺼려 송시열의 제사를 내리면서 그 신주를 송동에 모시지 못하게 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송동은 은진 송씨보다 남양 홍씨가 더 오래 많이 살았다. 여말선초 홍명(洪溟)이 이곳에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그래서 홍직필은 그 이름을 송동이 아니라 송홍동(宋洪洞)이라 하였지만 사실 송홍동은 다른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남양 홍씨는 홍직필의 증조부 홍상언(洪尙彦)이 그곳을 떠났고, 살던 집터에는 영조 때 사현사(四賢祠)가 세워졌다.

  송홍동은 풍광이 아름다워 봄이면 사람들이 꽃구경을 가고 여름이면 피서를 나가던 곳이다. 정약용(丁若鏞)은 1784년 벗들과 함께 송동에서 살구꽃을 구경하러 나갔으며 이보다 앞서 박지원(朴趾源)은 벗들과 송동에서 모여 화전을 부쳐 먹고 높은 곳에 오르려 약속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바 있다. 이이순(李頤淳)은 그곳에서 앵두를 따먹은 일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송홍동의 ‘증주벽립’ 바위에는 물이 전혀 없는데도 청개구리가 서식하는 특이한 일이 있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석벽에 한 길 남짓 되는 틈이 있어 작은 개구리가 숨어사는데 두세 마리 혹은 네댓 마리로 그 수가 일정치 않고 봄가을 가릴 것 없이 늘 그곳에 살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늘 똑같았다고 한다. 또 사람이 붙잡아 땅에 꺼내 놓으면 곧바로 위로 올라가 그곳으로 숨는다고 하였다. 북한산의 살구나무를 바위에 붙여놓으면 절로 자라난다고도 하였으니, 그 역시 신기한 일이다.

  송홍동에는 성균관에 딸린 노비 정학수(鄭學洙)가 운영하는 서당이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수수(洙水)는 공자의 고향에 있던 물이니 ‘학수’라는 이름에 성균관에 근무할 팔자가 예견되어 있었다 하겠다. 그런데 윤기(尹愭)의 글에는 성균관의 노비 정윤조(鄭祚胤)가 ‘증주벽립’ 바위 아래에 서실을 짓고 학생을 가르친다고 하였으니, 아마 동일인이거나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인 듯하다. 조수삼(趙秀三)의 글에는 정선생(鄭先生)으로 부른다고 하였다. 아침저녁 종을 쳐서 학생을 부르고 물러나게 하였는데 학생들의 성취가 많았다고 하였다. “강당의 꽃나무 사이로 길 하나 나 있는데, 아침과 저녁이면 종소리 듣고 몰려드네. 사방의 아름다운 자제를 교육하는 이, 품이 넓은 옷에 폭이 넓은 띠를 한 정선생이라네(講堂花木一蹊成, 斯夕斯晨趁磬聲. 敎育四隣佳子弟, 裒衣博帶鄭先生).”라 시를 지었다.

  정선생이 운영하던 서당은 나중에 송시열의 후손인 송흠상(宋欽象)이 구입하고 화초를 심어 아름답게 꾸몄으나 그가 죽은 후 다시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갔다. 홍직필은 자신의 선조가 살던 동네이기도 하여 안타까워하였지만 물력이 부족하여 어찌하지 못하였다. 그럴 때에는 글이라도 지어 마음으로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지은 것이다.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저서(역서)
- 해동강서시파연구, 태학사, 1995.
-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 浮休子談論, 홍익출판사, 2002.
- 조선의 문화공간(1-4), 휴머니스트, 2006.
- 우리 한시를 읽는다, 돌베개,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