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치고 피곤한 하루였어요
무리하게 보냈던 주말에, 끝이 없는 과제에, 옅은 감기 기운에,,
맥없이 집에 돌아와 허기진 배를 포도로 채우며
이런저런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어 나가다가 그만 헛구역질이.
끝까지 읽어 나가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치는 기사를 접하곤 분에 못이겨 잠시 울음.
베팍에도 올라와서 많은 분들이 보신 것 같은데,
그 어리고 조그만 아이가 겪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에 화가 나고 감정이 상해 어디 마음을 놓아 둘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
여러 커뮤니티에서 터져 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슬픔을 살펴보다
온갖 생각이 머릿 속에서 맴돌고 멈추기를 반복.
이것들을 추스려 정리를 해봐야겠단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베팍에 들어와 글을 써 봅니다.


저도 읽다가 끝까지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둔 바람에
사실관계 파악에 있어서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변명을 먼저 하겠습니다

옆동네에서 자신의 모든 창의력을 동원해서 온갖 고어물을 만들고 계신 분들이 많아 씁쓸한 기분 한 번.
늘 그렇지만, 이번 사건으로 사형제도 찬반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씁쓸한 기분 한 번 더.

물론 저도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정말이지 살이 떨리고 뼈가 저릴만큼 마음이 아팠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홉살 난 그 작은 여자아이의 인생.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경험. 그것을 평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시간을 다시 돌이키지 않는 이상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보상할 수 있을지. 그 잔인한 기억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 지.
그렇기 때문에, 아마 저와 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다시 글로 옮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지른 가해자의 대한 응징과 형량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게 아닐까 생각은 됩니다
저도 심정적으로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고
많은 이들의 말처럼 화학적,물리적 거세와 더불어 그 고통을, 그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케이스를 맡은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형량에 대한 이야기들 중
이해는 가지만 동의할 수는 없는 것들이 많아 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서설이 길었네요



첫째로는 형량에 관한 것.
징역형 12년이 대법에서 최종결정 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으로 판사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던 것을 오늘 많이 보았는데요 
-사건의 정황과 재판 결과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적겠습니다-
제가 그 12년의 형량이 과중하다거나 충분한 것이라 감히 말씀 드릴 수 없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만
현행 법체계에서 심신미약 감경을 하고도 그 정도 형이 나온 것은 최고형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는 정도인 것은 사실입니다
형법상 유기징역은 최고 15년, 가중처벌 시에 그 상한이 25년 까지로 형량이 명문에 규정되어 있고
심신미약으로 그 형이 감경될 시에는 형기의 1/2이 감경됩니다
그리고 무기징역의 경우에 심신미약으로 감경될 시에는 7년 이상 15년 미만의 형이 처해지구요
그러니까 처음에 유기징역으로 형이 처해졌다면 가중처벌까지 해서 24년형을 받은 것이고-법정 최고형에 가깝죠- 감경해서 12년.
또 처음엔 무기로 나왔는데 심신미약 판정으로 7~15년 사이의 12년으로 형이 내려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술을 마신 것이 어떻게 감경사유가 되는냐 하는 문제는
(이게 조금 까다롭고 복잡한 이야기라 제가 잘 풀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형법상 음주강간은 감경사유로 규정된 '심신장애로 인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심신장애의 상태에서는 범죄성립조건 중의 하나인 '책임'이 조각 되는데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이지요
물론 명문으로 규정(형법 10조 1항,2항)하고 있구요
심신장애라는 것이 선천적인 정신질환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고 일시적인 사유 또한 포함하기 때문에 음주나 약물에 의한 만취, 환각 등도 해당이 됩니다

물론 자의적으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에 빠져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되면
이것은 다른 명문(형법 10조 3항)으로 감경사유에서 배제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통제할 수 없었던 행위는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야기 했다면 처벌 받는 것.
또한, 법문으로는 고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 (고의로 범죄를 계획하고 심신장애자가 되는 것)만을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석상 '고의' 뿐 아니라 '과실'까지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주강간은 처벌을 감경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은
대부분 고의나 과실로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한 케이스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텐데
사실 법문 또한 이에 반하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심신장애 상태로 경감이 적용될 수 있는 케이스의 범위도 생각보다 협소합니다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이긴 하지만
이번 케이스의 경우를 살펴보면 가해자가 술을 마실 당시에 성폭행을 할 계획(고의)가 없었음을 변호사가 잘 밝혔을 것이고
평소 가해자가 술을 마시면 이상성적징후를 보인다던지 하는 습성 등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판결문이나 다른 자세한 기사를 찾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지레짐작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사실관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황이 그 정도 되면 판사가 심신미약 감경을 하지 않기에 어렵고,
감경 자체도 판사재량으로 할 수 있는 작량감경이 아니라 법에 규정이 있는 법률상 감경이기 때문에 1년만 깎는다던지 안깎는다던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현행법상 거의 최고형을 선고한 것이나 나름없는데
판사를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으로 몰아 가는 것은 조금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둘째로 형평성에 관한 문제.
명문에 규정이 어떻고 법률상 감경이 어떻고 지껄여는 놨지만 사실 그래도 12년은 너무한다.
라는 마음을 저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아홉살난 그 소녀가 12년 뒤면 스물 한살인데
그 때 가해자가 형을 다 살고 풀려 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처참해져 저도 같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지만 '내란죄'나 '여적죄'같은 범죄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고
'존손 살해죄'도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15년 미만의 징역에 처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밖에 처벌을 할 수 없는 사법부에 입장에서는
법이 정한 상한형 안에서 최대한 무거운 형량을 선고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법체계 때문에 이런 끔찍한 범죄에서 직접적인 정의구현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형벌 상한선과 대책에 관한 세번째.
그렇다면 법을 개정해서 형벌 상한을 높이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분들 역시 많이 계시던데
실제로 많은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고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그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양산형 특별법 제정으로는 미성년자 성폭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고
특별법 제정이 아닌 법률 자체를 바꾸어 미성년자 성폭행에 대한 형량을 늘이자고 한다면 아까 말한 형평성의 원칙에 위배되구요
또 미국처럼 100년형 200년형은 왜 못주냐 하는 분들도 많이 보이시던데
미국은 여러 범죄가 경합하는 경우 합산해서 형량을 주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여러 범죄 중 가장 중한 죄 하나의 형량에 얼마간의 가중을 주는 '가중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현실적으로 굉장히 실현가능성이 낮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성문법의 부재와 배심제의 문제도 있구요
그리고 미국은 가중처벌시 상한선이 없기 때문에 400년형도 500년형도 나올 수 있지만 감형제도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60년형을 받았다 하더라도 모범수로 복역했을시에 15년으로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경우도 있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형벌에 대한 가중 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구제제도를 보완하는 쪽으로 제도 개편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적 상담 비용이나 신체 상해 피해에 관한 치료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죄에 대한 응보도 중요하지만
그 가해자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돌로 쳐서 죽인들 그 작은 아이의 상처가 치유되는데 많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피해자의 고통은 가해자에 대한 보복적 성격의 형벌이 아니라 국가의 적극적 구제제도로 회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구요.

그렇지만, 저도 종종 성범죄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범죄의 죄질에 비추어 형량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들이 어린이집 근처에 살면서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사회가 아이들을 그런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런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백안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 역시 떠오르구요
그렇기에 차선책으로 보안처분을 다양화해서 그런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는 법안들의 발의와 제정도 있었으면 합니다




쓰다보니 너무 만연해졌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아픈 사건이지만
그 사건에 분노하고 그 분노를 가해자에게 돌리는 것도 지당한 일이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의 방지와 피해자-미성년자와 성년을 모두 포함하는-들의 고통을 경감하는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고
나아가 사회가 개선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여론이 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좀 가라 앉는 것 같았는데
그 어린 아이의 아픔을 다시금 헤아려 보면 이 글이 너무나도 위선적인 것 같아
입 안이 쓰네요




밤이 늦었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