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오기 진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다.

중원을 노리는 독사 秦

진나라에게 오기는 항상 악몽 같은 존재였습니다. 오기는 진나라와 싸웠을 때 전투란 전투는 모두 쓸어 담았습니다. 붙을 때마다 패하자 진나라는 야전에서는 도저히 오기와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성의 방어에만 주력하게 되는데 사실 그 진나라는 전국시대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나라였습니다. 오기가 위나라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항상 공격만 하는 나라였고 결국 천하를 삼켜 통일을 이룩해냅니다.

향후 천하를 거머쥔 진나라는 여러 가지 물음표를 가진 나라입니다. 기원도 모호하고 나라를 이루는 지배층과 백성들의 족속도 모호한 나라. 서쪽의 이민족 융족이 근본이었다고 하고 낙후된 환경과 문화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게 표준적 인식입니다. 하지만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은나라의 속민들이 서쪽으로 이주를 해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은나라가 주나라에 멸망당했을 때 왕족의 일부가 서쪽으로 와 진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요. 실제 진나라 왕실이 내세우는 종교관과 천관을 보면 은나라와 닮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발굴된 초기 유물들만 보아도 서융족과 거의 유사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로 보이는데 이렇게 참 모호한 구석이 많고 여러 가지가 베일에 싸여 있는 나라가 바로 秦. 하지만 진에 대해 대략 합의된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농업경제가 아닌 목축경제에서 시작한 나라입니다. 조상들이 말과 가축을 잘 키웠는데 특히 비자(非子)라고 시조로 숭상 받는 인물이 목축에 능해 주왕실로부터 봉지를 따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상이 농민이 아닌 것은 확실한데 가축을 잘 기르는 그들의 특기를 계속 유지해간 것으로 압니다. 가축을 잘 기르면 여러 가지가 좋습니다. 짐승의 가죽은 질 좋은 전투복이 되고 우수한 군마를 대거 확보할 수 있으며 소금에 절인 고기는 훌륭한 전투식량이 됩니다. 무엇보다 동물의 기름을 다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 공격용 수레, 병거의 바퀴를 관리하는데 쓰이는 것이고 또 그 기름은 방어전과 침략전에서 쓸 불을 만드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특히 성을 지키는데 있어 불을 피울 동물의 기름은 꼭 확보해야할 것이었죠.

그리고 태생이 전사 집단입니다. 전 백성이 전사의 피를 타고난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초에 사나운 서쪽의 오랑캐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같은 수의 인구라고 하더라도 장병으로 뽑아 쓸 자원의 비율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비록 서쪽의 오랑캐로 인식되었지만 싸움을 잘하는 이들은 실제 어느 시기부터는 서쪽의 이민족들과 싸우면서 주왕실을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서쪽 이민족에 맞서 주왕실의 호위무사, 근위병 역할을 해왔지요. 기원이 서융(西戎)족에 있다지만 주왕실의 투견노릇을 하면서 서융족과 자신들을 분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서융이라는 서쪽 이민족들과 싸우면서 자신들의 근거지를 만들면서 확대해나갔고 또 그들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싸움을 통해 정체성을 확보하고 성장해온 전사들의 나라가 바로 진나라입니다.

시작부터 창대했던 나라

이 전사집단은 결정적으로 주나라의 재건국과 동천을 크게 도왔습니다. 왕실의 내분과 서융족의 침입으로 수도 호경이 초토화 되어 서주 왕실이 낙읍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할 때 진나라가 대활약을 했습니다. 주나라 수도 호경에서 서융족의 잔당과 싸워서 그들을 몰아냈고 서주왕실이 안전하게 천도하도록 보디가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왕실을 재건하고 동주시대를 여는데 큰 공을 세웠지요. 그 때 공을 인정받으며 정식으로 제후 승인을 받았는데 당시 그들은 위상만을 높인 게 아니었습니다. 동천하는 주나라가 버려두고 간 땅을 흡수했는데 이 때 진나라는 주나라가 다스렸던 알짜배기 영토를 상당부분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얻은 건 위상과 영토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나라 영토에서 살던 이들이 모두 천도를 따른 것이 아니었는데 진은 주나라의 무인들과 핵심인사들도 흡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주나라의 생존전략과 생존방식, 전쟁노하우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주나라를 만든 주공의 아들이 봉해져 건국된 노나라가 주나라의 문화와 관습 등 이러한 소프트파워를 고스란히 가져갔다면 서방의 진나라는 주나라의 서쪽 영토를 대부분 흡수하면서 주나라의 하드파워를 흡수한 셈이었죠.

은나라의 유민들이 참여 했고 은나라식의 상제관념을 가져 독자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사람들, 거기에 주나라의 핵심거점과 하드파워까지 흡수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중원의 나라들에게 미개인 대접을 받았습니다. 춘추시대중기까지 열국들에게 서쪽 오랑캐로 취급당했고 실제 낙후된 문화와 환경에서 시작한 나라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천하를 통일했기에 끝은 창대했지만 애초에 미미하게 시작을 한 나라로 인식하고 이것이 표준적인 진나라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은나라의 문화도 흡수했고 주나라의 핵심영토와 인사들까지 흡수하며 시작했던 이 전사집단의 나라는 시작부터 지극히 창대했던 나라였습니다.

춘추시대 초중기까지 다른 나라들은 그들을 비록 이민족이라고 인식하고 오랑캐라고 불렀지만 그들의 무시무시한 잠재력은 인정을 했고 두려워했습니다. 오죽하면 그들을 호랑지국이라 했겠습니까?.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 다른 건 몰라도 싸우면서 태어났고 성장했으며 전투와 전쟁이 자신들의 정체성이자 생존방식이며 생활양식이었는데 이들의 투쟁심과 무력은 다른 나라들이 진의 건국초기부터 매우 두려워한 바였습니다.

이들이 서방에서 중원을 바라보는 독이 오른 코브라였다면 셋으로 분열되기 전의 晉은 태행산의 범이었죠. 삼진으로 분열되기 전부터 코브라와 호랑이는 많이도 싸웠습니다. 晉과 秦은 전쟁과 갈등은 정말 격렬했는데 특히 효산(崤山)의 대전은 춘추시대 전쟁답지 않게 끔찍한 살상 섬멸의 전쟁이었습니다.

초기부터 창대하게 시작한 전사들의 나라 秦, 위나라의 모태였던 晉과 무수히도 격렬하게 싸웠던 나라. 오기가 대치한 상대는 이렇게 무서운 적이었지요. 하지만 오기에게 진나라는 코브라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고양이 앞에 쥐신세였을 뿐.

  -오자병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