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행복한 순간이란.  ‘내가 좋았으면 그만’ 인 문제일뿐.

기준과 수치를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나 아닌 다른 이에게도 그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 생각에 개개인의 행복은 문서상으로든 언급으로든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런 낱낱한 해부와 묘사가 가능한 행복이라면. 그게 과연 한 사람의 내면에서 행복으로서 오래 기능하고 유지될 만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결국 행복은 '객관적 사건'이 아닌 '느낌'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즉 나 자신의 ‘가장’이라는 기준을 타인에게 묻는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이 아닌 소회만 빈번할 가능성이 높을수밖에요.

개인적인 소회로는. 

전 비교적 부모님의 품을 누리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부모님간의 트러블과 잦은 부재로. 적적하고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를 피해 1년이 넘도록. 할머니댁에 지낸적이 있었는데.

그때 시골에서 여러 마리 개들과 산을 뛰어다녔던 매일. 그 열 살 정도 무렵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이었습니다.

불행 속에 피어난 행복이라고 해야할까요. 

정작 할머니께서도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여. 그곳에서조차 살가운 챙김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유별난 성향 덕분인지. 두려움과 쓸쓸함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지낸다는 기쁨. 같잖은 생각이었지만. 시골집과 할머니을 내가 지킨다는 의무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강아지들의 경우. 많이 뛰면 발바닥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온종일 산에서 들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그 바둥대는 다리를 잡아다 맡았던 발바닥 냄새가 아직도 기억나고. 너무 푸르러서 별천지 같던 숲. 겨울 벌판 같은 것들도 눈에 그릴 듯 생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이 제일 먼저 들고. 그 다음에는 온갖 감상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가. 이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스스로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느끼는 건.  내가 가정사로 인해 당시에 느낀 외로움에 대비해 큰 위안이 되어줬고. 그때의 저는 아무 목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대학 합격. 빠른 승진. 느닷없는 보너스. 어려운 책을 간신히 읽고 났을 때의 뿌듯함. 작고 큰 연애 감정처럼 작고 큰 행복한 기억들도 많지만. 

그것들은 자극적이고 너무 짧아서 돌이키면 박탈감에 피로할 때가 더 많습니다.

즉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 온전하게 장기기억으로 남을 만한 오래전 경험들. 

‘내가 직접 겪었으며. 찰나가 아닌 일정한 기간 동안 천천히 완결되어 작은 서사를 가지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며. 평생 내게 작고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