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의 머리와 귀를 보다가) 야구팬들께서 “인터뷰하면 꼭 물어봐 달라”는 게 있었어요. 뭘 거 같아요?

글쎄요.

귀걸이와 머리 염색은 왜 한 거예요?

아, 그거에요(웃음).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귀 뚫은 계기는 평소 두통이 심했어요. 왜 주변에서 ‘머리 아프면 귀 한번 뚫어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뚫어봤는데.

효과가 있던가요?

자기 암시 효과가 있는지 귀 뚫고 나서 머리가 덜 아프더라고요.

나도 석민 씨 나이 정도 때 귀 뚫은 적 있었어요. 동네 미장원에서. 그땐 멋 내려고 했는데, 미장원 아줌마가 그날 잠을 못 잤다고 계속 하품만 하는 거예요. 어째 불안했는데 귀 뚫고 나서 거울 보니까 연골이 뚫려 있었어요. 그건 그렇고 빨간색 귀걸이, 참 강렬한데(웃음).

사실 빨간색 대신 무난한 귀걸이로 바꾸려는데 제가 귀걸이 했다는 걸 자꾸 까먹어요. 집에서 거울 보다가 ‘어, 이 귀걸이가 아직도 걸려 있네’하는 식이에요(웃음). 머리는 계속 까마니까 염색 한번 해본 거예요.

코칭스태프에서 뭐라 하지 않아요?

옛날에 (이순철)수석코치님이 귀걸이 같은 거 엄청 싫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번 귀걸이하고 나왔을 때 아무 말씀 없는 거 보고 ‘그냥 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일전에 사진 보니까 얼굴에 작은 반창고가 붙어 있던데. 점도 뺀 거예요? 팬들이 “윤석민 선수가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네.

아니에요. 그것도 그냥 우연이었어요. (이)범석이 형이랑 밥 먹으러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좀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범석이 형이 “석민아, 우리 점 빼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가 뺀 거예요(웃음). 작년 겨울에도 얼굴에 있는 점 몽땅 뺀 적이 있거든요. (코밑의 점을 만지며) 작은 점은 사라지는데, 큰 점은 조금씩 연해지는 정도에요.

2010년 6월 18일 문학 SK전에서 라커룸 문을 오른손으로 치는 바람에 오른손 골절상을 당했습니다. 평소 순둥이같던 윤석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씁쓸한 표정으로) 자존심과 책임감 때문에 그랬어요.

자존심과 책임감?

2009년 9승에 그쳤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후회가 많은 시즌이었어요. 그래서 이 악물고 정말 독하게 2010년을 준비했어요. 시즌 초반 페이스가 좋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계속 경기가 꼬이기 시작했어요. 잘 던져도 지고.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제 자신이 자꾸 동요하는 게 싫었지만, 이상하게 잘 마음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거기다 제 개인 성적만 나쁘면 그만인데, 팀이 연승일 때 꼭 제가 등판하면 지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음.

진짜 그랬어요. 외국인 투수 2명이랑 서재응 선배, (양)현종이가 4연승을 기록하면 꼭 제 차례에서 연승이 끊겼어요. 그게 너무 화났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괜히 팀에 민폐 끼치는 것 같고, 동료들 얼굴도 못 쳐다볼 것 같은 기분.

알 것 같아요.

그즈음 1위를 달리던 SK를 만났어요. 우리가 4연승 중이었기 때문에 속으로 ‘SK전을 꼭 이겨서 연승을 이어가자’고 다짐했죠. 초반부터 마음먹은 대로 경기가 풀리더라고요. 9회 초까지 3대 1로 SK에 리드하고 있었어요. 9회 말 ‘딱’ 등판하려고 하니까 (조범현) 감독님이 막으셨어요. 그때 제가 ‘감독님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어요. 정말 마운드에 올라갈 때만 해도 힘이 하나도 안 드는 거예요. (말끝을 흐리며) 그런데 난생처음.

난생처음?
 
마운드에 서니까 난생처음으로 심장이 ‘쿵쿵쿵쿵’하고 뛰는 거예요. 진정시키려고 해도 그게 안 될 정도였어요.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자신감이 불타올랐나 봐요.

(고개를 흔들며) 아니요. 반대였어요. 자꾸 지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어요. 역전당할 것 같은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돼’하는데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우울한 표정으로) 그러다 실투를 거듭하면서 1실점 하고서 2사 1, 2루에 강판당했어요.

석민 씨가 나간 이후, 불펜투수들이 나섰지만, 조동화에게 2타점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고 결국 KIA가 SK에 3대 4로 역전패했어요.

강판되고서 동료들이랑 하이파이브하는데 정말 미안했어요.

자존심, 책임감, 미안함이 더해져 자기도 모르게 라커룸 문을 친 거군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승리 코멘트였어요. 보통 경기 끝나기 바로 전에 승리투수의 코멘트를 받잖아요. 전 그게 정말 싫었어요. 왜냐하면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자축하는 것 같아 좀 그랬어요. 실컷 승리 코멘트했는데, 갑자기 역전돼 승리를 날린 적도 많았고요. 어쨌거나 동료들과 하이파이브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승리 코멘트를 해달라는 말에 순간, 눈이 돌아갔어요. 진짜 저도 모르게 라커룸 문을 치고 말았어요.

칠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치는 순간 ‘무조건 부러졌다’ 싶었어요.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으니까요.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손이 아팠어요.

그 일이 터지고서 잃은 게 많았습니다. 본인은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고, KIA 역시 석민 씨의 부상과 함께 16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됐어요. 반면 개인적으로 얻은 것도 있었을 듯싶어요.

많은 교훈을 얻었어요. 이전까진 그저 ‘열심히 잘하자’란 다짐만 했는데, 그해 시즌이 끝나고서 2011시즌 준비할 땐 ‘죽을 힘을 다하자’고 맹세했어요. (혼잣말하듯) 정말 2010년의 저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의 대단한 성적을 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2010년 6월 18일’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어요. 지난 시즌 그렇게 잘한 것도 그런 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구종 이야기가 나와 묻겠습니다. 과거 해태 투수였던 조계현(현 LG 수석코치) 이후 가장 많은 변화구를 던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로 실전에서 사용하는 구종은 몇 개나 됩니까.

(손가락을 접으며) 속구, 슬라이더, 커브, 서클체인지업. 총 4개요.

언제든 실전에서 던질 수 있는 구종까지 포함하면 몇 개에요?

8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팜볼, 스플리터, 싱커, 변형 체인지업까지 합치면.

이 가운데 간혹 실전에서 사용하는 비장의 무기는 뭡니까.

팜볼이요. 커브와 궤도는 비슷한데 커브에 비해 회전수가 거의 없어요. 2008년 한화전에서 (이)범호형이랑 상대할 때 팜볼로 삼진잡은 기억이 나요.

팜볼이라.

당시 경기 전에 포수한테 그랬어요. “오늘 범호형 타석 때 결정적인 순간에 팜볼을 던지겠다”고요. 뭐 사인도 없었어요. 그저 제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이는 게 던진다는 신호였어요. 포수는 “뭐하러 잘 던지지도 않았던 공을 던지려고 하느냐”고 반대했어요. 그러다 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고개를 두 번 끄덕였죠. 포수가 당황하는 거예요(웃음). 결국 팜볼로 범호형을 삼진으로 잡아냈어요.

스플리터 구사비율은 어때요?

올해 좀 던졌어요. 그걸로 삼진 좀 잡았죠(웃음).

스플리터 많이 던지면 속구 구속이 준다는 소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정말 뜬금없을 때 하나씩 던졌어요. 

지난 시즌 초반만 해도 변화구 구사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았어요. 그러다 당시 MBC SPORTS+ 해설위원이던 이순철 수석코치가 방송에서 “속구를 더 많이 던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속구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는 어땠어요?

이 수석코치님이 조언해주신 이후로 제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서 그런가. 주변에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사실 제 구종비율은 변화구가 좋을 때는 변화구 7, 속구 3 정도에요. 반대로 속구가 좋을 때는 5대 5까지 가죠. 하지만, 그때 제가 확 달라진 건 속구 구사율을 높였기 때문이 아니라 구종을 단순화한 덕분이었다고 봐요.

구종의 단순화?

이전만 해도 변화구와 속구 비율이 6대 4라고 치면요. 변화구 6개를 던질 때도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스플리터, 싱커, 팜볼 등을 골고루 던졌어요. 그런데 올해는 ‘딱’ 속구와 슬라이더 위주로만 던졌어요. 한 경기에서 커브와 체인지업은 5개 미만이었으니 말 다한 거죠.

구종을 단순화한 이유는 뭐에요?

자신감이죠. 시즌 초반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타자들이 알고도 못 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나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가 약간 빠지는 볼을 던졌다가 ‘넣고 빼고’를 반복하니까 타자들이 헷갈려 하더라고요. 쳐도 범타고. 그래서 제일 효율적인 구종인 속구와 슬라이더 위주로 투구했어요.

지난 시즌 172 1/3이닝을 던졌습니다. 최다이닝 리그 공동 5위에 해당했어요. 그러나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투구이닝 소화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부에선 “2011시즌의 투구이닝이 다음 시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석민 씨의 체력이 약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더군요.

글쎄요. 2009, 2010년 2년 연속 120이닝 이하로 던진 걸 기준으로 2011년 제가 많이 던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아요. 2009년은 시즌 중반에 마무리를 맡으면서 투구이닝이 준 거고, 2010년은 손 부상 때문에 역시 많이 등판하지 못해 투구이닝이 101이닝에 그쳤던 거예요. 기본적으로 한 시즌 170에서 180이닝 정도는 무리없이 던질 수 있어요. (다소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저 보고 “체력이 약하다”는 소릴 하기도 하는데요. 지난 시즌, 잔부상 때문에 등판을 거른 적은 있어도, 힘들어서 등판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9회에도 시속 148km의 속구를 던질 수 있고요. (고개를 갸웃하며)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에 솔직히 별로 동의할 수 없어요.

‘많은 투구이닝을 소화할 수 없다, 체력이 약하다’란 세간의 평을 마음에 둘 필요 없어요. 되레 그런 소릴 듣지 않겠다고 무리하다 낭패를 볼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생각이에요. 항상 제 머릿속의 첫 번째 생각은 ‘아프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잔부상은 많았어도 큰 부상은 없었어요. 정말 제일 바보 같은 게 욕심부리다가 한방에 다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이대진(LG) 선배를 만난 게 행운이었어요.

이대진을 만난 게 행운이요?

루키 때부터 운 좋게도 룸메이트가 이대진 선배님이었어요. 한 3년 같이 했을 거예요. 그때 이 선배님으로부터 만 번 넘게 들은 소리가 “욕심부리지 마라”는 거였어요. “몸은 신호를 주지 않고 갑자기 나빠진다”는 조언을 들으면서 부상을 항상 조심했어요. 이 선배님을 보면서 다친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일찌감치 깨달은 셈이죠. 어떻게 보면 제가 어린 나이에 영리하게 군 건지도 몰라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팀이 급할 때면 무리를 감수하고 등판을 강행하곤 했어요.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때도 그랬고.

(한숨을 내쉬며) 그럴 땐 제가 자제력이 없던 거예요. 그러면 다칠 수도 있는데 경기를 하다 보면 승부욕이 일어나,고 책임감이 생기다 보니까 생각대로 조절이 안 돼요.

선동열 감독이 ‘막’ KIA 사령탑으로 취임했을 때 석민 씨가 “감독님께서 절 봐도 별말씀이 없으세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요즘은 어떤가요.

감독님과 야구 외적인 대화는 많이 나눴어요. “석민아, 지금 여자친구 있냐” 물으셔서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더니 “왜 없냐”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눈이 좀 높아서요.”(웃음).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가면 야구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실 것 같아요.

선 감독은 에이스 윤석민에 대한 기대가 커요. 반대로 석민 씨 역시 ‘국보급 투수’였던 선 감독에 대한 기대가 클 듯싶어요.

(신중한 표정으로) 기술적인 것보단 감독님께서 현역 시절 어떤 마인드이셨고, 어떻게 경기운영을 하셨는지 배우고 싶어요. 가능한 감독님께 많은 걸 배우고 그걸 제 것으로 승화하고 싶어요.

2013년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됩니다. 어떤 선수든지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텐데요. 석민 씨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렇죠. 저 보고 미국과 일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전 무조건 미국이에요. 미국 야구시장이 제일 크고, 메이저리그는 최고의 선수들만 모이는 곳이니까요. 메이저리그에서 뛰고나서 일본 프로야구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솔직히 돈보다는 큰 무대에서 뛰면서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하는 경험을 하고 싶어요.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지만, 자신은 있어요.

선수 입장에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큰 무대로 진출하면 좋을 텐데요.

일본 선수들이 미국에 많이 진출하는 이유도 FA기간이 우리나라보다 더 짧고, 포스팅으로도 자유럽게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나 포스팅을 통해 일본 선수들이 워낙 많이 미국 무대로 진출하다 보니까 자꾸 포스팅 기회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케이스가 없으니까 포스팅 기회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지난 시즌이 끝나고서 그 물꼬를 제가 첫 번째로 트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2년 후, 정식 기회를 갖는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석민 씨가 우회적으로 미국 도전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아주 적극적으로 희망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만약 포스팅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면 제가 첫 번째 선례가 되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더 모양새를 갖추고 싶었어요. 구단과 틀어지고 싶지도 않았어요. 제 의사를 구단에 충실히 전달한 건 아니지만, 구단도 심사숙고해서 검토해줬기 때문에 미국 무대 도전 의사를 접고 지금 열심히 KIA에서 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오직 KIA 우승만 생각하고 있어요.

아, 맞다. 항상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별명이 ‘석민 어린이’에요? 2007년까진 ‘광주댐’ 아니었나.

‘광주댐’은 구단에서 제 별명을 공모했을 때 제가 선택한 거고요. ‘석민 어린이’는 저도 언제 어떻게 하다가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별명은 마음에 들어요?

전 팬들이 절 뭐라고 놀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석민 어린이’라고 불려도 기분 나쁘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저 내 별명이 왜 어린이일까 궁금할 뿐이에요(웃음). 나쁘지 않은 별명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