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 그 모호함과 어려움
조회 : 2,762
혹시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와이프님께서 2세를 임신하셔서
오는 5월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었습니다.
그에 이어 최근 근황을 한 두 글자 적어보려 합니다.
지난 주에 성별을 알게 되었어요.
이 나라는 20주째 정밀초음파를 할 때에
부모에게 성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드만요.
그래서 냉큼 알려달라 했더랬지요.
아들입니다^^
사실 저와 와이프님 모두 딸이든 아들이든 특별한 선호는 없었고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랬지요.
처음에 초음파를 보면서 일종의 "확인"을 시켜줄 때는 얼얼하더니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는 온몸이 떨리면서 약간 긴장이 되드만요~
아... 아들이구나.....
암튼암튼
아들이라는 소식을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에게 전했습니다.
다들 축하해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십니다.
그중 가장 좀 깼던 저희 어머니의 말씀...
"고생했다"
임신을 했을 때 들은 말이었고
순산을 하면 그때 웬지 자주 들을 말인 것 같은데
아들이라는 소식에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이라니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아들이라서 고생햇다는 것인지.....후후
아무래도 아직 아들선호에 대한 전통적 사상이 남아있는 세대분이라 그런 것 같네요.
당시 저희 부모님께서 반대를 무릎쓰고 한 결혼이라
처음에 시집 오셨을 때 시부모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으셨고
아들인 저를 낳고 나서 그나마 시부모님 앞에서 그나마 조금 당당했던 분이어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암튼
그 이후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름에 관한 것으로 흘러갔지요.
아직 이 세상에 나오려면 5개월은 훨씬 더 남았는데
아무래도 성별을 알고나니 이름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듭디다.
사실 저와 와이프님은 예전부터 이름에 대한 일종의 원칙을 세워서
오랜 기간 동안의 자료조사와 평판을 통해
후보를 몇 개 선정해두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를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는 좀 거시기해서
의견을 서로 교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실 부모님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습죠.
"혹시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두신 것이 있으세요?"
어머니께서는 지난 수 개월 간
이미 후보를 여러 개 적어두고 다니셨답니다.
아들일 경우, 딸일 경우 모두에 대해
생각나실 때마다 수첩에 적어두셨다고 하시네요.
사실 뭐 저와 와이프님도 그랬으니 이건 뭐 서로 쌤쌤이라 치고~
근데 저희 아버지의 말씀에서 예상은 조금 했지만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족보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족보에 있는 항렬에 따라 돌림자를 써야 한다고 하십니다.
원래 평소에 그리 권위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분은 아니었는데
족보의 존재는 저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말씀을 하실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좀 거시기했던건
저와 제 동생 이름이 족보를 따르지 않았던 사실이랍니다.
6.25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 내려오신 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보신 손주가 저였는데
정말 기쁘셨는지 할머니를 통해 작명소에서 지어오셨더랬지요.
암튼 제 이름은 족보에 있는 항렬을 따르지 않았어요.
저희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깊은 사대부집안도 아니구요.
비교적 머리 크고 할아버지께 들었는데
원래 상인 집안이었다가 조선 후기에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사셨다고 합디다.
족보도 아마 그때 만들어졌다고 하시구요~
암튼 저도 안지킨 족보 항렬을 제 아들의 이름에 적용을 하시자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디다.
그리고 혹시라도 어려우면 돌림자에 해당하는 한자의 부수만이라도 지키자고 하시고........
근데 부수가 金인데 한자자전을 찾아보니
금속, 돌, 날카로움 등 다소 이름과 거리감이 있는 의미의 한자들이 대부분입디다.
이휴우.........
사실 저도 이런 우리 "전통 문화"에 큰 반감이 있는 건 아니에요.
물론 장점도 있는 듯하구요.
다만 요즘 작명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좀 다시 생각해보니
다소 가부장적인 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드만요.
또한, 역시 집안마다 다르지만 아들에게만 족보 항렬에 따른 돌림자를 적용하면서
딸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보면서
이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들더라구요.
사실 요즘 우리 사회에 작명에 대한 원칙이 존재하지는 않죠.
집안마다 다르고 주어진 상황마다 다르고.....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라고 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신가하면
족보를 따라야 하는 경우, 특정 종교의 영향을 받는 경우, 작명소에서 지어오시는 경우,
이외에도 다양한 케이스들이 존재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같이 세대 간의 생각에 차이가 심해지는 시기에
작명을 둘러싼 은근한 의견 차이는 그 수많은 예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와 와이프님의 생각은 무엇이냐고요?
보시는 분들에 따라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일단 아무래도 현재 타국에 살고 있다는 특성과
앞으로 어찌될지 모른다, 즉 타국 또는 제3국에 계속 살지 귀국을 할지에 대한 불확실성,
제가 생활해보고 느낀 어려움과 편리함,
주변의 케이스와 조언 등을 종합해서 작명 방법을 정했어요.
즉, 하나의 이름으로 우리나라 이름도 되고
이 나라의 이름도 될 수 있는 이름으로 가자는 것이 저희의 원칙이었죠.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나오는 쟝띠엘 샤, 타미 홍이나
연예계에서 밥벌어 먹고 사시는 에드워드 권, 숀 리 등 이런 이름 말구요.
또한 가령 "길동 Michael 홍"과 같이 한국식 이름과 이 나라식 이름을 각각 하나씩 넣은 것도 말구요.
이렇게 하는 분도 많고 장점도 있지만
주변 사례들을 보니 결국 둘 중 하나만 쓰게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저희는 김연아가 Yuna Kim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이름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더랩니다.
우리말과 이 나라말로 자연스러운 이름이어야 하고
이름은 하나여야 한다는 원칙에 서로 동의했구요.
그래서 추린 후보들이 몇개 있었답니다.
그래도 부모님 의견을 일단 고려해보고자
돌림자로도 이름을 조합해보고
한자 부수로라도 조합을 여러가지 만들어보았어요.
수 일을 고민했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이름을 못찾겠드만요.
게다가 그 돌림자가 들어간 이름들 중
저와 와이프님과 비교적 안 좋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의 이름과 똑같은 경우도 있어서
어감은 좋더라도 차마 선택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여럿 있었네요.
암튼.....
이제까지 확실하게 된 건
부모님과 저희 간에 작명에 대한 분명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네요.
앞으로 수 개월 동안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설득해나갈지가 걱정이 좀 되네요.
실제로 보니 주변에서 최근에 2세를 출산한 분들 중에
작명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을 빚은 경우가 매우 많은가봅니다.
가깝게는 저희 처형부터 그렇네요.
시부모님께서 아들 이름을 "정일"이라고 짓자고 하셧답니다.
다행히(?) 성은 "김"이 아니지만 처형께서는 그 이름에 팔짝 뛰셨지요 ㅋㅋㅋ
결국 다른 이름으로 합의를 봤는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답니다.
후후후~
저도 쉽지는 않겠죠?
부모님 생각도 존중해드려야겠지만
새로 태어날 아이와 가장 가깝게 지낼
저희 부부의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되었으면 좋겠네요.
Comments
댓글 등록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