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1월 17일. 개인훈련을 마친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 임호균이 샤워를 끝낸 뒤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눈만 TV 브라운관을 향할 뿐 머릿속은 온통 다음 시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해 임호균은 12승15패 평균자책 3.03를 기록했다. 프로 데뷔 첫해 성적치고는 꽤나 준수했다. 게다가 30경기에 나와 무려 234⅔이닝을 던질 만큼 책임감도 강했다. 당시 경기수가 100경기임을 감안할 때 임호균의 활약은 인천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토종 에이스의 재림이었다.

하지만 임호균에게 개인 성적은 거대한 빵에서 떨어져 나온 빵부스러기처럼 미미한 존재였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우승’이란 두 글자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해 삼미는 전·후기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고도 생각지도 않은 악재가 연속되며 좌절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TV 스포츠뉴스에서 뜻밖의 소식이 흘러나왔다.
“삼미 슈퍼스타즈와 롯데 자이언츠가 1대 4 트레이드에 합의했습니다.”

‘1대 4 트레이드? 롯데와?’ 임호균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대체 누굴 트레이드 한단 말이지.’ 임호균이 탁자 위의 물컵을 집었다. 이상하게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오늘 삼미와 롯데는 임호균과 우경하, 박정후, 권두조, 김정수를 맞바꾸는 프로야구 최초의 일대 다자간 트레이드를 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는 최동원, 임호균 콤비로 튼튼한 선발진을, 삼미는 부족한 선수층을 보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야구전문가들은 올시즌 장명부와 함께 팀 마운드의 60%를 책임졌던 임호균을 롯데로 트레이드한 삼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이번 트레이드가 과연 어느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내년시즌이 시작해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가 끝날 즈음 임호균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물컵을 놓칠 뻔 했다. 분명 TV 아나운서는 자신을 호명했다. 그렇다. 자신이 1대 4 트레이드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임호균은 즉시 김진영 삼미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독님”하고 입을 열자마자 김 감독은 전화가 올 줄 알았다는 듯 체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호균아,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뒤도 돌아볼 것 없이 임호균이 달려간 곳은 구단 사무실. 그러나 단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이 어째서 트레이드 돼야 하는지 이유를 듣고 싶던 임호균은 아무도 솔직한 답을 해주지 않자 급기야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이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마침 김 회장은 서울 방배동 스크린 골프장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꽝!” 스크린 골프장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임호균이 경호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김 회장 앞으로 왔다. “회장님, 저 좀 보시지요.” 

당시 40대의 젊은 재벌총수였던 김 회장은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하게 임호균을 맞았다. “임 선수, 저와 골프 한 게임 치실래요?” 그러나 임호균의 눈에 골프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골프는 나중에 회장님 혼자 마음껏 치시고 지금은 저랑 이야기 좀 하시지요.” 임호균은 완강했다. 만약 김 감독이 임호균을 따라와 말리지 않았다면 일이 나도 큰일이 날 분위기였다. 
“그래요. 좋소. 그럼 술이나 한잔 합시다.” 김 회장이 골프채를 놓고 임호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임호균은 이 모든 트레이드가 김 회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눈치 챘다. 김 회장도 방금 TV 뉴스를 보고 임호균의 트레이드를 안 참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회장님. 다른 건 몰라도 꼭 이것만은 알아주십시오.” 임호균은 심하게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쥐며 다음과 같이 말한 뒤 골프장을 뛰쳐나갔다.

“어떤 선수가 삼미를 더 사랑하고, 삼미를 위해 헌신적일 수 있는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꼭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어느 누가 더 심미 유니폼을 간절히 원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 머지않아 회장님께선 똑바로 아시게 될 겁니다.”

1987년 11월 롯데와 트레이드 될 때 반발을 심하게 한 것으로 안다.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트레이드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그걸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당시 트레이드 사유가 명확하지 않았고 명확했다손 쳐도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삼미에 어떻게 입단했는데 날 1년 만에 버리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선·후배들이 있는 슈퍼스타즈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룹 회장에게까지 찾아가 따질 정도면 은퇴도 불사했다는 뜻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박종환 롯데 단장과 강병철 감독이 집에까지 찾아와 설득했다. 박 단장은 동아대 선배이고 강 감독은 동아대 시절 은사였다. 두 분 설득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아버님이 “그만 하면 됐다. 다 털고 부산에 가서 롯데팬들을 위해 멋지게 던지라”고 하시는 통에 말씀을 어길 수가 없었다.

인천 창영초등학교 출신이다. 한국에서 야구명문 초등학교로 무척 유명한 곳인데. 

박현식 선생의 모교 아닌가. 당시 내가 58회였으니까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다 혼잣말로) 아이고, 벌써 개교 100년이 넘었네. 

유년시절에도 체구가 작았다고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작았지. 야구를 시작한 것도 순전히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해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하면 몸이 좋아진다’는 말을 들은 부모님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야구 유니폼에 거부감이 많았다. 그냥 공부하는 게 제일 재밌었다. 그래 6학년 때 그만 두려고 했는데.

했는데?

야구를 좋아하셨던 작은 아버지가 막 화를 내셨다. “야구를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최소한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그만둬야 후회가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보름 정도 새벽마다 나를 끌고 나가 운동을 시키셨다. 이때 잠재해 있던 운동능력이 눈을 뜬 것 같다. 그때부터 야구실력이 부쩍 좋아져 인천 남중학교에 입학했을 땐 어느새 팀의 에이스가 돼 있었다.

인천 남중 졸업 뒤 야구명문 인천고에 입학했다. 

난 이미 인천고에 체육특기자로 입학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입학은 특기자가 아니라 시험보고 들어갔다. 당시 인천고 같은 명문고교는 시험 쳐서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인가. 학교에 대한 정이 지금도 각별하다.

인천고시절 괴력의 투수로 유명했다. 

1974년 고 3때 노히트노런을 2번이나 했다. 한해 노히트노런 2번은 거의 없지 싶다. 그것도 당시 최강이었던 대구상고와 휘문고를 상대로 달성한 기록이었다. 괴력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면 잘 던지긴 했던 것 같다(웃음). 그럼 뭐하나. 전국대회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는데(웃음).

대개 노히트노런 투수들은 강속구 투수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당신의 프로 시절을 떠올리면 강속구보단 제구가 좋았던 투수로 기억된다.

고교 때도 강속구 투수는 아니었다. 키가 170cm 정도에 불과했다. 체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그래선지 어릴 적부터 ‘내가 살 길은 강속구가 아니라 타자가 직구 기다릴 때 커브를 던질 수 있는 영리한 수읽기와 칼 같은 제구’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인천고 졸업 뒤 수많은 대학팀의 구애를 뿌리치고 실업팀 철도청에 입단했다.

요즘이야 고교 졸업하고 프로 입단하는 게 순서지만 나 때만 해도 고교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 집안사정이 좋지 않았다. 나만 잘 되자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평생 실업팀에 있을 생각도 없어 철도청에 입단할 때 “집안사정이 좋아지면 곧바로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사전 양해를 구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돌이켜보면 이때 1년이 내 야구인생에 커다란 경험이 됐던 것 같다.

그렇기도 했겠다. 당시 실업팀은 지금의 프로팀과 비교해 전력면에서 뒤질 게 없었다. 

한일은행은 거의 국가대표팀 수준이었다. 강병철, 정현발, 우용득 선배 등 국가대표 타자만도 5, 6명에 이르렀다. 여기다 정동진, 김우열 선배가 버틴 제일은행 등도 강호였다. 프로가 없을 때니 만큼 ‘국가대표’하면 우리처럼 젊은 선수들 사이에선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스르르 눈을 감으며)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실업 데뷔전 상대가 하필 한일은행이었다. 어찌나 긴장이 되고 떨리는지…. 철도청 남궁택경 투수코치님이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어려운 투구를 했을 거다.

남궁 코치가 뭐라고 격려했나.

한일은행 선배들의 눈에 난 거의 핏덩어리였다. 하지만 남궁 코치님은 그럴수록 힘을 내야한다면서 “책임은 내가 다 질 테니 상대 타자를 맞추고 싶으면 맞추고, 너 던지고 싶은 데로 마음껏 던지라”고 주문했다. 워낙 입심이 셌던 분이라 그분 말만 믿고 던졌다. 다행히 결과는 3대 3 동점 무승부였다. 아마 그때 대량실점하고 강판했다면 내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웃음). 하지만 그때 호투로 투구에 자신감이 생겼다. 

1년 뒤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서울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가 아니라 부산 동아대였다. 

서울지역 주요 대학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하지만 동아대 관계자분이 부산에서 집까지 찾아온 게 주효했다. 아버지가 “널 데리러 그 먼데서 여기까지 오신 분이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까 보따리 싸서 내려가라”고 하셨다. 그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당시 입맛도 까다롭고 어렸을 때라 부산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기는 게 무척 불안했다. “아버지, 꼭 그래야 됩니까? 서울지역 대학이 조건이 더 좋습니다”하고 말씀드렸지만 “남자는 한번 결정했으면 그걸 지켜야한다”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군말 없이 부산행 기차를 탔다. 돌아보면 동아대 입학은 내겐 아주 잘된 결정이었다.

일리가 있다. 인천고, 철도청에서 재능 있는 투수 정도였다면 동아대시절부터는 전국구 에이스로 발돋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아대 입학하고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징그럽게 많이 던지기도 했고(웃음). 1학년 때 거의 혼자 다 던져 학교를 전국대학선수권대회에서 우승시켰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때야 투수 한명이 한 경기가 아니라 한 대회를 던지던 시절 아니었나. 졸업할 때까지 전국대회 우승을 6번 정도 차지한 것 같다.

당신을 제외하고 동아대엔 이름난 선수가 없었다. 

스타급 선수가 거의 없었다. 입학 동기생인 정학수 정도가 유명했고. 한문연, 박동수, 박영태 같은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더 강해졌지. (입맛을 다시며) 그땐 참 대학 경기도 참 재밌었는데.

1978년 대통령기대회 준결승전은 역대 대학야구 최고의 명승부전으로 꼽힌다. 

준결승전에서 연세대와 만났다. 당시 연세대는 최동원, 김봉연, 박해종 등 실업팀이 무서워할 정도로 쟁쟁한 멤버들이 뛰었다. 많은 이들이 연세대의 손쉬운 승리를 점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걸. (최)동원이랑 선발 맞대결을 펼쳤는데 연장 14회가 되도록 우리 둘 다 실점을 하지 않은 거라. 그때 (최)동원이가 탈삼진 16개, 내가 9개를 기록했다. 안타수는 3개로 똑같고. 결국 일몰서스팬디드 게임이 선언돼 다음날 경기를 재개했는데.

혹시 다음날에도 두 투수가 그대로 나왔나?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이런 맙소사. 아무도 말리지 않았나.

강병철 감독님은 내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다음날 경기 시작 전 “힘들면 말해”하시기에 “무슨 소리하십니까”하고 목소리를 높이니까 그 다음부터 아무 소리 안하고 이닝을 맡기셨다. 결국.

홈런으로 승부가 났다.

(파안대소를 지으며) 연장 18회 김봉연에게 홈런 맞고 0-1로 졌다.

1980년 동아대 졸업 뒤 한국화장품, 포항제철 등 강팀의 스카우트 제안을 뿌리치고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동아대 입학 때처럼 사연이 있었나.

사실 한전보단 포철에 갈 뻔 했다. 동아대 3학년 때 포항에서 “입단만 하면 계약금으로 1천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월급도 계장급 월급으로 책정해주겠다고 하고. 이에 반해 한전은 별도의 계약금은 줄 순 없지만 동아대 동기 7명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내가 그땐 의리가 있던 모양이다(웃음). 친구들한테 “취직하면 술 한 잔씩 사라”하고선 미련 없이 한전 계약서에 사인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연고지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나 했다. 그러나 한전에 잔류했다.

그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리지 않았나. 그로 인해 실업팀 7명 선수는 국위선양을 위해 의무적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그 가운데 나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대한야구협회에서 프로 미진출자들에 한해 위로금을 준 것으로 안다.

(고개를 흔들며) 그 돈 때문에 프로 전향을 하지 않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땐 돈 욕심보단 명예욕이 더 강했다. 선수들끼리 그런 말을 많이 했다. “이제 프로가 출범했으니 우리야말로 마지막 국가대표가 아니냐”고. 마지막 국가대표답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큰일을 내고 싶었다. 

그 대회에서 선동열, 한대화, 김재박 등이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특히나 선동열은 대회 최다승 투수와 MVP를 휩쓸며 세계야구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신 역시 대회 기간 동안 평균자책 ‘0’을 기록하며 최우수평균자책상을 수상했다.

(선)동열이가 혼자 3승인가를 따냈을 거다. 나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거의 매경기 출전했다. 특히나 결승진출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했던 도미니카전이나 일본과의 대회 최종전에서 구원투수로 출전해 한 점도 주지 않은 건 개인적으로 자랑스러운 기억이다. 만약 내가 당시 1점이라도 줬다면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신화는 그저 ‘아쉬운 도전’쯤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당신이 한국에게 국제대회 우승컵을 처음으로 안긴 건 그보다 5년 전인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이었다.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맛본 대회이기도 한데.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 한국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게 그때다. 당시 대표팀엔 이선희, 유남호, 최동원 등 좋은 투수들이 많았다. 그때도 난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위기 때마다 등판했다.

그때의 맹활약으로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가문의 영광이지(웃음). 정확히 훈장 넘버가 95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나라에서 95번째로 백마장을 받았다는 뜻이다. (기억에 선한 듯 눈을 감으며) 지금도 잊지 않는 게 뭔고 하니. 우승하고 한국에 도착했는데 어찌나 추운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11월 6일 니카라과로 떠날 때 우리가 입고 있던 양복이 여름 양복이었다. 니카라과가 덥다고 그렇게 입고 갔는데 우승하고 돌아오니까 어느덧 눈 내리는 12월 2일이었다. 양복은 여름양복이지 거기다 목에는 차가운 꽃다발이 걸려있지 사진촬영은 몇 시간 동안 계속 하지. 아, 이러다 얼어 죽겠더라고(웃음). 그런데 그보다 끔찍했던 건 세상에 그 차림으로 겨울바람을 가르며 카페레이드를 했다는 거 아닌가(웃음).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다음해 드디어 삼미 슈퍼스타즈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로선 초특급대우인 계약금 2천만 원, 연봉 2천400만 원을 받았는데.

실은 한전과 삼미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한전 고위층에선 내가 잔류하기를 바랐다. 3년간 열심히 뛴 덕분에 4직급 계장 대우를 받고 있었고 솔직히 나이 들어 프로에 입문한다는 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삼미행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전해 삼미 성적이 최악이었다. 박현식, 김진영 두 대선배님께서 날 찾아오셔서 “야, 이놈아. 인천 출신 야구선수가 누가 있다고 버티긴 버텨. 군말하지 말고 어서 계약해”하고 야단 겸 읍소를 하고 가셨다. 어쩌겠는가. 그분들 말씀을 거역할 순 없는 일 아닌가. 

당시 삼미는 최약체였다. 마운드나 타선이 자로 잰 듯 리그 평균 이하였다. 아무리 야구가 투수놀음이라고 해도 타선에서 1점도 내주지 못하면 백전백패하게 마련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이래 타격이 좋은 팀에서 한 번도 뛴 적이 없다. 늘 힘든 팀, 뭔가 부족한 팀에서만 뛰었다. 그런 까닭에 삼미에 입단할 때도 별 불만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되레 ‘이런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도전의식이 더 강했던 듯싶다. 

프로 데뷔 첫해 12승15패 평균자책 3.03을 거뒀다. 타력도 타력이지만 수비가 좋은 팀에서 뛰었다면 패와 평균자책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란 평이 많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당시는 ‘지면 다시 도전해 이기면 되고, 평균자책이 높아지면 내가 더 잘 던지면 된다’는 생각을 할 때라, 동료들을 원망하기보단 스스로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당시 삼미는 성적만큼이나 선수층이나 모그룹 지원이 6개 구단 가운데 가장 열악했다. 사회인야구팀에서 뛰던 감사용을 입단시킬 정도였다.

참 열악했지. 그 바람에 감사용 같은 친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웃음). 나도 처음엔 ‘감사용’하기에 누군가 했다고.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거든. 하지만 팀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고 자기 책임을 다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당신이 입단한 1983년 삼미는 전해 꼴찌가 믿기지 않을 만큼 승승장구했다. 5월말까지 전기리그에서 당당히 선두로 나섰다.

그해 장명부와 내가 마운드의 60%를 책임졌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체력적인 부담은 됐지만 꼭 인천야구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리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이렇게만 시즌을 보낸다면 전기리그 우승 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아, 그런데 난데없이 감독님이 잡혀가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지 뭔가.

그해 6월 1일 잠실 MBC 청룡(LG의 전신)과의 경기에서 김진영 감독이 ‘그라운드 폭력’으로 전격 구속됐다.

그때 삼미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무척 중요했다.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의 긴장도가 최고고조에 다다랐을 때다. 게다가 그날따라 주심이 내공을 번번이 볼로 판정했다. 어쨌든 내가 1실점을 하는 통에 삼미가 7회까지 0대 1로 지고 있었다. 그러다 8회초 2사 만루 찬스를 잡았는데 이때 최홍석이 좌전적시타를 치면서 2, 3루 주자가 홈인하며 2대 1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곧 2대 1이 아니라 1대 1로 스코어가 수정됐다.

(아쉬운 듯 양손을 만지며) 맞다. 1루 주자 김진우가 3루로 뛰다가 아웃됐는데 심판이 보기엔 김진우의 태그아웃이 2루 주자 이선웅의 홈통과보다 시간적으로 빨랐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결국 3루 주자 이영구의 득점만 인정하며 1대 1이 되고 말았다.

‘열혈남아’ 김진영 감독이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아마추어 야구의 대부’란 소릴 듣던 분 아닌가. 모든 야구인들이 김 감독님을 어려워했을 때다. 성격도 괄괄하셨다.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김 감독님이 백스톱 뒤에서 경기속행을 종용하는 이기역 심판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물 때문에 이 심판장의 몸에는 닿지 않았고 김 감독만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어허, 그런데 그 경기를 청와대의 높은 분께서 TV로 보고 계실 줄 누가 알았겠나. 가뜩이나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사회가 어수선할 때였다. 높은 분께서 김 감독의 액션이 사회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행동이라며 구속을 지시했다고 한다. 심판한테 발길질 했다고 야구감독이 구속됐으니, 지금 같으면 이런 해외토픽도 없지(웃음).

김 감독의 구속 뒤 삼미는 선장 잃은 난파선 꼴이 됐다.

야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다손 쳐도 야구감독은 엄연한 한 팀의 아버지다. 중요한 시기에 믿고 따를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한창 전기리그 우승다툼을 벌일 때 감독이 부재하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구속 10일만에 벌금 100만원을 내고 약식기소로 풀려났다.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김 감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시즌 종료까지 자숙해야 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한 모양이었다. 김 감독이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 선수들과 코치들이 힘을 모아 구단에 정식으로 “감독의 자숙기간이 너무 길다. 당장 현장에 복귀시켜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남은 경기를 모두 보이코트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순전히 팀을 위한 충정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바람에 당신이 주동자로 몰려 구단에 미운털이 박혔다.

말이 ‘보이코트’지 우리가 경기를 안하긴 왜 안하나. 그냥 액션만 취한 것뿐이지. 원래는 선수들의 의견에 코치진이 동조해 그분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구단에 전달하기로 돼있었다. 그런데 막상 때가 되니까 뒤로 빠지지 뭔가. 장명부에게도 부탁을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내가 전화기를 들고 사장님한테 우리의 요구를 전달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결과적으로 내겐 좋지 않은 일로 작용했지만 내가 다치는 대신 다른 선수들이 온전했으니 그것으로 됐지 싶다.

후기리그에서도 8월 20일까지는 해태를 2.5경기차로 따돌리고 선두행진을 벌였다. 

김 감독이 일선에 복귀하지 못하는 사이 그해 6월 MBC에서 삼미로 트레이드돼온 백인천 전 MBC 감독이 선수 겸 코치로 뛰며 감독 역할을 대신했다. (한숨을 내쉬며) 아, 그런데 8월인가 한창 팀이 잘 나가고 있을 때 이번엔 백 감독이 가정문제로 구속이 됐지 뭔가. 지금 생각해도 당시 두 감독 가운데 어느 한분만 멀쩡하셨어도 삼미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으면 인천 연고지 팀의 우승을 13년은 일찍 볼 수 있지 않았을까.(주:1998년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연고지 팀으로 첫 우승)

삼미시절 후배들이 많이 따른 것으로 안다.

삼미엔 존경하는 선배들도 많았지만 사랑스런 후배들이 참 많았다. 후배들에게 엄할 땐 엄했지만 대개는 친동생처럼 대했다.

삼미 출신의 어느 지도자는 당신을 가리켜 “타고난 보스기질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당신의 보스기질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 가운데 장명부가 있었다.

투수조 리더가 나라는 게 장명부에겐 불만이었을 거다. ‘임호균 저 녀석이 부르면 선수들이 다 모이는데 내가 부르면 왜 모이지 않는 거야’하고 불평을 터트리곤 했다.

혹여 장명부가 재일동포라, 당신이나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있던 건 아닐까. 당시는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이 심할 때 아닌가.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옆에 있는 아들을 가리키며) 이 녀석 엄마가 재일동포다. 장명부가 삼미에 입단했을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도 집사람이었다. 집사람이 나서서 집도 구해주고 뭐든 도와줬다. 장명부 아내도 참 현모양처였다. 그런 분과 헤어졌으니…. (혼잣말을 하듯) 에이고, 장명부는 바보였다. 바보.

장명부는 당신이 보기에 어떤 투수였나.

당시 한국야구는 커브, 슬라이더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장명부는 체인지업, 커브, 싱커 못 던지는 구종이 없었다. 거기다 워낙 베테랑 투수인지라 경기 노하우도 대단했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정말 야구선수로는 최고였다.

그렇다면 야구선수 이전에 한 인간으로선 어땠나.

나중에 마약문제도 터졌지만 사생활에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삼성 김일융처럼 동료들과 잘 어울렸으면 장명부는 1983년 이후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 한국프로야구가 워낙 초보다보니 일본에서 A급 선수로 뛰었던 장명부의 눈엔 동료들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을 거다. 

장명부가 당시 허욱 삼미구단 사장에게 당신의 트레이드를 요구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도 듣긴 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결국 욕심이었지. 내가 없으면 본인이 더 빛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휴우-.

혹시 장명부가 30승을 하면 1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이면계약에 대해 알고 있었나.

나중에 알았지. 시즌 중에도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재일동포 선수에 대한 메리트나 예우 정도로 좋게 생각했지 다른 불만은 없었다. 

결국 삼미 프런트가 장명부의 손을 들어주며 프로야구 사상 유례가 없는 롯데와의 1대 4 트레이드가 단행됐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룹 회장한테까지 찾아가 항의를 했다고. ‘어떻게 입단한 삼미인데 삼미가 날 이런 식으로 차나’싶어 완강하게 트레이드를 거부했다고.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프로인 것을. 롯데 측의 설득으로 대학시절에 이어 2번째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이처럼 이적선수가 친정팀에게 확실한 응징을 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이듬해 삼미전에 등판할 때마다 괴력을 발휘했다. 기록지를 찾아보니 1984년 삼미전에만 7경기에 출전해 3승 1패 평균자책 2.07를 기록했다. 인상적인 건 3승이 3경기 연속 완투승이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5월 2일 인천 삼미전에서 장명부와 10회 완투 접전을 벌인 끝에 4-2로 승리한 건 명승부 가운데 명승부로 꼽힌다.

마치 어제일 같은데 사반세기 전의 일이네. (가늘게 눈을 뜨며) 그때 경기에서 이기고 난 뒤 동료들과 악수할 새도 없이 삼미 사장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날 보라고 손짓을 했지. 날 보라고 말이야.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요동치네.

사실 당신은 인천야구의 상징이지만 부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산 소재 동아대 출신인데다 롯데에서 3시즌을 뛰었다. 특히나 이적 첫해인 1984년엔 최동원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며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렸다.

부산은 내겐 ‘제 2의 고향’이다. 그해 개막전 선발도 컨디션이 좋지 않던 (최)동원이 대신 내가 나갔다. 뭐랄까. 인천야구만큼이나 부산야구 역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나 할까.

그해 27경기에 출전해 161⅔이닝을 던져 10승 9패 평균자책 2.95를 기록했다. 27승 13패 평균자책 2.40을 기록한 최동원에 이어 팀 내 투수 가운데 가장 공헌도가 높았다.

최동원은 당대 최고의 투수였다. 그런데 구원승이 너무 많았다. 내가 가끔 동원이한테 그랬다. “넌 대선수인데 왜 동료들 승을 자꾸 빼었느냐”고(웃음). 아, 이 녀석이 구원투수로 나가면 꼭 루상의 주자를 다 불러들인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단 말이지(웃음). 본인이야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 하지만 1승이 아쉬운 무명 투수들에겐 금싸라기 같은 1승이었지. 동원이가 그것 때문에 나한테 혼도 많이 났다(웃음). 

그라운드에선 최동원이 에이스, 그라운드 밖에선 당신이 에이스였다고 들었다.

그때 내가 살던 곳이 삼호아파트였다. 그런데 선, 후배 등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온다고 ‘삼호살롱’으로 부르곤 했다. 쉬는 날엔 선수들이 죄다 우리집에 모여들었다. 그때가 가끔씩 그립다.

그해 약체란 평을 듣던 롯데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당신의 공이 무척 컸다.

삼성이 수훈갑이지 뭐(웃음). 자기들이 우승하려고 롯데를 밀어준 건데 결과적으로 자기들 꾀에 자기들이 넘어갔지.

한국시리즈 3경기에 출전해 10이닝 1패 평균자책 4.50을 기록했다. 2차전에선 불펜에서 뛰었지만 4, 6차전은 선발출전이었다. 특히나 6차전에서 4회까지 3대 1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5회 최동원과 교체돼 아쉬움이 컸다. 당시 기사엔 “(롯데가) 투수로테이션을 돌볼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임호균에게 1승을 맡겨볼 여유는 또한 어디 있겠는가. 당장 내일이 없는 롯데 강병철 감독은 리드를 잡자마자 5회초부터 지체 없이 최동원을 투입했다”고 적고 있다.

(잠시 침묵하다가) 실은 내가 원한 교체였다. 4회초 빗맞은 안타로 1실점하고 나서 4회말 롯데 타자들이 3점을 내주며 3대 1이 됐다. 그때 내가 동원이를 불렀다. “형이 1이닝을 마저 던지면 승리투수가 되지만 네가 지금부터 던지면 더 확실하게 점수를 지킬 수 있다. 동원아, 남은 이닝 던지고 하루 쉰 다음 7차전에도 등판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던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 강 감독에게 “동원이를 내보내자”고 했다.

강 감독이 뭐라던가.

깜짝 놀랐지(웃음). 하지만 승부수가 통했다. 만약 그 경기에 졌다면 시리즈 전적 3승 4패로 고7차전에도 못 갔을 거다. 야구에서 희생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자신의 욕심과 팀의 욕심이 있을 때 후자를 선택하는 게 야구에서의 희생이다.

1986년 10월 부산을 떠나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나와 양상문, 배경환, 김진근, 이진우가 청보로 가고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가 롯데로 오는 5대 3 트레이드로 인천땅을 다시 밟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때도 집에서 TV를 보다 트레이드 소식을 알게 됐다. 아, 이게 내 운명이다 싶으니까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1986시즌 3승 8패로 승수는 많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은 3.32로 좋았다. 당시 롯데 투수진이 화려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트레이드된 배경이 무엇이었나.

특별한 건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저 청보에선 연고지를 대표할 간판이 필요했던 것 같다. 

1987년 9승 10패 평균자책 3.78로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나 그해 8월 25일 인천 해태전에서 73구로 5대 0 완봉승을 거두며 역대 9이닝 최소투구 완봉승 기록을 세웠다. 그날 해태 타순은 백인호, 송일섭,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한 대화, 이순철, 장채근, 서정환이었다. 세상에, 이 타자들을 상대로 73구로 경기를 끝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때 아마 내가 2안타만 허용했을 거다. 해태는 워낙 강타자들이 많고 적극적으로 승부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하기 쉬웠다. 그날도 정면승부보다 유인구를 많이 던졌는데 해태 타자들이 초구부터 스윙을 했다. (손으로 턱을 매만지다) 당신은 야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짧은 소견을 밝히자면 ‘누가 더 실수하지 않느냐’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야구는 실수를 줄이는 쪽이 승리하는 경기다. 동시에 상대의 장점을 알아야하는 스포츠다.

흔히 상대의 단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내 생각은 야구는 상대의 장점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본다. 상대의 단점에 집중하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제압하려 든다. 하지만 상대의 장점에 주목하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제압’하려 덤비지 않고도 상대를 ‘유인’해 제풀에 쓰러지게 할 수 있다. 야구는 상대를 최대한 존중하고 관찰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보이지 않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1987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타다가 1990년을 끝으로 8년간의 현역생활을 정리했다. 좀 더 프로에 일찍 입문했다면 많은 기록을 세웠을 텐데. 은퇴 뒤는 방송사 해설위원, 프로팀 투수코치, 야구교실 등을 운영하며 야구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998년 삼성 투수코치를 마지막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옆에 있는 아들을 가리키며) 이 녀석 교육 때문에 삼성 코치를 그만둔 해 미국으로 왔다. 우리집안 장남이자 장손이다. 다행히 공부를 열심히 이번에 대학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미국행을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언어문제 빼곤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10년 정도 살다보니까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스포츠강국인지 체험할 수 있었다. 아들이 대학졸업을 하면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현재 2년째 미국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다. 

스포츠마케팅이라, 자연인이 돼서도 열심히 사시는 것 같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꽤 됐어도 항상 마운드 위에 있는 느낌이다. 인생이나 야구나 똑같다. 오늘 져도 내일 다시 기회가 오고 오늘 이겨도 내일 질 수 있는 게 야구고 인생이다. 긴장을 풀지 않고 삶의 마운드에서 계속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나. 그게 야구가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이름 : 임호균(任昊均)
생년월일 : 1956년 3월 26일 
체격 : 175cm / 79kg 
이력 : 인천고-철도청-동아대-한전-삼미-롯데-청보-태평양 
프로입단 : 1983년 
통산성적 : 44승 56패 3세이브 평균자책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