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틀 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열흘 정도 햇빛을 보지 않고 지냈습니다. 뭔가 멍하고 입안이 허는 상처도 생겼지요. 그래서 오렌즈 주스를 밤새 한 통(1L인지 1.2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잔뜩 마시고는 햇빛을 쬐러 나서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운전 못하는 제가 가기 쉽고 전부터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대구 수목원을 한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나가 그것만 하기엔 왠지 조금 아쉬워서 동네에 뭔가 새로운건 없나 검색을 했습니다.
운좋게도 전부터 보고싶었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마침 다음날(글쓴날 기준으로는 어제)부터 주말까지 공연을 하는겁니다. 대충 내용을 알던 작품이지만 제대로 된 내용을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참 궁금했던 작품이었지요. (책은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건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에 실컷 걸은 다음 저녁에는 연극을 보는 금요일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시간이 안 맞을까 연극 표는 예매하지 않아서 조금 고생했습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섰습니다. 수목원을 가서 오랜만에 사진도 찍으면서 뚫려있는 길은 모두 다 돌았습니다. (오랜만에 찍어서 제대로 된 사진은 없을거라 예상합니다... 원래 잘 찍는 편도 아니었구요. 혹시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게 있으면 이 사진들을 다음에 올릴께요.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습니다.) 세시간 동안의 산책을 마치고 연극 공연장으로 이동하니 다섯시가 조금 못 되었습니다.
예매창구는 있지만 사람이 없더군요. (공연은 일곱시 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몇바퀴 빙글빙글 돌면서 혹시 사람없나 두리번거렸습니다. 경비아저씨가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다가오더군요.. -_-;;; 그래서 바로 붙잡고 예매창구에 왜 사람없냐고 따졌습니다.. 아저씨는 그날 공연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분이더군요. 연극 시작 시간을 물으시더니 여섯시반쯤오면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 던져주시고는 도망가셨습니다. (뭔가 제정신은 아닌놈이구나라고 느낀것 같습니다.. ^^;;;)
그래서 근처의 수제비집에가서 저녁으로 수제비를 먹고 다섯시반에 다시 가보니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와서 팜플렛 상자를 옮기고 계시더군요. 바로 붙잡고 표를 샀습니다. 앞에서 두번째 줄로요. 전 눈이 나쁜데 안경쓰면 눈이 금새 피곤해지고 눈물이 흘러 안경을 잘 안 씁니다. 그래서 연극이나 영화볼때 앞자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앞자리는 다른 사람의 움직임으로 극을 보는데 몰입을 깨는 일이 적은 편이기도 하지요.)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연극을 봤습니다. 순수 공연시간만 140분 짜리 연극입니다.
중간의 쉬는 시간과 마친 이후에 주위 사람들이 뭔지 모르겠다거나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 이야기가 제 귀에 많이 들려왔습니다.
연극 도중에는 열심히 웃던 분들이기도 했기에, 사실 좀 안타까웠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제일 웃지 않은 사람이 저인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사실 전 연극을 보면서 굉장히 슬펐습니다. 아 우리사회를 비꼬고 있구나, 내가 바로 저 사람의 일부이구나 하구요. 지금의 사회현실과 연상 작용이되어 전 웃을 수가 없는 웃긴 장면이 계속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 연극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는지 잘 설명하는 글은 전 본 적이 없습니다. 연극을 보고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물론 제 해석이 잘못되었을 확률도 상당히 큽니다. 게다가 전 말도 잘 못하는 편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스포일러가 왕창 들어가 있지만 잘못되었을 확률이 상당히 큰 알아먹기 힘든,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제 해석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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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있으니 원하지 않는 분은 그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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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작 / 임영웅 연출 / 극단 산울림


블라디미르 = 디디 (한명구)
에스트라공 = 고고 (박상종)
포조 (이호성)
럭키 (박윤석)
소년 (김형복)



#간략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내용 소개

(1막)
나무가 있는 언덕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 둘은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인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고도일까 기대하지만 등장한 것은 포조와 럭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포조는 디디와 고고를 데리고 놀다가 떠난다.
밤이 되어도 고도는 오지 않고,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올 것이라 말하고 떠난다. 디디와 고고는 실망하면서 잠이 든다.

(2막)
나무가 있는 언덕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 둘은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인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고도일까 기대하지만 등장한 것은 포조와 럭키. 디디와 고고는 포조를 다시 만나 반갑지만 아픈 포조는 둘의 곁을 떠난다.
밤이 되어도 고도는 오지 않고,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올 것이라 말하고 떠난다. 디디와 고고는 실망하면서 잠이 든다.



----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스포일러성 진짜 내용 + 주관적 해석)


일단, 연극을 보기 전 많은 사람들은 연극 소개글이 담긴 팜플렛을 봅니다. 분명히 거기에는 등장인물이 다섯이고 각자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그 중에서 주인공인 둘의 이름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극 중에서 이 이름은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둘은 서로를 디디와 고고라 부르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소개합니다. 단지 고도의 심부름으로 둘을 찾아 온 소년만이 저 팜플렛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어느샌가 관객들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어려운 이름 따위는 금새 잊고 그들을 디디와 고고로 기억합니다.
예, 그들은 디디와 고고입니다.
물론 애칭이라 생각하고 간단히 넘길 일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극의 순서를 잠시 무시하고 설을 풀자면 디디와 고고가 생각하는 모자(정식명칭은 아닙니다.보신분은 알것이고, 안 보신 분들은 대충 쓰면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조금 아래에 관련 이야기도 나옵니다.)를 쓰고 관객들을 향해서 하는 말 중에서 관객들도 모두 생각도 못하고 바보같다고 우리와 똑같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때도 여전히 웃고만 있지요.. 웃긴 장면이 앞뒤로 붙거든요. 관객마저도 자연스럽게 부조리극의 일부로 만들어 버립니다.)
전 이 이름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단서가 부족하니 일단 넘어가죠.

가장 중요한 점은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점이지요.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만나면 자신들에게 좋은 삶이 올거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도가 누구인지 오긴 오는건지는 모릅니다. 그냥 막연히 기다립니다.
예, 고도는 꿈이자 희망이자 행복한 삶의 보장입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지루합니다. 그래서 둘은 시간을 죽입니다. 예, 이 표현이 딱입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는 굉장히 단면적이고 그래서 알기 쉬운 민물입니다. (저는 이 둘이 등장하고 얼마 후부터 웃긴 부분이 나와도 웃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포조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럭키를 노예로 부리면서 등장합니다. 주위의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한 손에는 채찍을 다른 손에는 끈(이 끈의 반대쪽은 럭키의 목을 묶고 있습니다)을 잡고 있지요.
럭키는 말도 없고 포조의 많은 짐을 들고 있으며 목에는 목줄이 묶여 있습니다. 포조가 시키는대로 움직이지요.
디디와 고고는 둘이 등장할 때 포조가 혹시 고도가 아닐까 기대합니다. 럭키에게는 그런 기대를 않지요. 하지만 포조는 고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포조는 많을 것을 가졌고, 디디와 고고는 점점 포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포조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라면서 디디와 고고를 데리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놉니다. 예, 포조에게 럭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셋은 같이 럭키를 괴롭히며 웃고 떠듭니다. 그러면서 혹시 럭키가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떨지 궁금해하면서 럭키에게 생각하라고 명령을 내리지요. 럭키는 자신의 모자를 쓰고(예, 이 모자가 위에서 잠시 나온 생각하는 모자입니다)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를 몹시 흥분하면서 계속 외칩니다. 셋은 겨우 럭키를 쓰러뜨리고 모자를 벗겨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포조가 권력자(어떤 권력자인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그 부분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습니다.)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죠. 주위 모두가 자신을 받들게 만들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제있는 권력자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고 무지 재미있죠.
럭키는 보이는 그대로 약자입니다. 가장 힘들지만 가장 무시당하고 괴롭힘 당하며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럭키입니다. 뭐, 물론(?) 실패하지만요. (관객들을 포함해서) 어려운 럭키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리고, 포조와 럭키는 떠납니다.

하지만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일까요. 럭키의 생각하는 모자는 땅에 떨어진 채로 남아있고, 이는 디디와 고고가 주워서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디디와 고고도 저 모자를 쓰면 가끔씩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남은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권력자와 하층민을 본 디디와 고고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하는 놀이에 권력자 놀이를 추가합니다. 권력자가 되고파하는 마음도 남은 것이지요.
(사실 이 내용은 다음날 이야깁니다.)

밤이 오고 소년이 오고 고도는 내일 온다고 말합니다. 이 내용도 뒤로 넘깁니다.
그리고 밤이 지납니다.

낮이 되고 디디와 고고는 나무 앞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 고도를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1막과 대체로 비슷하게 시간 죽이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생각하는 모자를 발견하고 모자를 바꿔쓰기 시작합니다.
원래 고고는 가슴이 아프고, 디디는 복부가 아픕니다.
모자를 바꿔쓰기 시작하면서 고고의 모자를 쓴 사람은 가슴이 아프고 디디의 모자를 쓴 사람은 복부가 아프며 생각하는 모자를 쓴 사람은 똑똑해집니다. 서로 돌고 돌지요. 이 부분은 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1막부터 계속 등장하는 디디와 고고의 성격이 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점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의지가 강하고, 고고는 기억력이 나쁘고 떠나려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고고는 의지가 약해서 디디가 고도를 기다려야한다고 하면 그냥 다시 기다립니다.)
자, 포조는 권력자이고 럭키는 하층민이었죠. 그럼 디디와 고고는 누구일까요?
이제 밝히자면 전 국민의 대표자라고 봅니다.
권력자에게 약하고 하층민을 막대하며 자신이 권력자가 되기를 바라고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국민입니다.
국민의 일부는 역사를 잊었습니다(고고의 나쁜 기억력). 그리고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죠. 국민의 주도권은 현실에 안주하여 기다림을 선택하는(디디의 성격) 인물이 쥐는 경우가 많죠. 가끔씩 생각하고 진보적인 국민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모자를 쓴 디디나 고고). 누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사 중에도 이런 말이 굉장히 자주 나옵니다. 포조도 그 포조가 저 포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고, 포조는 포조일 뿐 어느 포조라도 상관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가 어제만난 디디와 고고가 맞는지, 사실 그게 어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대사도 줄기차게 반복되어 나오죠. 거기에 어쩌면 이 말을 오십여년간 해오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는 말도 합니다. 극단 산울림은 이 연극을 1969년부터 계속 공연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안심하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국민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예, 디디와 고고는 그냥 국민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모자를 쓴 경우를 제외하면) 어리석은 국민이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다시 포조와 럭키가 등장합니다. 다시 디디와 고고는 포조가 고도가 아닐까 잠시 기대합니다.
그리고 포조는 이제 대놓고 세상의 부조리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관객은 계속 웃습니다..)
등장부터 포조는 모자가 없고(생각이 없음), 럭키는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등장한 포조와 럭키가 쓰러집니다.
디디와 고고는 당연히 럭키는 관심도 없고 쓰러진 포조를 일으켜 세우는 데 (사실은 그러면서 시간을 죽이는데) 신경 씁니다. 물론 포조도 둘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하죠. 하지만 포조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디디와 고고도 쓰러지죠. 그렇게 여러번의 시도 끝에 결국 디디와 고고는 포조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 부분이 무슨 의미인지 따로 해석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포조는 눈이 멀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게 무슨 놀라운 일이냐고 디디와 고고의 귀가 갑자기 멀어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하죠.
이제 이 부분도 쉽게 연결됩니다. 대놓고 생각이 없는 권력자는 이제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볼 필요가 없죠. 눈이 먼게 아니라 안 보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포조가 나간후 생각하는 모자를 쓴 디디가 눈이 먼게 아닌것 같다는 말을 슬쩍 하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럭키는 이제 생각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어려운 말이라 모두가 알아듣지 못했다면 이젠 더 심각해져서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인거죠.
예, 어쩌면 럭키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같은 디디와 고고 그리고 관객의 귀가 멀어서 럭키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눈이 먼 포조는 디디와 고고가 진짜 그들인지도 믿지 못하고 떠납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모자를 쓴 디디는 관객들을 향해서 쓴소리를 좀 길게 시작하죠. 후반부에 거의 유일하게 관객들이 웃지 않는 시간이랄까요. 곧 모자가 벗겨진 디디는 자기가 뭔 소릴 한건지도 모르겠다며 웃긴 행동을 다시 시작하고, 관객들은 다시 웃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밤이 오고 고도가 보낸 소년이 찾아오죠.
디디는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고도가 보낸게 맞냐, 너 어제 그 애 아니냐, 등등의 질문을 하죠. 소년은 아는게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고도의 수염이 흰색인 것 같다는 단서 하나만 주고 떠납니다. (당연히 고도는 내일 온다는 말을 또 전했구요.)
이제 고도가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정말 이 연극에 고도는 출연하지 않은 것일까요?
위에서 말했듯이 소년만이 디디와 고고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란 어려운 이름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소년만이 둘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디디와 고고는 스스로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혼자 기다리지 않습니다. 둘이지요. 왜 둘일까요? 단수가 아니라는 의미로 저는 해석합니다. 복수이지요. (누가 디디이고 고고인지는 위에서 나왔듯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혼자서는 불가능한 여럿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같이 하는 겁니다. 협동이지요. 고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협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디디와 고고는 같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협동은 하고 있어요. 그럼 뭐가 잘못 된 것일까요?
이 연극은 부조리극입니다. 심지어 관객마저도 죽은 시체이고 바보라 놀려대며 부조리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지요. 그럼 제목도 부조리의 일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연극의 제목은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왜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고도는 위에서 말했듯이 좋은 세상이니 만나면 좋습니다. 만나고 싶죠. 하지만 질문은 이겁니다. 왜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목에도 '기다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기다림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앞서 말했듯이 디디와 고고 중 고고는 의지가 약해서 '가자'고 하지만 디디가 하는 "고도를 기다려야지"라는 말에 금새 떠남을 포기합니다. 왜 디디와 고고는 고고를 찾으러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왜 오십년간 고도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나요. 바로 디디와 고고가 고도를 기다리고만 있기에 오십년간 아직도 이 극이 끝나지 않은 겁니다.
예, 디디와 고고는 힘을 합쳐서 고도를 찾으러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더이상 포조를 따라하거나 시간을 죽이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럼 과연 고도는 어디 있을까요? 전 디디와 고고라는 이름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디와 고고가 제대로 힘을 합치면 서로의 힘을 받아 '고D' 즉 고도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도도가 아니라 디디일까하는 점은, 너무 쉽지는 않게 하려 했던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도는 처음부터 연극에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쏘우가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이 아이템으로 만든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다만 스스로가 고도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극 중에서 흰수염이 난 것은 디디와 고고이기도 합니다.)
예, 디디와 고고는 아직은 어리석은 국민이지만, 힘을 합쳐서 정신을 차리면 모두가 고도가 되는 스스로가 희망이기도 한 국민입니다.
우리가 바로 디디와 고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