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즌 마지막 3연전이 열린 지난 4일이다. KIA 김조호 단장이 출입기자단에게 "후반기에 부상 선수들이 많아 팀 성적이 떨어졌다. 그래도 조범현 감독이 선수들의 장래를 보고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아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성공했다. 조 감독의 선수 관리 덕에 내년에는 부상자들이 정상적으로 복귀할 듯하니, 기대해보겠다"고 밝혔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할 경우 조 감독이 경질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을 일축하는 뉘앙스였다.

12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난 12일 밤. 조 감독은 "선수들 모두 고생했는데 아쉽다. 며칠 쉬고 마무리훈련부터 착실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시즌이 끝났다는 후련함이 교차된 표정이었다. 이날 밤 KIA 공식홈페이지 게시판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상에서 이른바 '조범현 퇴진운동'이 일어났다.

13일 오후 KIA 관계자는 "부임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다. 올해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계약기간이 1년 남아 있으니 임기를 보장하는 게 공식적인 구단의 입장이다. 그룹도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감독을 내치기 어려울 것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감독 교체는 없다. 팬들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조 감독을 내칠 명분이 없다"고 털어놨다.

불과 닷새가 지난 18일 KIA는 "조범현 감독이 자진사퇴함에 따라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16일 오후 김 단장과 선 감독이 조우했고, 17일 오후 전격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거물급 감독을 영입하는 데 사전 정지 작업 없이 불과 2~3일 만에 성공했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선 감독은 삼성 소속이라 삼성과의 관계 정리도 필요했다. 구두로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KIA의 모 관계자는 "그룹의 고위인사가 이 전부터 선 감독을 접촉했고, 수차례 회유 끝에 설득에 성공했다. 이후에 구단에 지시해 선 감독 영입 작업을 하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감독 영입을 위한 사전 작업 단계에서 구단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뜻이다. 구단이 그룹 고위층의 분위기나 기류를 최근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 고위층과 구단이 따로 놀았다. 그룹은 구단의 의중과 상관 없이 감독 영입 작업을 진행해 창단 후 첫 우승을 일군 감독을 내쳤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경질된 감독과 함께 몇몇 코치들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타 구단이 대부분 코칭스태프 윤곽을 잡은 터라, 새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