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한 후 파업을 끝내려고 협상을 시작했다. 노조는 협상을 하면서도 하루만 더하자고 조합원들을 설득해서 근근히 투쟁을 이어갔다. 노조가 붕괴되기 직전에 노사협상은 타결되었다.

(약 6개월간 진행된 삼성과의 협상은 드라마다. 언젠가 협상 과정에 대해 공개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울산 분회장이 긴급체포되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짜 끝내야겠다고 결심하고 사측 대표를 불러 마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내가 타결하자고 말하자 사측 대표는 의외라는 듯 놀라며 고맙다고 말했다.

사측대표는 주저주저하더니 내 사정이 어려운거 잘안다며 뒤탈은 없을테니 걱정마라며 내게 현금으로 1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솔직히 고마웠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맙다고 말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내가 알려준 계좌번호는 노조의 투쟁기금을 보관하는 계좌번호였다.)

여기까지 사실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비난하지 마시길. 다음 이야기도 사실이다.

나는 노조임원들에게 1억원이 입금될거라고 알렸고, 임원회의를 거쳐 그 돈을 파업 참가 일수에 비례해서 조합원들에게 분배하기로 했다. 해고자를 제외한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한 지 얼마 안된 어느날, 조합원들의 계좌에 노동조합 명의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씩 입금되었다.

조합원들은 이미 파업 수당을 지급 받았기 때문에 노조에서 또 돈이 입금되자 놀라고 좋았던 모양이다. 내 전화기에 고맙다는 문자가 수도 없이 찍혔다. 나는 전화를 걸어온 조합원들에게 노조를 탈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된다고 답변했다.

7년이 지났지만 아직 노조는 건재하다. 오히려 조합원이 배로 늘었다고 한다. 조합원 대부분은 그때 입금된 돈이 어떤 돈인지 알지못한다.

운동판에서 김경욱이 사측과 합의하면서 개인적으로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얘기를 얼마전 들은 적이 있다. 그 소문이 얼마나 퍼졌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사실인지 물어본 사람은 딱 한명 있었다.

내가 운동사회의 고결한 원칙을 어겼을지 모른다. 누군가 왜 조합원들의 총회를 거치지 않고 돈을 받았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확인도 없이 나를 돈받고 노조와 투쟁을 팔아먹은 어용이라고 비난하면 억울하다.

마찬가지다.

나를 데이트폭력 가해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내게 진실이 무엇인지 물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라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발로차고 살해위협을 했다는 비방글이 운동단체 사이트마다 도배되었다. 권리침해신고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소수의 패악질인 줄 알지만 지칠대로 지친 내 마음에 운동사회란 말조차 지긋지긋하다. 그곳에서 내 몸은 빠져나왔는데 아직 이름이 걸려있어서 이런가보다. 이미 더러워진 이름마저 빼내와야 좀 편안해질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