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만에 우리나라 드라마에 빠져 열심히 봤는데.. (이전은 카이스트였습니다)
그 이유는 제 이상형이라 생각했던 여자, 성나정이 나와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어제랄까요?) 방송에서 그것이 완전히 무너졌네요.
제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진 것인지, 작가진에서 캐릭터를 망가뜨린건지, 사람이 변한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쪽이더라도 충격이 심하네요.

사람과 엮이는게 싫어져서 혼자 살아야 겠다고 맘 먹다가,
다시 외로움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누워도 잠이 안 올 정도네요..
드라마 따위에 왜 이러는 건지.. -_-;;;;

제 이상형이라 생각했던 이유는 잘 어울리는 단발 등을 필두로 한 귀엽고 예쁜 외모와 털털한 성격 등도 다 좋았었지만,
일편단심인 마음과 철벽인 행동에 연인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참아줄 줄도 아는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방송을 보니, 일편단심도 아니었고,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던 사람으로 보이네요.

뭐, 2년간의 장거리 연애가 힘든거야 이해합니다.
특별한 연인은 커녕 평범한 어쩌면 위태로운 연인이었던 옛날의 여친이 미국으로 간지 100여일 만에 헤어짐을 통보 받았던 기억도 있기에, 장거리 연애의 힘듦은 공감하거든요..


하지만, 1997년에 보여준 두가지 상황은 제 눈에서 콩깍지를 벗기네요.
(참나. 한편으론 드라마보고 대사 받아 치고 있는 제가 참 한심합니다.. ㅠㅠ 왜 이리 빠져있는건지..)

--(상황 1)--
(조윤진이 TV를 보고는 성나정의 눈치를 봄)

성나정 : 왜?

조윤진 : 아, 아녀
(리모컨을 찾는다)

TV : (칠봉이 얘기가 나옴)

성나정 : 야, 언제적 일인데? 내 괘안타.

조윤진 : (눈치를 보면서)
글지? 다 옛날 일이지.

성나정 : 테레비전에 맨날 나오는데 내가 모르고 살래야 모르고 살 수가 없지.
내 많이 무디��다.
----
이 상황을 보면 행동은 철벽이었지만, 성나정의 마음은 일편단심이 아니라 최소한 칠봉이에게 흔들린적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것을 조윤진이 알고 눈치를 볼 정도네요.
칠봉이의 짝사랑에 대한 미안함 뿐이었다면, 성나정은 무뎌질게 없죠.
(쓰레기와의 관계에 대한 복선으로 넣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저건 성나정과 칠봉이 사이의 얘기가 아니라 할 수 없죠.)

성나정의 마음이 이랬다면,
지금껏 찌질한 집착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칠봉이의 행동이 어쩌면 철벽 뒤에 숨겨진 뭔가를 느꼈기 때문은 아닌가하고 생각될 정도네요.


--(상황 2)--
쓰레기 : 우리 1월 25일날 결혼식이다

성나정 : 오빠, 우리 결혼, 2년만 미루면 안 되나?
아니, 공사가 진짜 들어가기 힘든데다. 오빠도 알잖아.
그라고 내 이번 기회 아니면 올해에 취직 못할 수도 있다.
내한테 진짜 마지막 기회다 오빠..

쓰레기 : (한숨)
어떻게 결혼을 미루냐?
벌써 청첩장도 다 돌렸고, 오빠 오늘 집도 계약했다.
그라고 니 어른들한테 뭐라 말씀 드릴래?

성나정 : 그건 내가 잘 말씀 드리께
어, 예식장하고 집문제도 내가 알아서 다 정리할께 오빠. 응?

쓰레기 : 안 된다.
안 된다고.

성나정 : 오빠, 내한테 진짜 중요한 일이다.
내 인생이 걸린 일이라고.
내 한번만 봐줘, 오빠.
응? 2년만.
2년만 우리 결혼 미루면 안 되나, 오빠?
응?

쓰레기 : 그냥 있어라.
내가 벌면 된다.

성나정 : (대답없이 화내면서 혼자 나감)
----
이 장면에서 느낀 것은 먼저,
나정이는 쓰레기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사귄것이 아니었구나하는 것입니다.
쓰레기가 청혼한 진짜 이유 "그라면 내 불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왜 나온건지 깊이 알았더라면 저렇게 말을 할 수가 없을텐데요.
성나정은 열병처럼 다가온 첫사랑이 이루어진 들뜬 마음으로 지냈었던 것 같습니다.
쓰레기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반대로 쓰레기는 주변의 상황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고민한 뒤에야 사랑을 할 수가 있었죠.)

성공적인 청혼으로 불안감을 없앨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쓰레기에게,
이건 "너와의 사랑+결혼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라는 대답이 되었네요.

동시에, 쓰레기가 참 불쌍합니다.
뭐, 여전히 결론은 쓰레기와 성나정의 결혼인 듯 생각되지만,
쓰레기는 저보다 참 착해서, 그래도 웃어주고 즐거운 듯 살아갈 것 같지만요.
이제 쓰레기의 마음 속에서 불안함은 영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뺏길 걱정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이것도 상황 1을 알게 되면 아닐것 같지만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 버려질 각오는 계속 하고 있겠네요.

사랑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신뢰라고 생각하는 제게 있어서,
제가 저런 상황이라면 이제 신뢰는 어느 이상으로 절대 가질수 없는 결정타를 맞은 것이 되겠습니다.

2002년 부터의 상황을 보여준게 없다면,
어찌보면 쓰레기는 이대로 헤어지는게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물론 쓰레기는 저보다 착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보기 시작한거 끝까지 보긴 하겠지만,
이젠 뒤가 어떻게 되든 그렇구나 하면서 그냥 보고 넘길 수 있겠네요.
(심지어 2013년에서 보여준 모습은 "다 연옥에서 겪은 일이었고, 모두 과거에 죽었다" -미드 LOST 결말-라고 하더라도 이젠  이해하겠어요.)


이렇게 콩깍지는 벗겨지고,
드라마가 슬슬 마무리 되는 시점에 이렇게 드라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제작진에게 고맙긴 개뿔이닷!!!!!!!!!!!!

정말 오랜만에 미친듯이 본 이 드라마도 이렇게 되니,
다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볼 일이 언제가 될지 참 감도 안 오네요.

아..
착찹한 밤이네요.
왜 잠도 안 오고 지랄이지...
현실은 시궁창이라서 안 그래도 답답한데..
괜히 쓸데없는 외로움까지 돌려주고서는..
안 그래도 몇일 전에 전 여친이 밥 같이 먹자고 연락이 와서 싱숭생숭하고 짜증나는데.. ㅠㅠ
에잇!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