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하게 조은 나사와 같은 이런 내러티브에 의존하는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은지라 저는 그냥 무덤덤하게 봤습니다.

머피가 유레카를 부르며 난리법석을 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 들 정도였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여러 이론들을 소개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특별나게 지적이지는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놀란은 물리학의 이론을 문학적 상징으로 이용을 합니다. 예컨데 별들 간의 거리를 뜻하는 영화의 제목 인터스텔라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거리'를, 시공간과 차원을 넘나드는 중력은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사랑'으로 원용됩니다.

놀란 감독은 인터뷰에서 <인셉션>이 인간의 내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구심력에 해당으로 힘을 집약시켰다면, <인터스텔라>는 힘의 방향을 우주로 향하게 한 작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인터스텔라>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비티>의 서사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제가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우주 영화의 힘의 방향을 지구 귀환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차이밍량 감독의 이야기를 빌려와야 겠네요.

말레이시아 출신의 이 영민한 대만 감독은 소위 아트 하우스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의 차이가 뭐냐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차이밍량의 답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영화입니다'

헐리우드의 수많은 영화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위력을 가진 외계인이나 제3세계 지도자를 설정해놓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해왔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미국 영화에서 외부 세계로부터 침략에 대한 공포는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역사를 지녔기에 거기에 대한 반동이 집단 무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영화들은 외계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백인 남성 영웅이 등장하고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처럼 전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는 구호를 내뱉습니다.  이것은 현실 국제 정치에서 세계 경찰국가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욕망이 반영된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비티>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 그것도 자식을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한 여성이 지구 귀환을 통해 재성장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필사의 도전>이나 <아폴로 13>같은 외계인을 다루지 않은 영화에서도 달착륙에서의 닐 암스트롱의 한 걸음은 인류의 진보를 향한 족적이라며 인류와 진보라는 단어를 웅변조로 내세웁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계발의 과시와 과학과 이성에 대한 과도한 가치 부여. 

<그래비티>도 지구로 돌아 온 샌드라 블록이 해변가에서 쓰러져 있다가 다시 일어나는 발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이때 발은 인류의 발이 아니라 개인의 발이고 그녀가 일어난 것은 인류의 진보가 아니라 개인의 성장일 뿐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헐리우드 상업영화 자장권에 있으면서도 여성 중심의 우주 영화, 개인의 심리적 성장으로서 구심력을 보여준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인터스텔라>가 많은 부분에서 그의 전작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인셉션>에서 시간에 대한 상대성이 그대로 옮겨져 있으며, 꿈의 단계는 행성간의 차이로 나타나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보나 안보나) 아마 여러 블로그에 세심한 비교가 되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것보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던진 윤리적 질문(평범한 시민과 죄수를 각각 실은 배가 있고 배에는 상대방의 배를 폭파 시킬 수 있는 기폭 장치가 있어 서로를 전멸 시키지 않으면 모두 파괴된다는 딜레마), 양자 택일의 문제가 걸렸습니다. <인터스텔라>에도 둘 중 하나의 선택은 플랜A와 B, 인류를 택할 것인가 가족을 택할 것인가로 모양을 바꾸어 나타납니다. 놀란의 이런 퀴즈와 같은 문제 제기는 인간을 개성적 존재가 아니라 실험 대상으로 보는 과학자의 시선을 닮았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 사람들이라면 <인터스텔라>가 앞의 영화가 가지는 난해성을 많이 해소하면서 놀란 특유의 내러티브 꼬기를 시도했다는 점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놀란은 종말 직전의 이주라는 점에서 노아의 방주를 가져오고 무릉도원에서 돌아온 립반 윙클의 이야기를 첨가해놓았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감독의 야심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무한한 긍정과 발전, 인류의 도약이라는 측면에서 전체주의적 위험성이 지적되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인류와 가족 양자택일의 문제를 양자를 동시에 택하는 방식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가족주의로 전체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물타기 효과는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구 이성 중심적 사고와 과학의 발전에 긍정은 결국 아우슈비츠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이 영화를 가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의 비밀은 중력으로 전달된 정보에 의해 너무 쉽게 풀립니다. 이 영화에서 기본 전제는 인류가 무한정 진보할 것이며 그런 과학적 진보가 블랙홀의 특이점 문제라든지 각종 인류의 난제를 다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영화 초반에 미국의 달착륙의 사실성에 대한 의문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 프로젝트에 의해 지워져버립니다. 현재의 우리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쿠퍼처럼 씨뿌리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과학은 인류를  발전시킬까요? <인터스텔라->에서 중력은 사랑에 대한 은유입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는 광기는 중력과 같아서 멈출 수 없다고 소리칩니다.

영화가 끝나도 현실 세계에서는 중력으로 은유화 된 양자 택일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