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농구대표팀은 지난 10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서 열린 제27회 FIBA 아시아 남자 농구선수권대회 4강전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79-86으로 패했다. 전반은 앞섰지만 후반에 앞 선 수비의 붕괴와 그로 인한 많은 부작용으로 역전을 허용한 아쉬운 패배였다. 3-4위전으로 밀린 한국은 11일 대만전을 반드시 이겨야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 김주성을 앞세워 기선을 제압한 한국

 경기 초반 접전이 펼쳐졌다. 한국의 공격은 김주성과 조성민이 주도했다. 김주성은 돌파와 포스트업으로 림을 공략했고 조성민은 연속 3점슛을 꽂아 넣었다. 수비에서는 필리핀의 센터 마커스 다우잇(210cm, C)을 집중적으로 막았다. 김종규가 전담 수비수로 나섰고 김주성 등이 베이스라인에서 도움이 오는 함정 수비가 펼쳐졌다. 이와 같은 수비로 다우잇은 잘 막았지만 필리핀의 다른 선수들에게 공격 리바운드를 허용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국은 1쿼터 7분 9초에 10-13으로 끌려갔다.

 1쿼터의 마무리는 한국이 좋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주성이 있었다. 김주성은 1대1 공격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속공 상황에서 얻어낸 자유투로 득점을 올리며 1쿼터 종료 1분 44초전 팀에 리드(14-13)를 안겼다. 기세를 탄 김주성은 18초뒤 얼리 오펜스 상황에서 노련하게 득점 인정 반칙을 유도해냈다. 1쿼터에만 11점을 몰아 넣는 환상적인 활약을 펼친 것이다. 김주성의 원맨쇼에 힘입어 한국은 1쿼터를 19-15로 앞서며 마감했다.

▲ '밀고 당기기'와 마커스 다우잇의 부상

 2쿼터 초반에는 밀고 당기기가 펼쳐졌다. 필리핀이 먼저 힘을 냈다. 제이슨 윌리엄(176cm, G)의 골밑슛, 중거리슛으로 득점을 올리며 19-19로 따라왔다. 한국은 반격에 나섰다. 이종현이 막고 베이스라인에 함정을 놓는 수비를 통해 다우잇 중심의 필리핀 공격을 잘 방어했다. 그리고 이종현의 팝아웃에 의한 중거리슛, 이승준의 속공 마무리 등으로 점수를 올리며 28-21로 달아났다. 그러자 필리핀은 다우잇의 자유투, 짐 알라팍(176cm, G)의 3점슛으로 2쿼터 5분에 26-28로 추격했다.

 힘겨루기는 2쿼터 중반 이후에도 계속 됐다. 한국이 먼저 치고 나갔다. 다우잇의 부상으로 필리핀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을 타 양동근의 3점슛과 속공 마무리로 연속 득점을 올렸다. 필리핀은 바로 반격했다. 진 마르크 핑리스(196cm, F)는 위력적인 골밑 공격을 선보이며 다우잇의 공백을 메웠고 가브리엘 다니엘 노우드(194cm, G)와 윌리엄도 각각 풋백과 돌파를 통해 림을 공략했다. 팽팽한 접전이 펼쳐진 2쿼터는 한국이 39-36으로 앞선 채 끝났다.

▲ 앞 선의 붕괴와 김민구의 분전

 3쿼터 초반 한국은 필리핀에게 압도당했다. 공격은 김종규의 중거리슛 시도에 의존하는 모습이 나왔다. 슛은 모두 림을 돌아 나왔고 필리핀의 윌리엄이 마무리하는 속공으로 연결되었다. 수비도 문제가 많았다. 양동근-조성민-김선형은 윌리엄의 돌파를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이는 리바운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주성, 김종규가 윌리엄의 돌파를 저지하느라 리바운드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필리핀에게 계속 공격 리바운드를 내준 것이다. 한국은 3쿼터 3분 55초에 39-47로 끌려갔다.

 한국은 3쿼터 4분 9초에 김민구의 3점슛으로 후반 첫 득점을 신고했다. 그 후 공격은 안정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김민구는 3점슛과 돌파를 통해 득점을 주도했고 김주성-이종현은 페인트존에서 멋진 공격을 합작했다. 하지만 수비가 문제였다. 이번에는 필리핀의 루이스 알프레드 터노리오(176cm,G)와 짐 알라팍(176cm, G)의 돌파를 막지 못했다. 앞 선이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비장의 무기인 '1-3-1 지역 방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국은 56-65로 뒤진 채 3쿼터를 끝냈다.

▲ 승부수와 부작용

 4쿼터에 한국은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필리핀 170cm 중반 가드들의 돌파를 막기 위해 180cm의 양동근과 김태술을 동시에 기용한 것이다. 이 변화는 효과를 거뒀다. 알라팍, 터노리오, 윌리엄 등의 페인트존 침투 횟수가 다소 줄어든 것이다. 필리핀의 득점 행진은 주춤했고 한국은 추격에 나섰다. 김민구는 3점슛 3개를 꽂아 넣으며 필리핀 수비의 팽창을 유도했고 이승준은 포스트업을 통해 연속 득점을 올리며 이를 잘 활용했다. 한국은 4쿼터 5분 43초에 74-73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하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1대1 돌파가 차단된 필리핀 가드진은 픽&롤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한국은 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김태술 등의 가드진은 스크린에 너무 쉽게 걸렸고 김종규 등의 빅맨은 돌파 저지에 신경 쓴 나머지 볼 핸들러의 외곽슛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한국은 필리핀의 알라팍에게 역전 3점슛을 얻어 맞았고 경기 종료 54초전 79-84로 차이가 벌어지는 3점슛을 또 다시 허용했다. 2대2 공격에 의한 외곽슛이었다.

▲ 무너진 수비 & 새로운 슈퍼스타

 한국의 패인은 수비였다. 필리핀의 '170cm 중반 3총사' 알라팍-터노리오-윌리엄은 1대1 상황에서 쉽게 돌파를 성공시키며 40득점을 합작했다. 마치 전태풍(고양 오리온스) 3명이 번갈아 나와 시도하는 듯한 필리핀의 돌파에 한국의 앞 선은 너무 무력했다. 이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빅맨들이 필리핀 가드의 돌파를 막느라 리바운드에 가담하지 못하면서 필리핀에게 많은 공격 리바운드(19개)를 허용했다. 승부처였던 4쿼터에는 돌파에 너무 신경 쓴 탓에 외곽슛 대비를 하지 못했다.

 패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대학 4학년 김민구는 환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그는 한국이 큰 어려움을 겼었던 후반에 팀을 사실상 홀로 이끌었다. 고비마다 3점슛을 넣었고 투지 넘치는 레이업슛으로 득점 인정 반칙도 유도해냈다. 비록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공격 시도로 27득점(3점슛 5개)을 폭발시킨 김민구는 실로 일신도시담(一身都是膽-온몸이 담덩어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