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의 <워 호스>를 두고 항간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종마 버전이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영화는 아동문학가인 마이클 모파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원작에서는 1차대전에 끌려간 '전쟁용 말'인 조이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영화로는 표현이 어려워서 말이 겪는 모험담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워 호스>를 보면 종마 조이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뀝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주인으로 바뀌면서 말이 겪는 모험이지만 이건 사실 어떻게 보면 말이 움직이는게 아니라 조이에게 매달아준 훈장이 이동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멋으로 말에게 달아놓은 훈장이 그 훈장에 맞는 말로 조이를 변하게 하지요.

아무튼 이 영화에는 대단히 아름다운 장면이 많습니다. 영화관 스크린으로 꼭 확인해볼만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먼저 소년 알버트가 조이를 데리고 처음 밭을 가는 장면입니다. 비싼 가격에 구입했지만 경주용 말로 적합하지 농사용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조이를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알버트가 길을 들이려고 합니다.






결과는 처음 고삐를 메고 밭을 갈게 되는 조이의 완강한 저장으로 결과는 실패로 끝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알버트.
알버트의 엄아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려고 집 안에서 실뜨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깥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는 아들에게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지사겠지요. 엄마는 밖을 보고 있지 않지만 사운드는 밖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때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스필버그는 여기서 마술을 부립니다.





엄마가 뜨고 있는 니트의 고랑이 알버트가 갈고 있는 밭의 고랑으로 바뀌는 디졸브 씬입니다.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것은 엄마의 아들에 대한 근심인데 멋진 디졸브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기술을 스필버그는 요즘 부쩍 자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스필버그의 또 다른 영화 <틴틴>을 한번 살펴볼까요?





틴틴이 선장과 함께 망망대해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한편 파리에서는..'하고 이어져야 할 부분입니다. 공간의 이동을 바다에서 파리 시내 인도에 고인 물로 연결시키면서 디졸브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장면을 하나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틴틴>의 최고 압권은 바가르에서의 보물지도를 둘러싼 추격씬입니다. 10여분 동안 하나의 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추격씬을 찍기 위해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이 씬의 끝에 틴틴이 보물지도를 차지하지만 선장이 포로로 잡혀 물에 빠집니다.
물에 빠지면서 생기는 물거품에 틴틴을 쫓는 악당의 얼굴이 비치다가 물방울이 사라지면 다른 물방울이 올라오면서 바가르 항구의 모습이 물방울에 비치지요. 이러면서 시간의 경과를 디졸브로 멋지게 연결시킵니다. <틴틴>에는 이와 유사한 장면들이 여러 번 나옵니다. 스필버그가 요즘 이런 편집에 부쩍 재미가 들었나보네요.

다시 <워 호스>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저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장면이 있습니다. 학대 당하는 조이를 돌봐주기 위해 탈영하는 독일군 형제가 있습니다. 이 형제는 말을 이끌고 풍차 방앗간에 숨어서 하루를 보내는데 추격해 온 독일군대에 의해 처형당하는 장면입니다.
끔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스필버그는 시적으로 처리하면서 긴 여운을 줍니다. 간단하지만 혜안이 돋보이는 장면을 보시겠습니다.




풍차 방앗간에 자동차 불빛이 비치면서 조이가 먼저 수상한 낌새를 알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밝은 조명이 비치면서 소년들이 발각됩니다.
독일군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 내려오는 두 소년. 풍차 방앗간 계단 위에 있을 때는 독일장교 위에 위치해서 장교가 아직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년과 병사들이 사라지고 화면에 장교만 남겨질 때 로우 앵글에 싱글 숏으로 보이는 장교의 권위는 압도적입니다. 그는 담배를 한대 피우면 결단을 내립니다. 







풍차 방앗간 밖으로 끌려 나온 형제들은, 사형에 처해집니다. 스필버그는 풍차 날개를 이용해서 소년들이 총에 맞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총알이 발사되고 두 소년이 쓰러질 때 아주 묘한 위치에서 풍차 날개가 소년들의 모습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하나의 쇼트지만 지우기 기법을 통해 깊은 여운을 줍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워 호스>를 두고 스필버그가 스크린을 화폭처럼 이용하는 화가와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워 호스>에는 불 타오르듯이 아름다운 노을 장면, 안개 낀 전선을 뛰어 다니는 말의 질주 장면 등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입니다.

아직 영화관에서 막이 내리기 전에 한번 가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Pitcher 32님에 의해 2012-03-04 06:25:36 불펜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