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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중추적인 제도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경험을 배우려고 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은 이런 사실에 아주 뿌듯함을 느꼈다. 그 이후 건강보험은 우리 국민의 자랑거리로 떠올랐다. 우리 건강보험제도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민간 의료서비스 공급과 정부 규제가 절묘하게 결합한 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정부가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낮게 통제하는 가운데 민간 의료기관은 많은 의료서비스를 공급함으로써, 우리 국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의료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우리 건강보험제도는 '반쪽짜리 건강보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건강보험의 급여 범위가 좁아 비급여 부분이 너무 크고, 건강보험에 포함된 진료행위도 개인이 부담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 의료비 지출 중에서 개인이 부담하는 부분의 비율이 약 40%에 달한다. 전체 국민의료비 중 공적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약간 넘는 반쪽짜리 건강보험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미국이 우리의 경험을 배우려 했다는 점에 도취해 간과하고 있는 한국 건강보험의 한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7개 질병군에 대해 진료비지불제도를 행위별 수가제로부터 포괄수가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행위별 수가제란 의사의 진료행위 하나당 비용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포괄수가제란 질병군당 비용을 미리 정해놓고 지불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행위별 수가제에 따라 진료비를 산정해 왔다. 이 방식은 진료행위가 추가될 때마다 진료비가 늘어나기에 의사의 진료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해 의사의 과잉진료와 국민의료비 증가 문제를 발생시켜 왔다.

정부는 포괄수가제 전환으로 과잉진료를 해소하고 의료비용을 억제하고자 한다. 포괄수가제의 경우 의사의 진료 양에 무관하게 지불 비용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의사의 과잉진료를 막고 의료비를 억제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포괄수가제 전환에 폭넓은 지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 보건 전문가도 포괄수가제 전환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정부 계획에 대해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포괄수가제로 바뀌면 의사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대한 유인이 없기에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이 저하되리라는 것이다. 우리 의료보장제도가 좋은 평가를 받아온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비용으로 풍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 전환은 자칫 의료보장제도의 큰 장점인 풍부한 의료서비스 공급이란 특성을 없앨 수 있다. 의사협회가 경고하는 것처럼 포괄수가제가 되면 의사가 지금까지 뭐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적극적 태도에서 가급적 치료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바뀔 수도 있다. 사실 정부와 의사협회 모두 포괄수가제 전환에 따라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양이 현재보다 축소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과잉진료가 적정진료 수준으로 축소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는 반면, 의사협회는 과소진료 수준으로 떨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는 차이가 있다.

그러면 국민이 받게 될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을 감소시키는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 자체로서만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일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의료비용은 줄일 수 있을지 모르나 동시에 의료보장의 정도도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살폈듯 우리 의료보장체계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비용 과다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더 본질적 문제는 저보장이라는 의료보장의 과소 문제이다. 아직도 국제적으로 비아냥을 받고 있는 반쪽짜리 건강보험을 '온전한 건강보험'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온전한 건강보험'으로 만들기 위한 개혁의 일환이 아니라면 일방적 의료비용 감축을 위한 효율화 조치는 그 기본 방향을 잃은 개혁이 될 수 있다. 포괄수가제 도입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개혁과 함께 추진돼야만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