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 | 박소연 인턴기자] 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2 K리그 올스타전은 팬도 선수도 모두가 하나가 돼 즐긴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뜨거웠던 현장에 유일하게 차가웠던 한 여인이 있었더랬죠. 바로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의 그녀 엘리자베스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올스타전의 전야제 격인 2002년 월드컵 10주년 기념식에서였습니다. 방송에서만 보던 그녀가 눈 앞에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던 터라 인터뷰를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기념식과 만찬이 모두 끝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 곁에서 서성이면서 대화가 멈추는 순간 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을 걸려는 순간, 갈 채비를 마친 히딩크 감독이 엘리자베스에게 다가 왔고 둘은 서둘러 기념식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쉽지만 별 수 있나요. 첫 번째 인연은 거기까지였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요.
그리고 다음날 올스타전.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중들은 우비를 챙겨 입고 경기장을 찾았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경기장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고, 저는 선수들의 생생한 소감을 담기 위해 믹스트존(선수 대기실과 출입구 사이 공동취재구역)을 찾았습니다.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2002년의 주역을 모두 모아 놓고 치른 경기이니 만큼 국내 뿐 아니라 국외 언론들까지도 취재 경쟁에 합세해 믹스트존의 바리케이트 뒤편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2012 팀 선수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곳곳에서 펼쳐진 미니 인터뷰에 여기저기 오가며 선수들의 코멘트를 녹음기에 담았습니다. 잠깐 동안의 정신없는 인터뷰 시간이 끝나고 또다시 목을 빼고 2002 팀 선수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찰나 낯익은 얼굴이 믹스트존에 합류했습니다.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역시 인연이 있었던 걸까요?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 그녀는 마치 취재진이나 팬이 된 것처럼 바리케이트 뒤편에 자리를 잡고 선수 출입구를 향해 섰습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계속해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출입구를 주시하는 그녀에게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뭘 하는 걸까? 같이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구지?'라면서요. 그렇게 빤히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고 민망해진 저는 웃으면서 별 생각 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왜 여기 있어요?"라면서요. 그러자 그녀가 답했습니다. "너는 왜 여기 있냐?" 전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서요. 당신도 그런가요?"라며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일까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장 녹음을 그만둬"라며 윽박지르는 그녀에게 저는 "그런 일 없다"고 해명했지만 그녀는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인터뷰를 하려면 그런 식으로 녹음하지 말고 정식으로 요청했어야한다"며 흥분했습니다. 저는 기존에 했던 선수 인터뷰까지도 삭제당할 상황에 처하자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지니 말도 잘 안나와서 더 답답했습니다. 마침 그녀 곁에 있던 한국 여자분(히딩크 재단을 후원하면서 알게 된 엘리자베스의 친구라고 하시더군요)이 통역을 자청하셔서 저의 상황 설명을 도와주셨지만 그녀의 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들고 있던 녹음기의 시간이 멈춰있는 것을 보여주며 "녹음한 적 없으니 직접 들어 보세요"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니다, 방금 정지시킨 것이다"라며 더 펄펄 뛰었습니다. 한국 분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며 다독여주셨지만 마치 도둑으로 몰린 것 같은 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그 때문에 부끄럽게도 결국 이후 진행된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를 모두 놓치고 말았습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기자실로 가 선배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다 또다시 서러움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고, 퇴근길에 선배들이 사준 한 잔의 맥주에 억울함을 실어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엘리자베스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엘리자베스, 전 결코 그런 의도로 말을 건 게 아니었답니다. 당신 말대로 제가 정말 인터뷰를 원했다면 먼저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정식으로 요청했을 거예요.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죠. 제가 무례했다면 출국할 때 공항으로 정중히 찾아뵙겠습니다. 공항에서 뵐게요.
출처-스포츠 서울
나도 이정도는 충분히 쓸수 있는데.
아니 이정도 퀄리티라면 10분 정도면 작성 가능한데
왜 스포츠 서울에서 안뽑을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