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밥먹어~~~'

전에 언급했듯이, 이곳에서 저녁을 먹게 된다.

어디에선가 소리도 없이 이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언니가 나타나서 공손하게 큰절을 한다.

아, 민망해. 같이 맞절을 하자니 무슨 초상집도 아니고 참...




초상권 때문에 차마 정면샷을 찍진 못하겠으니 양해하시라.

어쨌든 생글생글 웃을 때는 반달눈이 그려지는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일본 미인상.

언니가 상차림을 준비하는 동안 우두커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우리 식구.

재털이도 참으로 고풍스럽도다.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정말 영어를 못하던 (세상에, 나보다도 영어를 못하다니>,.<) 언니.

손님접대용 복장이라 기모노 자체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뒤에 달려있는 옷고름 -오비라고 하던가?-는 참으로 예쁘도다.

정갈하게 올려놓은 밥상머리를 앞에 두고

친절하게 사진도 한방.

두괄식으로 이곳에서 맛본 저녁 요리의 느낌을 말해두자면,

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아무리 일본어를 몰라도 오늘의 메뉴를 한번 감상해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뭐 그래봤자 못 읽어먹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ㅋㅋㅋ

한자만으로 때려잡자면 첫 두줄에는 연근과 버섯류가 등장할 건 확실하다. 

첫 쟁반에 예쁘게 담겨나온 전채요리.

첫술을 뜬 건 입속을 촉촉하게 해줄 마.

아차 하면 입속에 비릿한 느낌이 가득할 수 있는데 과연 여긴 다르다.

버섯 위에 가리비(찾아보았더니 메뉴에 있는 帆立), 푸성귀 한 조각을 얹어서 구운 요리.

근데 연근은 어디 있단 거지-_-?

당연히 맛있을 거라 생각해서 뭔지 생각도 안 해본 생선 한 조각-_-ㅋ

모두 이 부근에서 나는 거라는데...

그다음은 우리네 뚝배기처럼 생긴 질그릇에 담긴, 아마도 탕요리일 듯.

예상대로 그러했다.

마찬가지로 눈깜짝할 새 증발해버리는 회 한 조각.

둥둥 떠 있는 재료(쑥갓 비스무리한 거겠죠?) 로 짐작하듯,

놀라울 정도로 시원한 국물맛을 자랑하는 쇠고기 완자탕.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신선한 음식 재료도 재료지만, 음식에 곁들여 먹는 이런 소스/고명의 맛깔스러움이 정말 다른 곳과 차원을 달리했다는 점.

얼핏 봐선 소박해 보이는 밥사발일 줄 알았는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한껏 모양을 낸 내부 문양마냥,

한껏 모양을 낸 삶은 계란이 들어 있다.

조리장께서 솜씨를 부려 노른자 안에 흰자가 들어 있도록 만든 계란찜(?).

여기 완자탕에 계란탕 국물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우습게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서야 안 되느니-_-ㅋ

채소를 곁들여 살짝 찐밥에 생선구이 한 조각.

옅은 달콤한 맛의 찐밥.

이날의 하일라이트 1.

씹는 순간 입속이 상쾌해지던 옥돔(甘鯛) 구이.

밑반찬 하나하나의 맛깔스러움이 전라도 밥상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보다 한 코스 빠르게 어린이에게 와규 구이가 나왔다.

그동안처럼 직접 구워먹는 게 아니라 우리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부엌에서 금방 구워서 내온 듯.

아마 엊그제 먹었던 곳과 동일한 부위인 것 같고.

하일라이트 2.

어린이에겐 안 나오고 어른들에게만 나왔던 메뉴. 생긴 걸로 봐선 닭고기라도 튀겨 내온 것 같은데...

언니에게 물어봤더니 메뉴에서 'すっぽん' 요 글자를 가리킬 뿐, 뭔지는 설명을 못한다.

더듬더듬 읽어보니 발음은 '스팡'인 것 같은데...

어쨌든 닭튀김을 뜯는 심정으로 뜯어본다.

와우, 기가 막히게 부드러운 고기가 입에서 사르륵 녹는다.

식감 자체는 본질적으로 치킨과 비슷한 부류라 생각하여 뭐 그냥 조류고기이려니... 하고 넘어가려는데,

시중드는 언니가 'watch out!'을 외친다.

뭘 조심하라는 건가 눈짓으로 물었더니,

'아, 그거, 그거...' 하는 애타는 표정만 지을 뿐, 입속에서 뭔 단어가 맴돌기만 하고 나오질 못하더니.

메모지에 뭐라 적어서 보여준다.

'Born'.

이윽고 그게 뭔지 깨닫게 된다.

아이고... 잠시 민망했으나, 예쁜 언니가 'born'이라면 그런 거다.

그나저나 이날 저녁부터 지금 글을 올리는 이 순간까지 '그게 뭘까?' 하고 궁금했던 식재료 'すっぽん'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다름아닌

마나님에게 꼭 알려줘야지ㅋㅋㅋ

'자라'구이와 같이 나온 오렌지인지, 유자인지 암튼 그런 종류 과일의 속(그러고보니 메뉴에 유자라고 적혀 있다)을 파서 깜찍한 이파리 뚜껑을 덮어낸 건,

속을 파낸 유자와 함께 무쳐낸 평범한 브로콜리.

물론 재료만 평범했을 뿐, 그 상큼함은 튀김을 먹고난 뒤의 입맛을 개운하게 해주는 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어른용으로 나온 와규 부위는 아마도 차돌백이 류의 살인 듯.

역시 느끼할 수도 있는 고기맛을 개운하게 해줄 채소류와 함께.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는 밥상. 소바가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가벼운 해프닝 하나.

저기 쯔유가 들어 있어야 할 병에 쯔유가 담기지 않은 채 빈 병으로 나온 것.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어 문장으로 '쯔유 아리마셍~'이라 해주었더니,

그 반달눈이 땡~그래지면서 '스미마셍'을 연발한다.

그 덕에 팔자에도 없던 코가 땅바닥에 닿는 큰절을 몇 번이나 더 받았고.

이거 아무래도 기세상 할복이라도 요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_-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쯔유가 담겨 나왔고,

예정 시간을 몇 분 넘겨 먹은 탓에 소바의 식감은 살짝 불어버린 느낌이 있었지만,

저 소스의 맛은...

하루 전 세 그릇 4천엔이나 주고 먹었던 긴린코 옆 소바집에 괜히 갔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나온 고항.

여기서 하일라이트 3이자, 전체 메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나왔다.

저 생선회무침(?)도 맛있었지만, 저게 하일라이트는 아니고,

바로 요놈, 이름 모를 생선알로 만든 젓갈.

이렇게 절묘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젓갈은 한국에서도 한 번도 맛본 기억이 없다.

너무 맛이 있어서 언니에게 이게 무슨 생선으로 만든 건지 물었으나, 질문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그녀가 가리키는 단어는 'おとも'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냥 '함께'라는 뜻인데... 곁들여 나왔다는 뜻인가?) 영어로는 'river fish'라고 말해준 걸 보니 그냥 산천어의 일종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지금도 정확한 재료는 알 길이 묘연한 상황. 

'혹시 어딜 가면 이걸 구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이건 주방장이 직접 '핸드메이드'한 거라서 별도 구입은 불가능하다는 답변.

후식은 상큼한 블루베리가 떠 있는 코코넛 맛 젤리 음료.

이것으로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중 가장 고급스러웠던 코스 요리'가 끝났다.

이런 멋진 음식을 제공하니 이 여관의 숙박비가 그리 ㅎㄷㄷ했다 보다.

숙박비가 부담스러운 여행객을 위하여(?) 이곳에서 운영하는 부속 식당이 있다.

이름은 저기 적혀 있는 유노타케안湯の岳庵('온천탕속의 산중 암자' 정도로 해석하면 되려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보았더니 우리가 먹었던 것과 비슷 혹은 한두 메뉴 정도 덜/더한 코스요리 가격이 대략 6480엔.

과연 '부담 없는 가격'이다-_-;;;;;;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