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막바지 KIA 팬들에게는 고졸 2년차 내야수 박찬호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재치있는 수비 실력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고, 김기태 감독과의 내기 결과를 점치는 재미가 있었다. 박찬호는 시즌 23경기를 남겨두고 김기태 감독과 ‘타율 0.250’을 놓고 내기를 했었다. 목표한 타율을 채우면 김기태 감독이 상금 100만원을 주는 조건이었다. 물론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벌칙이 있었다. ‘무휴일 마무리 캠프’가 그것이었다. 목표 타율과 벌칙 모두 박찬호가 정한 것이었다. 

결과는 계산을 해보기도 민망한 타율로 김기태 감독의 승리로 끝났다. 박찬호가 올 시즌 150타석에서 기록한 안타는 25개. 137타수 25안타로 올 시즌 타율은 0.183이다. 약속된 기간의 타율은 더 내려간다. 30타수 4안타, 0.133의 타율이 박찬호가 내어놓은 결과물이다. 설상가상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는 3개의 실책까지 적립했다. 패기 넘쳤던 모습에 비하면 쑥스러운 마무리였다. 

박찬호는 “내가 잘 막았으면 팀이 삼성전에서도 이길 수 있었는데 집중력이 부족했다. 나 때문에 팀이 져서 웃을 수가 없었다. 5강 싸움을 하다가 떨어지니 진짜 허탈하고 집중이 잘 안 됐다. 5강의 꿈이 하루 만에 한 경기 만에 무너졌다. 더 차분하게 했어야 했는데 마무리가 좋지 못해서 팀에 죄송하고 창피하다. 그래도 올 시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것도 배웠다. 1승, 한 경기, 한 타석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서도 안 시즌이다”고 말했다. 

가을잔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박찬호에게는 꿈꿔왔던 시즌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천방지축 박찬호에게 마음껏 뛰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박찬호는 “행복했다. 내가 언제부터 1군 선수였다고. 1군에서 경기를 하고 뛰면서 꿈꾸었던 것을 이뤘다. 꿈은 이뤘지만 내년을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올 시즌 내 실력이 들통났다. 지금은 수비 밖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다. 캠프에서 정말 열심히 타격 훈련을 하겠다. 2년을 경험했는데 내년에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내가 자격이 없는 것이다”며 “감독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믿어주시고 기회를 주셨다. 내기는 졌지만 감독님의 관심과 믿음이 있어서 1군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찬호의 반성과 성찰로 끝날 일은 아니다. 약속은 지키는 김기태 감독이다. 시즌 최종전이 열린 날 스승과 제자는 약속했던 ‘무휴일 마무리 캠프’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내기에서 완벽하게 져놓고는 감독을 물고 늘어지는 패기.

내년에는 패기만큼 야구도 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