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벽은 높았다.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2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서 열린 2013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 남자 농구 선수권 대회 조별리그 C조 2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76-64로 졌다. 전반은 선전을 펼쳤지만 3쿼터에 급격히 무너지면서 대어를 낚는데 실패했다.

야전사령관 교체를 통한 공 흐름의 개선

 한국은 1쿼터 초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양동근-조성민의 가드진은 이란의 마하디 카마라니(186cm)와 하메드 아파흐(192cm)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며 계속 뒤로 밀려났다. 공 흐름이 좋지 않은 한국은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었고 김종규, 김주성의 1대1 공격에 의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균형이 깨진 공격은 득점 정체와 함께 이란에게 속공을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은 1쿼터 3분 57초에 4-9로 끌려갔다.

 1쿼터 중반 양동근이 물러나고 김태술이 투입됐다. 포인트가드를 바꾼 것이다. 그러자 공 흐름이 좋아지면서 패스 게임이 살아났다. 득점을 주도한 건 김종규와 조성민이었다. 김종규는 중거리슛, 돌파를 통해 득점을 올렸고 조성민은 약속된 움직임에 의한 외곽슛으로 연속 7점을 몰아 넣었다. 살아난 공격에 비해 수비는 다소 아쉬웠다. 자유투 성공 이후 풀코트 프레스를 펼쳤지만 큰 효과가 없었고 이란의 포인트가드 카마라니가 주도하는 2대2 공격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다. 1쿼터는 15-18로 뒤진 채 끝났다.

지역 방어의 구성과 이종현의 활약

 2쿼터 시작과 함께 한국은 지역 방어를 꺼내 들었다. 이종현(206cm)이 정 가운데 위치하는 1-3-1 지역 방어였다. 이란은 바뀐 수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득점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사이 한국은 김주성의 컷인, 김선형의 룸서비스를 받은 이종현의 골밑슛으로 점수를 추가하며 2쿼터 1분 57초에 19-18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란은 반격에 나섰다. 한국의 지역 방어를 상대로 이란의 사마드 니카 바라미(198cm)는 돌파를 성공시켰고 모하메드 잠시디 자파바디((199cm)는 3점슛을 꽂아 넣었다. 모두 왼쪽 코너에서 이뤄진 공격이었다. 한국의 지역 방어는 왼쪽 코너가 허물어지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한국은 역전을 허용했고 2쿼터 4분 42초에 21-25로 끌려갔다.

 한국은 2쿼터 중반 이후에도 지역 방어를 유지했다. 대신 선수 구성에 변화를 줬다. 지역 방어 중앙의 왼쪽을 지켰던 스몰포워드 최준용(202cm)을 빼고 가드 3명(김선형-조성민-김민구)을 동시에 투입했다. 그러자 팀 스피드가 좋아지면서 왼쪽 코너에서 기회를 내주는 장면이 크게 줄어들었다. 공격에서는 이종현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는 동료의 룸서비스를 받아 골밑슛을 넣었고 공격 리바운드를 걷어냈으며 중거리슛도 성공시켰다. 한국은 34-30으로 앞서며 전반을 마감했다.

공격 균형의 붕괴와 속공 허용

 3쿼터 들어 한국의 경기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가장 큰 문제는 공격이었다. 이란의 강력한 압박 수비에 밀려 유기적인 공격이 실종됐다. 외곽에서 겉도는 공격의 성공률은 매우 낮았다. 공격 균형의 붕괴는 이란에게 속공을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카라마니가 전개한 후 하메드 하다디(218cm) 또는 바라미가 마무리하는 이란의 얼리 오펜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프 코트 수비에서도 하다디의 골밑슛과 공격 리바운드, 바라미의 2대2 공격을 제어하지 못했다. 한국은 3쿼터에만 14점이 뒤쳐지며 41-51로 3쿼터를 끝냈다.

 한국은 4쿼터 초반 힘을 냈다. 김종규는 중거리슛과 팁인으로 연속 득점을 올렸고 최준용도 자유투로 점수를 쌓았다. 수비에서는 다시 꺼내든 지역 방어로 이란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한국은 4쿼터 3분 1초에 47-53으로 추격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기를 뒤집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이란의 센터 하다디의 속공과 공격 리바운드를 막지 못했고 포인트가드 카마라니의 돌파에 이은 룸서비스도 제어하지 못했다. 이란은 경기 종료 4분 14초전 64-50으로 달아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여전히 높은 이란의 벽과 이종현의 성장

 한국의 패인은 공격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드진은 이란 앞 선의 강력한 압박 수비에 밀려 공격 조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로 인해 유기적인 공격이 실종되면서 야투 성공률(35.5%)이 떨어졌다. 공격의 부진은 이란에게 무수히 많은 얼리 오펜스를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란의 주요 선수를 막는데도 실패했다. 김종규, 이승준, 이종현 등이 차례로 돌아가며 수비했지만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뛰는 하다디(30득점 13리바운드)의 벽은 역시 너무 높았다. 포인트가드 카마라니(9도움)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며 하다디 등에게 양질의 패스를 배달했다. 포워드 바라미(23득점)에게도 내, 외곽에서 너무 많은 점수를 내줬다. 

 패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있었다. 아시아 최강의 높이를 자랑하는 이란을 상대로 공격 리바운드를 15개나 걷어냈다. 물론 이란에게 더 많은 공격 리바운드(21개)를 내줬지만 우리도 주어진 여건하에서 할 만큼은 했다. 이종현의 성장세도 눈에 띄었다. 그는 지역 방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고 리바운드(공격 2개)와 공격(8득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