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봄날이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이 간다

......

그대여. 지나간 것들은 왜 이다지도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것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봄날이란게 있기는 했는지 모르겠소. 지나고 보니 그때가 춘삼월 호시절이었던것 같다며 짐작할뿐. 우리에게 언제. 떠나보내는 것이 가슴 막막하고 아리고 슬프던 봄날이 있었는지 난 모르겠소. 어릴적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놈 없었고. 중고등 시절에는 기껏 술 마시며 관람금지 영상을 봤다고 주임한테 걸려 하루종일 빳다맞은 기억 밖에 없고. 대학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군데도 곪아터지지 않은 곳 없는 만신창이 세상의 떠돌이가 되어. 날이면 날마다 부질없이 서로의 등에 상처내며 살아왔던 나에게 봄날이란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모르겠소.

그래도 희한한 일이지. 스무고개를 지나 서른을 넘어오니 저 노래. 봄날은 간다..... 딱 그 심정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꼈던 기분이었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영영 흘러가버린 기분을. 물론. 그 전에도 한번쯤은 그 비슷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입시를 통과하는 동안. 연인과 헤어지고. 낙담하고 있던 시기. 나는 이제 더 이상 까만 교복입은 고교생이 아니구나 하는. 뿌듯함이기 보다는 이상한 상실감같은 기분 말이오. 근데. 그건 아마 10대를 모두 흘려보냈다는 아쉬움에서라기 보다는 갑자기 십몇년동안의 소속감에서 일탈해버린 상태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마찬가지였을거요. 그건 스물의 끝에 느낀 그런 슬픔과 허무와는 분명히 많이 달랐지.

그대여. 도대체 우리에게 그 봄날이란 무엇이겠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말은 않았지만.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되어 만나게 될지. 하는 연분홍치마에 대한 그리움이었을지도. 아니면. 익히 말했듯 무엇이 되어 어떤 일을 하고싶다는 가능성에 대한 포부였을지도.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아직도 내 속에서 새로 싹틔워질 무엇인가를 아련하게 그리는 기다림. 사랑이었을지도. 나는 아직 내 봄날이 어떤 것이었던 건가를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소. 어쩌면 영영 그 봄날의 정체를 알지못할지도 모르지. 나에게 봄날이란 게 있었다는 것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봄날이 간다는 것은. 우리의 꿈과 사랑이 점점 다른 모습으로 점점 변해간다는 것은. 어제의 기쁨이 희미해지고 어제의 괴로움과 슬픔조차 시시해진다는 것은. 이제는 아이처럼 설레는 일도 없어지고 이제는 폭풍처럼 분노할 일도 없어진다는 것은. 이렇게 이런 뒷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봄날이 영영 간다는 것은. 무얼까. 문득 막막함에 헤메이는 나는. 이럴때. 너의 손을 가만히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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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오기전

차창 밖에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이 푸르러졌다.

집 근처에서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이고

이는 자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나의 뼛가루가 뿌려질지도 모르는곳이니.

다정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요즘 언젠가는 열릴 제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들 명단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저도 착수할까 합니다."

와줬으면 하는 사람들은 10명내외

계절은 겨울이 되었으면.

그러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괴로움도 조금은 더 무난하게 더 빨리 정리되지 않을까. 

겨울에 떠난 사람은 빨리 잊어버리고 남은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여 계속 즐겁게 살아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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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말을 들을때.

민주당의 신자유주의와 진짜 진보사이에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계급타파의 집단에서도 계급이 항시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서.

다들 곤궁한 입장이 되어보고 때론 열을 올리며 이어진 대화.

끝내 개운한 뒷맛을 보지 못하고 대화가 종결되어 아쉬운 와중에 

상사가 자리를 뜨면서 불쑥 던진 한마디가 내 머리를 울렸다.

'자네를 보면 내 젊었을 적이 생각난다네(자네에게서 젊었을 적내 모습을 본다네).'

이런 류의 말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잘못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오히려 그나마 있던 듣는 이의 태도는 점차 딱딱해지고 남아있는 공감대조차 줄어버리게 될뿐.

말하는 이가 잘못 생각한 건 무엇이었을까.

말하는 이의 짐작과 달리. 듣는 이는 현재 자신의 기질과 투쟁 중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 버린 것이다. 젊은 사람은 항상 지금과는 다른 자신을 꿈꾸기 때문에.

아직 덜 자란 우리는 결코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거라고.

하지만 말하는 이는 이제 더 이상 변할 여지가 없이 고착되어 버린 자아를 꺼내보인다.

그것이 '말'이 되기전에. 상대의 눈빛과 호흡. 같이 나눈 시간들이 어려있는 것을 보는 건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말'이 되서 튀어나오는 순간. 모든것은 상투적으로 변해버릴뿐만 아니라. 그래.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그 자리.. 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순간 나의 앞날이 아득해지고 마는것이다.

'당신은 나와 닮았어.'

돌이켜 보니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정작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안타까운 짝사랑의 시작이기도 할. 한마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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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책상 고무판 밑에 사직서를 아무도 몰래 끼워놓았다. 오전 한때 내 직장생활의 안녕을 걸고 일전을 붙을 태세로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오너의 눈치를 보는 윗사람들이. 오너가 데려온 사람을 챙기는 일로써 환심을 사려하는 바람에. 우연히 그와 같은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나와 동료들이 소외 된 결과가 빚어진 거다. 조직의 속성을 알지만. 쉽게 용서되진 않았다. 그렇다면 몇년간의 분투 끝에 나름대로 성과를 일궈온 동료들은 뭔가. 화가 치밀었다. 사회의 생리에 속물처럼 충실한 이런 조직에서. 저런 놈들 밑에서. 일 잘하겠답시고 머리 들이미는 내가 미련한 놈이지. 끓는 머리 속에선 그런 결론이 났다. 오로지 분노와 허무함으로 적어본 사직서는 고무판 밑에서 은장도처럼 번쩍거렸다. '숨은 공로' 란 이럴 때 가장 비참하다. 아무도 그 숨은 것의 견적을 제대로 내주지 않을 때. 그리하여 나 혼자 그 공로의 크기를 주장하며. 내 값어치를 설명해야할 때. 사직서는 그 자존심에 붙은 애틋한 부전지이다. 위기 앞에서, 본성이 드러난다. 내 눈에 가시랑 내 귀에 캔디 중에 무엇이 더 달콤한가? 무엇이 더 나를 성장시켜 주는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래서 내가 초라한 순간. 목표를 저 위에 두고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한 자세는. 우직한 정면돌파. 묵묵히 억울함 속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태클과 동정을 준비한 놈들이 당황할만한 페이스로. 보란듯이 잘해보이겠다. 심하게 잘해보이겠다. 아니. 부정적인 사람들 의식않고 내식대로 걸어가겠다. 미묘하고 재밌는 세상. 어떤 모양으로든지 모두 정산되리란 믿음으로.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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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사태에 대한 항의와 해명. 입장을 정리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자리. 잠시 한숨을 돌려본다. 

모두 빠져나간 사무실엔 고요함이 감돌고. 창 밖에는 검은 하늘이 내렸다. 어두움에 색을 잃어버린 푸르름이 실바람을 타고 흔들린다. 담뱃붙을 붙인채 한참 그걸 내려본다. 

컴퓨터에 있는 사진을 이것저것 훑어보다 두어달 전. 누이의 피붙이. 도봉산을 가서 찍어온 조카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봄햇살이 내렸던 약수터 옆 큰 바위에서. 녀석은 카메라를 의식하고는 앙증맞게 웃어보인다. 얼마전 이 공주님이 갑자기 전화를 했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말한다.

 "삼촌아빠. 삼촌아빠 전화 번호 이제 다 알아. 근데 삼촌 이번 토요일에 오실 거예요? 안 올 거예요? " 

삼촌도 보고싶고 먼저 세상을 등진 아빠도 그리운 아이의 물음에 그만. 마음이 녹아내린다.

 이 삼촌이 부족하지만 비슷하게라도 아버지 흉내를. 조금이나마 그 빈 자리를 채워 줄 수 있다면. 도원이를 위해서 삼촌이었다가 아빠도 되어줄게.

통화를 끝내고. 책상위. 조카의 또 다른 모습이 담긴 액자를. 멍하니 본다. 그러고 보니 누님의 어린날을 많이 닮았다.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은 온통 어두운 기색을 품고 바람은 쌀쌀함이 감돈다. 어쩐지 가슴이 후덥지근하다. 하얗고 작은 그 얼굴이 자꾸 보고싶다. 조금만 기다려요. 공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