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두산팬분들에겐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는 제목에 대한 양해를 구합니다.

어제 10회초 원아웃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미 2안타로 호조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던 조성환을 거르고 대호를 선택한 장면은 여러가지로 음미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기가 매듭지어질 수 있는 핀치 상황에서 시즌 공격부문 7관왕에 빛나는
'조선의 4번타자'를 앞타자를 거르면서 대적 상대로 고른 다소 무모해 보이는 선택.

상당한 논란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죠.
하지만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분명 선택이 가능한 전술이었다곤
생각합니다.

일단 1,2 경기에서 상당한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던 조성환이었고, 이 날 경기에선
이미 2안타로 쾌조의 감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둘째 1차전에서 2개의 안타를 친 이대호지만 제대로 힘을 실은 스윙을 못했었고
더구나이 날 경기에선 무안타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

세째 시즌 막판에 발목 부상을 당한 이대호가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점.

네째 최대한 어렵게 가면서 승부하고 만약 사구로 내보낸다 하더라도 이대호의
느린 발을 고려하고 홍성흔의 타격 컨디션을 고려한다면 홍성흔 타석에서도
병살을 노려볼 수 있다는 계산.   


이런 점들을 고려해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였고, 무조건 무모하다고 할 순
없는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잠실 경기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롯데팬의 입장에선 대호의 쓰리런이
나온 후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말이었습니다.


"대호가 우습더나!!"






한 시즌의 공격 전 부문을 초토화시킨 타자에겐 그에 상응하는 자존심이 
있습니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고, 전력에 결합될 수 없는 부분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사회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자존심이 가지는 위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이 아니라 실력에 근거하는 자긍심에 가까운 자존심의 위력.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리그를 완전히 압도한 타자에겐 당일의 컨디션 같은 건 어쩌면
무의미한 부분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4번은 4번인 이유가 있고, 거포는 거포인
이유가 있으며 리그를 휩쓴 타자는 최고의 타자인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요.

계산 상으론 가능하지만 때론 그 계산이 무의미한 지점은 반드시 존재하니까요.
올림픽에서의 이승엽의 경우가 역시 바로 그런 계산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올 시즌의 이대호는 분명 계산 밖에 있습니다.

달 감독이 그 면밀한 선택에서 놓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ps. 그 계산 밖의 부분에 대한 통찰을, 올림픽에서 이승엽의 기용으로
보여줬던 달 감독이 이 번 준플 2차전에선 오히려 놓치고 있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네요.

이래서 야구나 인생이나 재밌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