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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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두산의 야수들은 전혀 투수를 도와주지 못했다. 경기가 끝났어야 할 상황이 무사 1, 2루가 되고, 투아웃이어야 할 상황이 역전 위기가 됐다. 만일 이틀 연속 역전패를 당한다면, 패전의 모든 책임이 실수한 야수들에게 돌아갈 판이었다. 한국판 ‘빌 버크너’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 마운드에는 임태훈이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임태훈은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어쩌면 위기가 임태훈의 잠재능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8번 채상병에게 2-3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 9번 김상수도 풀카운트에서 스탠딩 삼진. 야수들이 실책할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마무리였다.

임태훈의 완벽투는 여러 사람을 살렸다. 실책을 범한 고영민과 손시헌을 살렸고, 승리투수를 날릴 뻔한 히메네즈를 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벤치에 있는 선배 정재훈과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동기 이용찬을 살렸다.

두산은 이번 플레이오프 직전에 마무리 이용찬을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당초 현장에서는 이용찬을 기용하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구단에서 만류했다. 구단과 프로야구의 이미지, 선수 개인이 느낄 부담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용찬이 빠지면서 플레이오프 두산의 최대 약점은 ‘불펜’이 됐다. 전문가들은 두산 불펜의 체력이 소진되고 마무리투수가 공백인 점을 거론하며 경기 후반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1차전 7회까지만 해도 예언은 빗나갈 것처럼 보였지만, 8회말 박한이의 3점 홈런이 터지면서 현실이 됐다. 정재훈은 고개를 숙인채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두산은 졌다.

1차전 패배는 홈런을 맞은 정재훈에게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충격을 받을 사람은 이용찬이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팀 전력에 큰 구멍이 생기고, 다 이긴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하고, 우승 가도에 먹구름이 끼게 생겼으니 그가 느꼈을 마음의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는 설명이 필요없을 터. 실제 팬들의 비난도 홈런을 맞은 정재훈보다는 화근을 자초한 이용찬에게 집중됐다.

만일 2차전에서도 마무리 실패로 두산이 졌다면, 그 충격은 고스란히 전날 구원실패한 정재훈을 강타한 뒤 음향대포처럼 퍼져 이용찬에게로 전해졌을 게다.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의욕을 잃고 시리즈를 완전히 삼성에게 내줬을지도 모른다. 임태훈이 지켜낸 건 2차전 승리만이 아니라 플레이오프에서 팀의 운명과 -어쩌면- ‘미래’였다.

처음이 아니다. 임태훈은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도 한 차례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적이 있다. 그날 선발로 나선 임태훈은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도 3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다. 롯데 페이스였던 시리즈 흐름이 두산 쪽으로 돌아선 건, 임태훈이 1회 무사만루 위기를 실점없이 막아낸 게 컸다.

임태훈은 이대호를 직구 세 개로 삼진으로 잡아냈고, 홍성흔을 병살타로 처리했다. 롯데에겐 최악의 결과. 그때부터 바람은 두산 쪽을 향해 불었다. 흐름을 탄 두산은 4-5차전을 내리 큰 점수차로 잡아내고 극적인 리버스 스윕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임태훈이 버텨준 덕분에 두산은 히메네즈를 아낄 수 있었고, 플레이오프 3차전이 아닌 2차전에 조기 투입할 수 있었다. 결과는 7이닝 5안타 무실점 승리. 임태훈이 지켜낸 PO 2차전의 승리는, 그가 준PO 4차전에서 역투해서 만들어낸 결과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사실 임태훈의 현재 몸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시즌 내내 허리가 좋지 않았고, 포스트시즌 들어서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뛰고 있다. 그의 모자챙에는 매직펜으로 “허리야 버텨줘”라고 쓰여 있다. 그런 상태로 마운드에서 150km/h 가까운 광속구를 던질 수 있는 건, 순전히 투지와 책임감 덕분이다.

2차전의 호투로 앞으로의 경기에서 임태훈이 마무리로 기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는 동료들이 그를 도와줘야 한다. 누가 알겠는가. 다음에 임태훈이 위기를 맞았을 때 정재훈이 역투해서, 아니면 고영민이 호수비를 해서 구해낼지. 야구는 원래 타자가 투수를, 투수가 타자를 서로 돕는 경기다. 그리고 두산에게 이번 시리즈는, 서로를 돕지 않고서는 이길 수가 없는 시합이다. 임태훈이 아픈 몸을 이끌고 그렇게 했듯이.

부연. 김경문 감독은 2차전 마지막까지 포수 양의지를 교체하지 않았다. 시즌 내내 주전이던 양의지는 준PO 4차전부터 부상과 수비 문제로 용덕한에게 자리를 뺏긴 상태. 하지만 이날 양의지는 준플레이오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선발 히메네즈의 7이닝 무실점 역투를 훌륭하게 리드한 것은 물론, 9회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상황을 마무리했다.

1사 2, 3루 채상병 타석에서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을 잡아낸 장면은 과감했다. 주자가 3루에 있는데도 바운드에 가까운 변화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양의지는 이번 시리즈에서 용덕한보다 블로킹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마지막 타자 김상수에게 풀카운트에서 직구 스트라이크를 요구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1루가 비어있고 앞 타자 채상병에게 유인구를 던졌다는 점을 염두에 둔 김상수의 의표를 찌르는 용감한 승부였다. 새롭게 시작된 용덕한과의 ‘경쟁’을 통해, 생애 첫 큰 경기 경험을 통해, 양의지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글 : <야구라> 배지헌 (www.yagoor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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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_ㅠ 멋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