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후 처음으로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 인구를 앞질렀다는 소식은 무척 흥미롭다. 광복 무렵만 해도 170만명 정도나 인구 수에서 뒤지던 충청권이 호남권을 앞섰다는 것은 단순히 지역 간 인구 규모의 차이라는 수준을 넘어 그로 인한 정치·사회적 함의가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를 넘어서게 된 것은 아무래도 지난해 7월 세종시의 정부종합청사가 완공되어 여러 정부 부처가 그곳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던 기업과 공공기관이 수도권 규제로 인해 서울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게 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충청권은 서울에서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서울 공화국’에 대한 규제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이에 비해 호남은 그런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충청권만의 인구 증가라는 결과는 역설적으로 수도권 규제만으로는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는 데 그다지 효과적인 정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 공화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자금과 권력을 지역별로 보다 과감하게 분배하지 못한다면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지역별 인구 변화가 세간의 보다 큰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결과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근간은 지역주의였다.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을 거치면서 경남, 경북, 호남,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4당 구조가 형성되었고 이는 그 이후에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선거 때마다 계속해서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0년 1월의 3당 합당으로 호남 대 비호남 구도로 양분되었지만, 충청권은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적 대립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실리를 챙겨왔다. 1990년 3당 합당 때는 영남권과 공조했고, 1997년 대선 때는 이른바 DJP 연합을 형성하여 집권에 참여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 이후 ‘재미 좀 봤다’고 말한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해 큰 지지를 보냈다.

충청이 이처럼 ‘어부지리’의 입장에 놓일 수 있었던 것은 영남과 호남이라는 두 지역이 주도하는 대립 속에서 균형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제3자의 입장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충청권은 호남권을 인구 수에서 제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충청 지역에서 중앙 정치에서의 영향력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궁극적으로 선거구 조정도 필요할 것이고 충청 출신 의원의 수가 호남 출신보다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그 의미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지역 간 인구의 변화는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낸다. 특히 그러한 인구 변화가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경우라면 더욱 큰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재개발 등으로 도시 내 한 지역의 구성 인구의 특성에 변화가 생겨났다면 그것이 곧바로 정치적 결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지역별 인구 변화가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파적 동질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연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이 모두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속성을 갖는 이들이 아니라면 인구의 증가가 곧바로 그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김종필이 충청당을 이끌던 시절에도 충북과 충남의 정치적 선택은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았다. 2010년 총선을 계기로 충청권 정당이 사라졌지만 인구 유입으로 인해 다시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곧바로 출현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당의 출현은 그 지역 인구가 많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기독교나 불교 인구가 많다고 해서 기독교당, 불교당이 정치적으로 성공하게 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더욱이 호남을 넘어설 정도의 인구 유입이 의미하듯이 이제 충청권은 수혜자가 되었다. 과거 정치적·경제적 차별로 인해 호남 유권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지역 주민이 결집되어야 할 절박함도 사라졌다. 따라서 충청권의 인구가 호남에 비해 더 많아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그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지역별 인구 분포의 변화는 민주당과 지역주의 정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외형상으로는 여전히 큰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과거의 지역주의와 오늘날의 지역주의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무엇보다 출신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김영삼, 김대중 혹은 김종필 등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정치적 지지를 호소하면 영남·호남·충청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전국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그 지역 출신 유권자들이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이제는 거주 지역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모두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바는, 호남을 예로 든다면 호남에 거주하는 호남 유권자들과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호남 출신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 간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호남 지역과 수도권 호남 유권자들 간 투표한 지지후보의 비율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더욱이 이들 간 주요 정책에 대한 관심의 정도 역시 상당히 다르게 나타났다. 민주당은 여전히 호남 출신 유권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김대중이라는 지도자가 존재했던 시절과는 환경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지역주의와 호남의 상대적 인구 감소는 민주당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호남 지역으로 지지세가 고립되면 될수록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총선에서의 승리는 점차 더욱 어렵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민주당은 영남 대 호남의 대결 구도를 활용하여 호남 유권자들을 최대한 결집시킴으로써 최악의 경우라도 제2당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호남의 인구가 충청권에도 밀리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호남에 대한 전적인 의존만으로는 더 이상 대안적 수권 정당으로 존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민주당이 이런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주당=호남당’이라는 유권자들의 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지역주의보다 보편적 가치나 이념을 대표하는 정당, 전국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당으로의 변신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정말 암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변화가 뒤따라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두고 벌써부터 지역 간 정치적 영향력의 변화 여부와 그로 인한 손익을 따지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지역 간 갈등과 분열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역별 인구 구조의 변화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분열적인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인구 변화가 현실 정치적으로 표의 수에 의존해야 하는 정당의 불가피한 변신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런 주목할 만한 정치 발전의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