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이었던가요

경부선 하행 열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어요

한 시간 반쯤 가야 하는 거라서 알람 맞춰 놓고 의자 살짝 젖혀서 자고 있었는데

대각선 뒷자리에서 누가 절 부르는 것 같아서 정신 차려 돌아봤어요

대략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였는데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시네요

열차가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 걸 보니 막 타신 것 같았고

눈 비비며 창밖을 보니 제 목적지 바로 전 역이더군요

그래서 다음에 내린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고는, 근데 무슨 일로 그러세요? 했더니

"같은 곳까지 가면 아저씨(-_-부들부들)랑 같이 내리려고요"

아... 글자를 모르시나... 해서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하며 승차권을 쳐다보니 제게 건내주시네요

평택->부산

저보다 먼저 탑승하셨고 저보다 훨씬 멀리 가시는 분이었네요

탑승한 지 거의 두 시간은 되었을 텐데

어찌하여 그 시점에 절 찾아와서 말을 걸게 되신 걸까요

암튼 저는 다음 역에 내린다, 부산까지 가시는군요, 뭘 도와드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곧 내린다... 하며 설명했더니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같은 곳까지 가면 아저씨(-_-)랑 같이 내리려고 그랬죠"

이러십니다.

대체 뭐 하는 분일까요?

1. 제가 돌아가신 남편과 닮았나

2. 제가 그냥 당신의 이상형인가

3. 뒤쪽에 절 납치할 애들이 대기 중인가

4. 낯선 길 갈 때 잘 도와주게 생겼나

5. 말동무 구하는 중이었나

6. 설마 저승사자?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많은 무당 및 종교인들과 교류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인상은 전형적인 노무당에 가까웠어요. 총기 있는 노무당 말이죠

그런 분들을 만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암튼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전 내렸어요

내릴 때에도 제 뒤통수에 대고 또 그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저씨랑 같이 내릴까 했다고 -_-

말투가 센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시 문명에 낯선 그냥 보통의 시골 할머니 말투였는데

아... 뭐하시는 분이었을까요

이 시간에 다시 떠올리자니 왠지 또 싸해지네요. 모니터 너머 창밖은 아주 깜깜하고, 할 일이 조금 남아서 바로 잘 수도 없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