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기말고사 대체 리포트가 있었습니다. 오늘 TA업무로 인해 마감시간 전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좀 무리해서 마감하고 잤지요. 잠이 많은 편이라 평소 때 자는 양이면 유원상 경기를 못보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4시간만 자고 경기시간에 맞춰 눈이 딱 하고 떠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그냥 닫기만 해두었던 노트북을 열고, 한화경기를 시청. 어차피 다음날 할 일은 채점일 뿐이니까 적게 잔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일은 없겠지라고.

그 결과는 뭐 그냥 ㅎ 이거 놓쳤으면 정말 엄청 후회할 뻔 했네요. 근데 저는 아직도 못믿겠습니다. 현진이 경우는 06년 등판 딱 두번보고 믿었습니다. 이 놈은 난놈이구나. 근데 원상이는 아직도 못믿겠네요. 

원상이는 왜 달라졌을까요? 아니 달라진 것처럼 보일까요? 한 두가지로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밑에 플오님이 일관성을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제구력의 첫번째 조건이 바로 그 일관성이라고 하더군요. 원래 종 변화구의 각은 예리했는데 108번뇌 커브를 추가하면서 구속변화가 다양해졌죠. 

근데 이 녀석이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이번 한번 만은 아니잖아요. 가을마다 그랬죠. 가을 성적만 모아서 보면 꽤 활약한 적도 많았잖아요. 근데 이번엔 봄에 활약하다보니 성적이 드러나 보이는거죠. 그 일관성이라는 게 한시즌만에 까먹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몇경기만에 까먹어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송승준 투수는 3봉할 때 어마어마 했거든요. 근데 그 때 폼을 지금은 찾지 못하고 있죠. 

양훈이 현재 부진한 것은 혹사로 인한 구속 감소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선되는 것은 혹사로 몸이 나빠진 상태에서 많이 던짐으로써 좋을 때 던진 그 감각과 폼을 잃어버린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투수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그게 몸에 완전하게 익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 거였죠. 

예전에 무릎을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거의 한달 동안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다가 거의 다 나아가서 걸으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걷는 게 어색하다고 하더라구요. 걷는 법을 잃어버린거죠. 걸음이야 늘 그냥 가는대로 걸어왔기 때문에 당황했죠. 하여간 결국 그 때 며칠동안 걸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굉장히 정석적인 걸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한 1자 걸음에 무게중심이동이 일정하고 양옆으로 흔들리지 않는.

투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냥 어릴 때부터 던져온 거라 그것에 문제점이 있다고 그러면 당혹스러운 거죠. 어쩌다가 잘 던져도 제대로 몸에 익어있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예전에 원상이 투구폼 자체에서 크게 문제점을 찾지는 못하겠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폼의 변화는 거의 없어보입니다. 결국은 심리적인 영향 같아요. 경험, 오기 뭐 그런 것들도 있겠고,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겠죠.  특히나 변화구 제구만 보면 아주 수준급입니다.

어제 정말정말정말 놀랐던 장면이 9회인가 8회인가 2스트라이크 3볼에서 작뱅이었나? 하여간 완봉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시기였는데 원바운드 성 느린 커브를 던지더군요. 결과는 포볼이 되었는데 그런건 에이스들만 가능한 거 아닌가요? 타자도 거의 중심이 무너지다가 참았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근데 이 마음 약한 녀석이 언제 그런 마음을 상실할까 겁이 납니다. 위에 오기라고 적었는데 이녀석 나름 오기가 많죠. 아버지에 대한 오기도 많고, 현진이에 대한 라이벌 의식도 굉장히 강합니다. 둘이 안친해 보이죠. 작년인가? 시즌초 15승 발언도 현진이를 의식한 것이 틀림없고 최근 활약하면서 현진이와 둘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마치 랜디와 실링같다고나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N 쓰고도 ��살 돋네요. 

하여간 여름에 좋은 모습을 보일 때까지, 더 나아가 내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일 때까지는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계속 잘하길. 끗.

ps. 원상이가 현진이 신경쓰는 것처럼, 현진이도 원상이한테 신경을 안쓸수가 없을 거 같아요. 원상이가 항상 그 빌어먹을 성골인지 뭔지라며 실력에 상관없이 주목받아온 것을 봐왔을 테죠. 계약금 상처도 남아있을 테고, 동기면서도 나이가 한 살 많아서 형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그리고 이제 조금씩 잘던진다며 에이스 자리를 위협하는 원상이가 무조건 맘에 들지만은 않을 거라고 보고, 나쁜 거라고 생각 안합니다. 

고생은 현진이가 다해왔고, 현진이가 올시즌 못한 완봉을, 넓은 스트라이크 존과 호수비로 인해 먼저 달성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무조건 좋을리는 없지요. 둘 사이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올시즌 새로운 재미가 될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