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닌 재장전>이라는 책을 들춰보고 있습니다.
완독은 못했고 3챕터정도 읽고 있네요.

최근 유럽 좌파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지젝을 필두로하여 레닌에 대해서 재평가해보고자 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기존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에 의한 레닌의 평가는 주로 부정적이었죠. 전체주의적 스탈린주의의 기초를 놓은 사회주의 독재자쯤으로 간단히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단 우파진영에서 뿐만 아니라 좌파내부에서 조차도 부정적 인식이 강했지요. 특히나 90년대 초반 구사회주의국가가 붕괴되면서는 더욱 이런 부정적 시각이 강화되어왔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레닌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재고해 보고자 하는 지식인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죠. 그는 오늘날 전세계를 궁핍과 억압 그리고 갈등으로 몰아넣고있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레닌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레닌과같은 근본적인 처방이 없이는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지요. 기존의 사민주의적 정당들이나 정책들로는 신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과같은 이른바 자유주의적 포지션으로서는 신자유주의가 암암리에 심어놓은 알리바이의 한계를 가로지를 수없다는 겁니다.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평화로우면서도 점진적인 개량을 통한 복지라는 정치적 상식이 결국은 자본주의를 지금껏 지탱시켜온 상식의 한계선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식의 한계를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바로 레닌이라는 역사적 선각자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른바 오늘날 자유주의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은폐된 신자유주의적 '실용'(이명박정부 역시 실용을 부르짖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것이지요)이라는 관점과 레닌이 환기시키는 혁명적 사회주의라고하는 관점 사이의 그 간극이 불러일으키는 긴장을 우리는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레닌에 대한 반복이나 회귀를 의미할수는 없겠지요. 레닌이 살았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21세기라고하는 오늘날의 상황자체는 크게 다르므로 기계적 이입이나 적용은 물론 불가능합니다. 다만 레닌이 당시의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그 당시의 좌파의 상식을 뛰어넘어서 러시아에서도 사회주의(혁명)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했던 그 제스쳐의 방식을 재전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오늘날처럼 신자유주의적 가치나 이데올로기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시점에서는 말이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 책에서 다수의 저자들 (알랭바디우, 알렉스 캘리니코스, 테리 이글턴, 프레드릭 제임슨, 슬라보예 지젝, 다니엘 벤사이드, 에티엔 발리바르)이 펼쳐 보입니다. 글을 읽어보니 단지 레닌이 가진 오늘날의 긍정성만 강조한다라기 보다는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그를 평가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그동안의 부정적 평가들이 손쉽게간과해왔던 부분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더군요. 예를들어 레닌의 전위개념을 단순히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한 대중들에의 일방적 주입으로서의 전위로 보기보다는 대중의 자생성과 급진성을 수용하는 이른바 대중적 전위였다는 그리고 그의 정치적 입장을 정치적 모더니즘으로 보는 테리이글턴의 평가 그리고  68혁명시기에 프랑스의 마오주의자로 유명했던 알랭바디우의 급진적 시각으로 보는 레닌 등등 흥미롭게 읽을만한 글들로 이루어져있더군요. 단점이라면 여러저자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레닌(주의)에 대해서 짧은 논문들로만 다루다보니 특정 주제에 대해서 좀 소략하다는 느낌이 좀 있고 결정적으로는 오늘날 하나의 정치적 실천으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글로만 이루어져있다는 단점 등등이 있습니다만  이 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오늘날 왜 다시금 레닌을 "재장전"해야만 하는가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