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3일(한국 시간) 부터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남자농구 최종 예선에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그리스, 러시아, 리투아니아, 푸에르토리코 등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농구 강국들이 상당수 나섰다. 그렇기에 '아시아의 농구 변방' 한국이 3위 안에 들어 런던행 티켓을 따낼 가능성은 사실 그리 높지 않았다.

 한국은 열심히 싸웠지만 조별 예선에서 러시아,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연이어 패하며 탈락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 이후 4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지난 3번의 실패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많은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협회의 무능, 전문 슈터의 부재, 장신화의 필요성, 능력있는 외국인선수의 귀화 추진 등등. 4년 마다 반복되던 메아리가 또 다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아무 소득없이 아쉬움만 남긴건 아니다. 그 동안 중용되지 않았던 선수들이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단숨에 대표팀의 중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농구팬들은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수 있게 되었다.

잠재력을 폭발 시킨 천재 포인트가드 김태술

 1984년생인 김태술은 동아고 재학 시절 천재로 불리며 '강동희(1966년생)-이상민(1972년생)-김승현(1978년생)'으로 이어지는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계보를 이을 적임자로 평가 받았다. 연세대학교에 진학해서 대학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명성을 떨쳤고 좋은 선수들이 즐비했던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SK 나이츠)로 지명되는 영광을 누렸다.
 
 루키 시즌에 신인왕을 수상했고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시켰다. 하지만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계승자 라는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화려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리그 도움 2위, 스틸 3위를 기록했지만 실제 활약이 스탯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듬해에는 부상과 '2년차 징크스'가 겹치면서 부진했고 시즌이 끝나고 주희정(KT&G)과 트레이드 되었다.

 대표팀에는 2006년 여름에 처음으로 선발되었고 이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 출전했다. 하지만 대표팀의 핵심 전력으로 중용되지는 않았다. 포인트가드로서 평범한 키(180cm)와 근력, 적극성이 떨어지는 수비로 인해 국제 무대에서 중용되기는 힘들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KT&G 이적과 동시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소집된 김태술은 퇴근 이후 훈련을 하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집 해제 이후에는 연세대 대선배인 이상범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하에 주전 포인트가드로 중용되었다. 그 전에 비해 수비력과 게임 운영 능력이 크게 좋아진 김태술은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고 결승전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안양 인삼공사의 사상 첫 챔프전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11-2012 시즌이 끝나고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이번 대회 첫 경기를 앞두고 양동근이 부상을 당하자 주전 포인트가드로 낙점되었다. 김태술은 3일 러시아전에서 신장 2미터 대의 가드진을 상대로 강력한 압박 수비를 선보였다. 비록 경기는 대패 했지만 김태술을 중심으로 펼쳐진 한국의 압박 수비에 러시아는 크게 당황하며 많은 턴오버를 범했다.

 4일에는 후안 코로나도 길(193cm)과 로날도 레이먼(182cm)이 번갈아 뛴 도미니카 공화국의 포인트가드 진을 압도했다. 수비도 좋았지만 공격이 더 돋보였다. 김태술은 절묘한 공격 기회 배분과 속도 조절로 한국의 공격을 조율했다. 그의 존재감은 실로 절대적이었다. 4쿼터 후반 통증을 호소하며 잠시 벤치로 나간 사이 한국은 공격이 제대로 안되면서 점수차가 벌어졌고 패했다. 만약에 김태술이 계속 코트를 지켰다면 결과가 변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대회를 통해 김태술은 대표팀의 핵심 전력으로 거듭 났고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계보를 이을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했다. 이런 김태술의 각성은 그 동안 양동근에 의존했던 대표팀의 포인트가드 운용에 앞으로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성공적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한 슈퍼 루키 김선형

 폭발적인 스피드와 탄력을 앞세운 화려한 플레이로 프로농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슈퍼 루키의 기세가 국제 무대에도 이어졌다.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내고 대표팀에 발탁된 김선형은 이번 대회 두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며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 했다.

 첫 경기 러시아전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특유의 돌파에 이은 마무리가 러시아의 높은 골밑 수비에 막혔기 때문이다. 속공 상황에서도 러시아 세이프티 맨의 높이에 부담을 느끼며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초반, 돌파 후에 동료들의 외곽슛 찬스를 잘 봐준건 좋았다. 다음날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는 아주 좋은 활약을 펼쳤다. KBL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페네트레이션을 재연했고 속공 상황에서 호쾌한 덩크슛도 성공시켰다.

 다소 아쉬웠던건 수비에 둘러 쌓였을시 공을 잡거나 점프를 한후 동료를 찾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압박을 벗어났던 김태술, 박찬희와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1988년생인 김선형은 아직 어리며 탈 아시아급 운동 능력을 타고 났다. 농구에 대한 재능이 무척 뛰어나고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아쉬었던 부분들을 분명 극복할수 있을 것이다. 김선형이 잠재력을 폭발 시킨다면 우리나라는 허재 이후 가장 뛰어난 슈팅가드를 가지게 된다.

완벽한 특급 조커 김동욱

 32세라는 다소 많은 나이에 국가대표 팀에 처음 발탁된 김동욱은 이번 대회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국가대표 공식 데뷔전이었던 러시아전에서는 매우 부진했다. 9번의 야투 시도 중 단 한개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야투 성공률 0%. 무리한 슛 시도는 거의 없었지만 러시아 수비수 들의 큰 키에 당황한듯 슛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최악의 경기력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도미니카 공화국 전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쿼터 후반 12 대 12 동점 상황에서 투입된 김동욱은 컷-인과 중거리슛, 3점슛으로 연속 7득점을 올렸다. 대표팀은 김동욱의 막판 활약 덕에 1쿼터를 2점 리드한채 마칠수 있었다.

 그 후에도 김동욱의 활약은 계속 되었다. 한국은 2쿼터 시작과 함께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사이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연속 6실점 하며 역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동욱은 돌파와 투맨 게임을 통해 이승준 과 오세근의 골밑 득점을 만들어 냈다. 3쿼터 초반 44 대 45로 역전 당한 상황에서도 김동욱은 중거리슛과 3점슛을 성공 시키며 연속 5득점을 올렸다.

 이렇듯 김동욱은 도미니카 공화국 전에서 고비때마다 투입되서 맹활약을 펼쳤고 흐름을 다시 한국 쪽으로 가져왔다. '특급 조커' 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사실 김동욱은 대표팀의 '특급 조커'가 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그는 삼성 시절에 식스맨으로 오랫 기간 동안 뛰었다. 그렇기에 경기 중간에 투입 되어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있다. (선발 출전에 익숙해진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교체 투입 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리온스로 이적 후에는  팀의 '국내 에이스'로서 다양하고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다. 팀 오펜스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직접 해결 할수 있는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갖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