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달 개봉되는 작품 중에 폴란드의 빠벨 뽈리콥스키 감독의 <이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작년 말 해외 언론에서 격찬을 받을 영화인데 국내에는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죠, 그 해 저는 이 영화를 놓쳤는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길래 영문 자막이 있는 동영상으로 먼저 봤습니다(개봉될 줄 알았으면 안 봤을텐데..).



영화 <이다>는 1960년대 즈음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후 15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죠. 고아원에서 자라 얼마 뒤에 수녀가 될 ‘안나’에게 원장 수녀가 부릅니다.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가 살아 있으니 수녀가 되기 전에 찾아가서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죠.
안나가 완다를 만나고 난 뒤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본명이 ‘이다’이고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쟁 중에 이다의 부모님이 폴란드인에게 학살당해 어딘가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이다는 완다와 함께 물어 물어 부모님의 시신을 찾으러 떠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왜 살아남게 되었는지 비밀이 드러나게 되지요.
 
영화 <이다>는 한 소녀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침묵하는 신에 대한 비판도 담겨있지요. 이 영화는 폴란드에 지금까지도 팽배한 반유대 정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같은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 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는 폴란드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지요. 그녀가 폴리쉬-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통합 이후에 동유럽 지역에는 여전히 반나치와 반유대 정서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지역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빠벨 폴리콥스키의 신작 <이다>는 그의 전작들, 예컨대 <사랑이 찾아온 여름>(2004), <파리 5구의 여인>(2011) 보다 훨씬 절제되어 있으며 영화적 형식이 돋보입니다.
촬영감독 르사르드 렌체브스키는 흑백 4:3 화면 비율로 놀라운 영상미를 보여주는데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집을 보는 듯한 황홀감이 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화면 중심에 인물을 잡지 않는 감독의 뚝심입니다.
 
조금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를 찍을 때는 ‘삼등분의 법칙’이라는게 있습니다. 화면의 너비와 높이를 각각 삼등분하면 화면안에 최적지라고 말하는 선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이 만들어집니다. 우물 정(井)자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인물이 삼등분의 법칙에 따라 화면 안에 위치해 있을 때를 가정해 봅시다. 인물이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볼 때는 좌측 상단의 교차점에, 인물이 화면의 왼쪽을 바라볼 때는 첨부한 사진(<타락천사>의 한 장면)처럼 우측 상단에 교차점에 그들의 눈을 위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이래야 화면이 시각적 긴장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물 정자 안에 인물을 두면 어떨까요? 대단히 정적이고 따분한 화면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감독이 우물 정자 안에 두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이다>는 어떤까요? 클로즈업으로 인물을 잡든 아니든 교차점이나 우물 정자 안에 두지 않습니다. 왼쪽 맨 위부터 숫자를 넣는다면 7번~9번 사각형 주변을 이용하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왜 그럴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다가 수녀복을 입고 가방을 든채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길을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골고다 언덕과 같은 길입니다. 이다가 길을 걸을 때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뒷걸음치며 잡습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핸드헬드로 찍은 이 신에서 이다의 얼굴을 계속 중심에 포착하려 합니다.
그 때 그녀의 중심, 종교적 결단, 잃어버렸던 정체성이 확립이 시각적으로 표현됩니다.

   

기적과 같은 이 장면은 저의 서투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