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영화를 꽤 챙겨보는 편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유년의 극장에 대한 기억도,
인상적이었던 영화에 대한 기억도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 또래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당시에는 비디오 대여문화가 매우 활성화될 시기였고,
게다가 각 방송사에서 주말의 명화, 일요명화, 토요명화 등,
꽤나 볼만한 영화들이 자주 틀어줬기에,
굳이 영화관을 갈 필요가 없었다)

어찌됐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국민학교 때,
우뢰매 시리즈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김청기란 이름이 각인된 걸로 보아)

그리고 홍콩 강시 시리즈도 한 번 봤고,
영구 시리즈도 봤던 것 같다.
그 이후에 기억에 없다가,
중학교 때 굿바이 마이 프렌드를 봤다.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최초로 눈물을 흘렸던)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생겼고,
이런 저런 영화를 많이 접하였다.

나의 관심도의 상승을 기점으로,
멀티플렉스라는 괴물이 도심에 등장했고,
이전의 구식 극장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거나 멀티플렉스로 전환하였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인한,
여러가지 담론들은 여기서 생략한다.
입만 아프니까)

구식 극장이 사라짐에 따라,
구식 극장에서 볼 수 있던 광경들도,
기억의 차안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던 중에,
정말 오랜만에 구식 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하였다!

1. 멀티플렉스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환한 미소로 무장한 가식적인 유니폼걸들 대신,
칸막이가 쳐져 손만 볼 수 있는 매표소,

2. 그리고 툭 튀어나오는 것은,
디지털 인쇄의 깔끔한 영화표가 아니라,
좌석이 지정되어 있기는커녕,
대충 얇은 종이에 도장만 찍어서,
볼테면 봐라는 식의 관람권,

3. 영화관람 간에 오징어를 먹는 사람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매점의 오징어, 부르스타 콤비,

4. 관람객의 편의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좁고 낮은 의자들의 배열,

5. 영화 시작과 함께 화려한 예고편 대신,
지역상점들의 유치찬란한 선전광고들,
(보석점, 미용실, 갈비집 등 실용적인)

다시 만난 낯설지만 반가운 광경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한도 없겠다.

나름 저개발권인 이곳에서,
다시 만난 구식 극장은 정말 맛있었다.

전자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옛스러움은 촌스러움으로, 낙후된 것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니면 아날로그인 척만 하거나.
(이미 '구식' 극장이라고 쓴 나부터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 아날로그 극장이라 부르자)

길들여진 0과 1의 조합들 속에,
가끔 이런 아날로그 극장을 경험하는 것은,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감성을 자극한다.

어릴 적 엄마 손 꼬옥- 잡고 거닐던,
재래시장의 먹거리 골목이라던지,

조그만 공간만 생겨도 할 수 있던,
철 지난 달력 접어 만든 딱지치기라던지,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100원만 있으면,
염치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던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지난 아날로그의 향수.

혹시 멀티플렉스에 식상하다면,
주위에 이런 아날로그 극장이 있는지 한 번 찾아봐라!

정신 없는 인터넷과 족쇄 같은 모바일 대신,
고이고이 쓰여진 편지와 호주머니 속 꼬깃꼬깃 전화번호부가,
어느새 손에 잡혀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