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사랑보다 외로움을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왕가위, 그는 스타일리스트인가 작가인가,
이런 논쟁은 많은데 제 생각은,
그는 스타일리스트의 면모도 있지만,
작가 성향에 더 가까운 감독이다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사랑보다 외로움을 믿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잡지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설명해놓은 것 같아서,
그와 비슷하게 인용해봅니다.)
"세상에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 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아비정전 中)
"우린 만우절날 헤어졌고 난 농담만 했다.
헤어지더라도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그 후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았다.
파인애플은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이고, 5월 1일은 내 생일이다.
30개의 통조림을 살 때까지 그녀가 오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도 끝날 것이다."(중경삼림 中)
"함께 일한 지 155주가 되었지만 처음으로 함께 앉아 본다.
사랑이란 감정이 두려워 우린 늘 떨어져 있었다."(타락천사 中)
"어떤 일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영이 다시 여권을 달라며 전화를 했다.
돌려주기 싫은게 아니고 그를 다시 보기 싫었을 뿐이다.
보영과 마주치는 게 두렵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해피 투게더 中)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를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화양연화 中)
왕가위 영화 속의 제가 생각하는 명대사들을 추려봤습니다.
그의 영상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저 대사들이 정말 '사랑보다는 외로움을 믿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왕가위 영화 속에 녹아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작 "Eros의 '그녀의 손길'"에서는,
사랑을 믿은 사람(장첸)과 외로움을 믿은 사람(공리)의,
결합점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의 영화 속에 흐르는 단 하나의 이야기,
'사랑보다 외로움을 믿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저 영화들의 주인공들이,
단 한 번만 상대방을 더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렇게 행동을 했다면,
영화는 또 달라져 있겠지요.
저는 사랑을 믿었던 사람들보다는,
외로움을 믿었던 사람들이 더 정감이 갑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외로움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