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너무 고요하시니 

난초는 궁금해 꽃피는 거라 

탈선이라 불리는 행동을 곧잘 저질렀던 학창 시절.

술에 취하면.  가끔 시 를 소리내 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김소월의 <초혼>과 이상의 <꽃나무>. 정지용의 <호수>. 미당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김수영의 <눈>, 그리고 김지하의 <성자동 언덕의 눈>. 정현종의 <섬> 뭐 이런 것들.. 그중 미당의 문장은 20대의 정서를 구성하는 가장 큰 기둥들이 되어줬고.

하지만 서정주의 시들이 간혹 내 문학적 감성에 와 닿을 때가 있었지만 점점 마음을 달리 먹게 됐습니다.

인간. 자연. 사회. 희망. 에 대한 진실을 담지 못하는 언어적 기교는 김춘수의 것처럼 그것이 아무리 미려하다 할지라도 차마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기에. 그를 서서히 외면하기로. 

그가 죽은 시간은 200년 12월 24일 늦은 밤.

군 입대를 앞둔 난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송년회를 하고 있었고. 그날 창밖에는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20세기의 추악한 눈이 새로운 세기의 하늘을 볼 수 없도록 배려한 하늘 의 뜻이 아니었나.

그리하여 산타는 어김없이 그날도 그 아름다운 함박눈처럼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간 것일지도.

지금에서야 나는 서정주의 일관성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일제 때는 일본 왕을 위해 여성들은 성노예로. 남성들은 총알 받이로 가서 희생을 독려했고. 베트남 파병 때도 기뻐 했던 일관성. 독재자들과 원만을 넘어서 서로를 배려하는 문학 정치를 해온 그는. 너무도 일관된 행보를 걸어온 그는. 그야말로 이 땅의 진정한 참여문학자였다고.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일 시를 썼던 이유를 이렇게 변명했던 미당은 

또 다시 4.19에 반대하는 시를 창작해 전두환에게 자신의 문장을 바쳤습니다.

아마 이승만이 그렇게 쉽게 하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 변명하고 싶었을지 모르고.

전두환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 변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폭력의 영구 집권 프로젝트를 무산 시킨 운동을 보지 못한 미당은 결국 눈뜬 장님으로 기억될겁니다.

정작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힘을 삶 속에서도. 꿈 속에서도. 그는 왜 몰랐을까.

현실의 다양한 잠재력을 느끼는 감수성이 그토록 둔했던 인물을 지금에서 과연 온전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시인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일까.

시는 정녕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