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여행 다녀온지 100일도 넘었는데 아직도 마무리를 못 지었;;;;

여행 9일째, 놀라운 자연 속에 묻혀 있는 병령사석굴을,

그야말로 껍데기만 후다닥 둘러보고는...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우리를 실은 쾌속선은 왔던 길을 되짚어 쌩쌩 물 위를 달려나간다.

마치 누가 일부러 대패로 밀어낸 것만 같은 단층.

'황하'에 이런 푸른 물이...

올 때보다는 한결 좋아진 시야에서 병령사와 유가협 댐을 연결하는 물길 주변 풍경을 몇 장 찍어본다.

출발할 즈음에 있던 갈림길에 도착하자,

수심이 얕아졌는지 물빛이 다시 누리끼리하게 변한다.

다시 상륙.

저기 물가에 둥둥 떠 있는 건 정녕 안 치울 건지-_-

하염 없이 우리를 기다려주던 택시에 다시 오른다.

언제나 평화로운 대륙의 국도.

저런 넘들이 수시로 길을 가로막으니 더더욱 평화롭다.

너무나 평화로워서인지 차들이 한 시간 가까이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이 8월 중순의 폭염 속에서;;;;;;;;;;;

언제나 그렇듯, 무슨 일 때문인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염 없이 기다릴 밖에.

어느덧 아무도 알지 못할 이유로 정체는 다시 풀리고,

우리는 다시 '서부대개발'의 전진 기지인 공업 도시 란주의 한가운데 들어선다.

이제 숙소에 한결 가까워졌는데,

아침부터 '힘들다, 피곤하다'를 연발하던 마나님이 조용한 이유도 깨닫지 못하고 남편이 눈치 없는 소리를 건넨다.

'우리 이곳 특식 먹고 들어갈까?'

이곳, 감숙성은 그 척박한 기후 탓에 무슨 대단한 음식 문화가 발전한 곳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슬람 문명권과 많은 것을 공유하던 지역이라 이른바 '서역풍'의 음식을 좀더 쉽게 맛볼 수 있다면 모를까.

어쨌든 란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바로 '라면'.

당연히 고급요리는 아니고, 시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스낵이다.

고급이 아닌 게 문제는 아니지만, 그닥 위생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도 문제.

소고기를 우려 만든 저 국물맛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시원하지만,

그 주변에 둥둥 떠 있는 뻘건 기름장 및 고수를 포함한 각종 양념채소들은 많은 한국인의 입맛을 괴롭히기도 한다.

어쨌든 남편의 '우리 라면 먹고 들어갈까?'는 권유 한 마디에,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마나님의 분노가 마침내

터지고야 말았다.

마침내 폭발한 마나님의 전투력을 한갓 미물에 불과한 남편이 대적하는 건 당연지사 불가능,

이리하여 벌어진 일은...

원래 이후의 일정은 (이날은 월요일),

화요일 오전 기차를 타고 400km 동남쪽에 있는 천수로 이동한 뒤 화요일에는 대상산 석굴을,

수요일 오전엔 맥적산 석굴을 관람하고

오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22시간 동안 이동하여 목요일 오후 상해에 도착,

금요일에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는데,









다 날아가버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당장 내일 귀국할 테니 잘 놀다 와!'라며 귀국 비행기를 알아보라는 엄명에 시달리다가, 싹싹 빌고 빌고 또 빈 끝에,

일단 중간 일정 -천수에서 석굴 관람-은 모두 취소,

화요일 란주에서 상해로 타고 날아갈 비행기표를 확보하고, (보시다시피 3000元, 즉 55만원이 넘는 추가 비용 발생)

대*항공에 전화를 하여 물경 30만원에 가까운 추가요금을 내고 귀국 비행기 스케줄을 '하루' 당기는 데 성공하고,

상해에 하루만 예약해두었던 숙소 예약을 이틀로 연장하고, (뭐 하루치 숙소 비용은 위에 비하면 소소)

그리고 상해에서는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준다는 약속을 거듭거듭 한 뒤에야 흉흉하던 분위기를 살짝이나마 수습한다;;;;;;;.

그 와중에 맥주 한잔은 그래도 홀짝거려보는 여유도 과시해 보고.ㅋ

정작 큰 문제는 그 다음날 터졌다.

비행기 이동을 하기로 했으니 진작에 예매해 두었던 란주-천수 및 천수-상해 기차표는 모두 취소해야 할 판,

숙소에 식구들을 남겨두고 새벽 같이(역에 걸린 시계를 보시라) 란주역에 와서 취소 창구에 갔는데.........

예전에 언급했다시피 이 기차표는 모두 인터넷으로 예매한 뒤 '돈황' 기차역에서 발권을 해둔 것들이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시는지?

이곳 역무원 말로는 '인터넷 예매 후 일단 발권한 기차표는 발권한 역 아니면 출발기차역에서만 취소가 가능하다'고 한다.

즉, 우리의 두 기차표 중 란주-천수 짧은 노선 표는 취소할 수 있지만, 천수-상해 표는 돈황으로 돌아가거나 천수에 가지 않는 이상 취소가 불가능하단 말씀.

하여, 앉은 자리에서 요금 1000元(18만원) 가량을 또 꽁으로 날렸다ㅠㅠㅠ

이 글을 보신 분들, 혹시 대륙여행을 할 때는 '아무리 귀찮아도 예매해둔 기차표를 미리 발권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기억합시다.......

그 와중에도 막간을 이용하여 결국 란주 라면을 한 그릇 뚝딱해주시는 식탐쟁이 서방-_-v

공항버스에 올라 란주 주변 민둥산에 작별을 고한다.

황하도 이제 안녕.

이곳은 '공항' 마트.

역시 대륙의 스케일이다.ㄷㄷㄷ

국내선 밖에 없(던가?)는 지방 공항 청사라서 그런가,

분위기가 기차역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마나님 비위 맞추느라 살얼음을 걷는 것만 같은 아빠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고맛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어린이는 늘 싱글벙글.

땡볕을 뚫고 비행기에 오른다.

아, 근데 우리가 찾아갈 상해는 이맘 때 참으로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던 곳이었지.

신문 기사를 봐도 그러하단다.

여기서 한번 쯤 다시 봐줘야 하는 '평범한 상해 시민의 드립'.

상해에선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찜통 속을 돌아다닐 생각이란 애시당초 없었기에,

눈앞에 보이는 동네에서 모든 일정을-차마 여행기로 올리기 뭣한 그런- 소화하다 귀국.

이걸로 올 여름 12일에 걸친 '지리멸렬 감숙성' 여행기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