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일단 사는 곳이 대구라 20년 넘게 삼성을 응원해 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적엔 주위 친구들은 당연히 삼성을 응원했었고
반에서 몇 안되는 타팀팬(주로 LG팬)은 우리의 철저한 다굴을 감내해야만 했죠.

살면서 제가 삼성 외에 다른 팀을 응원한다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2003년 시즌이 끝나기 전까진 말이죠..

2003년은 이승엽과 심정수의 치열한 홈런쇼로 참 볼거리가 많았던 해로 기억됩니다.
이승엽과 서승화의 싸움도 그때였던 것 같은데..
암튼, 삼성은 SK에게 준플에서 패하고 이승엽은 눈물을 흘리며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삼성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저 역시 눈물을 흘렸었죠.
그리고.. 이만수 코치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때 정말 거짓말처럼 삼성에 대한 정이 확 떨어져버렸는데
그래도 야구를 영 안 보진 못하겠고.. 해서..
당시 삼성 출신 선수들과 코치가 많이 가있던 SK를 응원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그때 와이번스 홈페이지에서 활동을 열심히 해서 2004시즌 팬북도 받았었죠.)

뭐 그랬는데.. 결국 그 해는 시즌 시작과 동시에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고..
(지금 생각하니 시즌 시작 전에 이미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 같기도..)
이후 한동안 야구를 안 봤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2006년)에 여자친구의 꾐에 빠져 마구마구를 시작하면서
다시 프로야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죠.
전 삼성, 여자친구는 KIA(당시엔 05 기본덱)를 했는데
여자친구가 송산이란 포수는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몇 년만에 다시 야구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자친구나 저나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었고..
뭐 매일 보는게 삼성이니 심정적으로 삼성이 이기니까 좋더군요.
마침 그 해에 우승하기도 했었고.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던 여자친구도
매일 야구 기사를 접하고 자주 야구장에 가서 보고 하니까
나중엔 제법 야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더군요.

여자친구 얘긴 됐고.. -_-;;

올시즌 개막전까지만 해도 전 열렬한 삼성팬이었습니다.
배영수와 호세리마가 붙은 대구 개막전을 보며 리마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삼성이 이겨서 정말 기뻤죠.
아, 시즌 전에 한정판매라고 해서 사기를 친 크루즈모자도 샀습니다.
(야구장엔 한 번 쓰고 갔었고, 요샌 동네에서 목욕탕 갈 때만 씁니다..;;)

삼성을 응원하긴 하는데.. 어딘지 2% 부족하다고 할까요..
맘껏 응원하고 싶은데 심정적으로 한 구석이 켕긴다고 해야 하나..;
제가 어릴 때부터 봐왔던 삼성의 야구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는지..
아님 선동렬 감독한테 안 좋은 소릴 몇 번 들어서 삐져서 그런건지..;;;
야구장에 가도 꼭 1루쪽(대구는 1루쪽이 원정팀)에 앉아 응원은 안하고 경기를 관망만 하고..

그러다가 두산의 골수팬인 한 여동생을 알게 되었고
함께 두산 경기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홍성흔 선수 싸인 받으려고 불펜쪽 그물에 붙어 있었는데
홍성흔 선수는 자꾸 저를 외면했고, 현수 이놈이 자꾸 저를 의식하더군요..;;
전 그때만 해도 김현수를 그저 잠시 타격 페이스가 좋은 듣보잡; 정도로 인식했기에
저는 현수 얘가 맘 안 상하도록 외면하느라 애를 썼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안쌤 싸인 받고 만족해하며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ㅎㅎ

그날 선발이 김선우였는데
옆자리에 앉은 동생 따라 두산을 응원하다 보니까
저 역시 자연스레 두산팬이 되어버리더군요..;

두산의 플레이도 참 멋졌고..
3연전을 다 직관하면서 결국 두산팬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때부터.

그 이후론 두산이 올때마다 혼자 오비베어스 유니폼(이건 옛날부터 있던거) 입고 가서
꿋꿋하게 응원했네요. 대부분 주위에 두산팬이 없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서 학교까지 다 나오신 저희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오비랑 LG 응원하셨는데
한동안 야구를 같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번 플옵때 보니까 요즘은 삼성을 응원하시더군요;;; ㅎㅎ
그것 땜에 잠시 언성이 높아지기도..;;

예전엔 대구구장에서 소주 마시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혼자 막 김광림 이름 외치고 그래서
주위 아저씨들한테 안좋은 소리도 많이 듣고.. 전 그런 아버지가 참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20여년이 지나 응원팀이 서로 바뀌니까 참 새롭기도 하더라고요. ㅎ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암튼 이래서 전 현재는 두산팬이고요..



제 대학 동기이자 현재 제 동생 남자친구인 녀석은
포항에서 태어났음에도 오래전부터 LG의 광팬이었습니다.
때문에 대학시절 같이 야구장 가면 혼자 손혁한테 아는척 막 하고 그래서
친구들 모두 왕따시키고 그랬었는데..
삼성전자에 입사하더니 바로 파란 유니폼으로 갈아입더군요;

게다가 제 동생까지 꼬셔서 같이 삼성팬 만들어버리고.. ㅠ
제 동생은 야구 좀 보더니 히어로즈가 좋답니다..
며칠 전에 보니까 내년엔 히어로즈를 응원하자고 남자친구한테 말하더군요; ㅎㅎ



전 제 친구를 첨엔 이해 못했는데
이번 플옵때 야구장에서 만난 두산중공업 직원이라는 아저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따라 응원팀이 바뀔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사는 지역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릴 때가 아닌 이상 이사를 한다고 그 지역팀으로 쉽게 바꾸고 하진 않잖아요.



베팍에서도 분명 특정한 계기를 통해 응원팀을 옮기신 분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떤 일로 옮기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예전 SK팬 잠시 하던 시절엔 현대에서 넘어온 팬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짤은 간만에 보는.. 고로케 리즈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