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 김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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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완(鐵腕)이라 불린 사나이
6월 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제62회 청룡기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 전통의 강호 경남고와 창단 32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강릉고가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두 팀의 응원단이 쏟아내는 함성으로 운동장은 경기 내내 활기가 넘쳤다.
동대문야구장 1층에 마련된 귀빈실에서 결승전을 바라보는 한 노인의 마음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안타가 터질 때면 노인의 어깨는 눈썹이 떨리듯 작게 들썩이기도 했다. 경남고가 투수 하준호의 역투로 강릉고를 5－0으로 꺾는데. 그때 노인의 눈이 잠시 감겼다.
1949년 6월 13일 제4회 청롱기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경남중과 광주서중의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동대운동장. 경남중 투수는 해방 이후 중학야구 최고의 스타인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장태영. 제1회 청룡기대회 때 이미 왼손 유격수로 출전했던 장태영은 경남중을 1947, 1948년 청룡기대회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바 있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청룡기 3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울 터. 반면 광주서중은 무명팀이었다. 투수 김양중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경남중의 완벽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경기는 8회까지 0－0 팽팽한 투수전으로 진행된다. 9회초 경남중이 선취점을 올려 1－0으로 광주서중에 앞서며 경기를 끝내는 듯하지만.
“김양중 선생님.” 대한야구협회 구경백 홍보이사가 노인의 이름을 부르자 그때서야 노인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노인의 왼손이 야구공을 손에 쥔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년이면 동대문야구장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구이사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노인의 젖은 시선이 운동장에서 헹가래를 치고 있는 경남고 선수단으로 향했다. 정확히 58년 전 이맘때 노인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경남고는 반대로 낙담과 실의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 야구를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내가 찬찬히 이야기를 할 테니까 들어보라고. 일제시대 때 찜푸를 했거든.(기자를 바라보며) 자네 찜푸라고 들어봤나? 아이들끼리 동네별로 그 찜푸란 걸 했는데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연필내기를 했어. 그러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들이 광주비행장에 들어왔는데 거기에서 주말마다 야구를 한 거야.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운동장이 없던 시절이니까 비행장에서 야구를 할 수밖에.
그게 시작이셨나요.
들어 보라고. 그때 우리처럼 꼬맹이들은 담 너머로 미군들이 하는 야구를 구경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가끔 공이 담을 넘어 우리한테 왔어. 걔네들은 공 찾을 생각도 안 해. 그러면 우리가 잽싸게 가서 주웠지. 방망이도 부러지면 그냥 그 자리에 놓고 가는데 그것도 우리가 챙겨왔어. 그때는 지금처럼 스타킹, 언더셔츠 같은 건 꿈도 못 꿨어. 모자, 배트, 공도 구할 수 없던 시절이라고. 유니폼도 광목으로 만들었다니까(웃음). 그걸 주워서 야구를 시작한 거야.
광주서중(현 광주제일고)이면 당시 호남지역 최고 명문이었습니다.
웬만큼 공부해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학교였어. 죄다 머리가 괜찮은 아이들이었어. 사실 말이야. 광주 호남지역은 야구 불모지였거든. 부산, 서울, 인천은 개화가 빨라서 도시대항야구도 벌이고 했었지. 광주서중에 야구부가 없었어. 그런데 1947년 내가 중3 때 심양섭 씨란 분이 무보수로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 거야. 그때 16명의 학생으로 광주서중 야구부가 창단됐지.
처음 포지션은 3루수 아니었습니까. 투수로는 언제 전향하셨는지요.
잘 아는구먼. 그래 왼손으로 3루수를 봤지. 그런데 우리 팀 투수가 약했어. 맨날 나가면 두들겨 맞는 거야. 심선생님이 하루는 나를 불러서 “네가 한번 던져봐라”하시기에 던져봤지.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내가 생각해도 그때 공이 빨랐어. ‘자연 슈트’도 막 들어가는 거야.
1949년 청룡기대회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주서중과 경남중이 벌인 결승전은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명승부입니다.
1천 명 가운데 95%가 경남중이 대회 3연속 우승을 할 거라고 예상했어. 그 친구들은 야구를 할 줄 알았거든. 아무래도 부산이 일본하고 가까우니까 일찍 야구에 눈을 뜨지 않았겠나. 광주서중이야 다 촌놈들이었지(웃음). 당시 경남중 3번 타자가 장태영이었어. 투수인데도 방망이가 좋았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서로 삼진을 3번씩 먹였던 게 기억나는구먼.
8회까지 0－0의 팽팽한 투수전을 벌였습니다.
나로서는 경남중의 강타선을 8회까지 막은 게 대단한 것이었네.
그런데 9회초 경남중이 선취점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9회말 광주서중이 2사까지 몰려 패배가 확실해 보였는데요.
맞아. 우리 학교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거든. 주자 없이 2사였으니까 당연한 게지. 그런데 우리가 말 공격인 게 다행이었어. 우리 2번 타자가 이완재였을 거야. 이 친구가 친 공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경남중 2루수(정상규)가 멋 부린다고 언더핸드로 1루수에게 송구했는데 그게 뒤로 빠지면서 이완재가 2루까지 달려갔지 뭐야.
다음 타자가 선생님이었는데요.
그렇지. 내가 전 타석에서 3번이나 장태영한테 삼진을 먹지 않았나. 이번에도 어렵구나 싶었는데 심선생님이 부르시는 거야. “양중아, 눈 감고 쳐라. 네 기분 가는 데로 쳐라.” “네, 알았습니다” 했지. 그때 마운드에서 장태영이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투스트라이크 원볼로 내가 몰렸어. 그런데 말이야. 그냥 맞춘다고 맞췄는데 그게 안타가 된 거야.
직접 동점을 만드셨군요.
일어났던 관중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지. 사실 말이지. 실력으로 치면 우리가 경남중한테 10분의 1도 안 됐어. 하지만 야구는 상대를 얕잡아 보면 안 되거든. 경남중 선수들이 리드를 하다가 나한테 견제구로 3번이나 죽었다네. 촌놈이라고 깔본 게지.
연장 11회까지 갔는데요.
연장에 들어가니까 경남중 애들이 숨이 죽더라고. 기세가 떨어졌어. ‘옳지. 너그들 딱 걸렸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장태영이 처음으로 볼넷을 허용하더군. 심선생님이 문택영한테 보내기번트 사인을 냈는데 장태영 공이 어찌나 빠른지.
번트 실수라도 했나요.
우리는 그때까지 야구를 잘 몰랐어. 번트 댈 줄도 몰랐지만 번트에 대비한 전진수비가 뭔지도 몰랐거든. 그런데 경남중이 전진수비를 하니까 문택영이 깜짝 놀랐지. 번트 댈 때 배트를 뒤로 빼면서 ‘톡’ 대야 하는데 그냥 번트 자세로 공을 배트 심에다 ‘쿵’하고 맞춘 거야. 공이 3루수 키를 넘어 좌익수 있는 데까지 날아가는 게야. 그런데 재미난 게 말이지. 1루 주자가 3루까지 냅다 달렸는데 좌익수가 긴장했는지 공을 3루에 던진다고 던진 게 이번에도 3루수 키를 넘기고 만 거야. 그때 1루 주자는 송구에 죽는 줄 알고 3루에 넘어져 있었거든. 그걸 보고 우리가 “야, 뭐해. 일어나서 빨리 달려” 했어.
결국 홈에서 세이프가 됐나요.
얼떨결에 세이프가 됐지. 참, 그때 세이프가 됐을 때 우리를 응원하는 관중은 기뻐서 울고 우리는 정신없어서 울고. 재경 선배들이 이겨 놓고 보니까 응원가는 불러야겠는데 마땅한 응원가가 없는 거야. 부를 거라곤 일제시대 때 교가밖에 없었거든.
교가를 부르던가요.
(손을 저으며)아니네. 교가를 일본어로 부르기는 그렇고 하니까 ‘라라~~라라’하고 불렀지. 아직도 그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
우승기념 회식이라도 하셨을 듯합니다. 그때가 이맘때인 6월이었네. 재경 선배들이 더우니까 밀짚 모자를 쓰고 나왔거든. 그런데 난데없이 우리가 우승하니까 밀짚 모자로 ‘후배들 저녁이나 먹이자’면서 돈을 걷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모아준 돈으로 쌀밥 먹은 게 회식이라면 회식이었지.
우승 퍼레이드는 멋지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서민호 씨라고 조선전업 사장님이 계셨네. 그 분이 군용트럭 같은 차를 한 대 내주셨어. 우리 팀 선수들이 우승기를 들고 거기에 올라 타 동대문에서 을지로, 서대문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그랬다고. ‘저 미친 놈들 뭐 하는 거야.’(웃음) 광주로 돌아갔을 때 재학생 700명이 송정리역에 모두 나와서 우리를 환영했지.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6남매 가운데 장남이라네. (옆에 있던 아내 정희연 여사가 “시아버지가 상공부에 다니던 공무원으로 남편의 어린 시절은 매우 유복했다”고 말했다)집사람 말대로 유년 때는 집안이 좋았어. 그 당시 광주 중앙유치원에 다녔다면 말 다한 거지. 그런데 아버님이 사업실패로 매일 술만 드시기 시작한 거야. 그때부터 집안 살림이 어려웠지. 내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가족이 힘들었어.
그때 광주지역에서 선생님을 가리켜 ‘나무꾼 투수’라고 불렀다는데요.
산에 가서 나무를 많이 베었어. 소나무 껍질을 까면 기름이 나오는데 그걸 기름 대신 썼어. 내가 산에 오를 때 늘 방망이를 들고 올라가서 그걸로 나무를 ‘펑펑’ 쳐서 쓰러뜨렸다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 같아.
야구에도 도움이 됐을 법 한데요.
그럼. 도끼질이 검도할 때처럼 손목을 굉장히 좋아지게 하거든. 투수는 손목힘이 생명 아닌가. 거기다 매일같이 산에 오르니 하체가 좋아질 수밖에. 나중에 실업팀에 갔을 때 동료들이랑 허벅지 둘레로 빵내기를 하면 내가 늘 이겼다고. 아마 그때 허벅지 사이즈가 23인치였을 거야.
다음해 광주서중을 졸업하셨습니다. 서울상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라이벌 장태영 선생은 서울상대에 입학하셨는데 선생님께서는 금융조합에 입단하셨습니다.
대학 욕심도 있었지. 내가 그래도 광주서중 출신 아닌가. 그런데 가난이 말도 못했거든. 내 꿈이 뭐였는지 아나. 쌀 뒤주를 가득 채우는 게 젊었을 때 소원이었다고. 마침 금융조합 감독이던 김영조 선생과 광주서중 감독이던 심양섭 선생님이 친분이 있으셔서 자연스럽게 금융조합에 가게 됐어(김양중은 1949년 12월 31일자로 금융조합 전남지부 양곡과 서기보로 발령받는다).
김영조 선생 하면 한국야구에 큰 획을 남기신 분 아닙니까.
그 양반 인상이 부리부리했다고. 엄하기는 말도 못했어. 포지션은 포수였는데 입단하고 나니까 이거 광주서중 때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거야. 김영조 씨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투수는 공 던지는 데만 신경 써야지 배트를 휘두를 욕심내면 절대 안 된다. 하루 300개씩 투구 연습을 해라.”
힘드셨을 듯합니다.
힘든 건 둘째 치고 화가 나더라고. 방망이도 못 치게 하고 맨날 뜀박질만 시키니까 화가 나지 안 났겠어(웃음).
그런 김선생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시려고 짐까지 싼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러다 잡혔잖아(웃음). 그 분이 그러시더라고. “양중아, 네 야구는 이제부터다. 지금이 고비다. 고교 때 네가 잘했다고 하지만
지나가는 야구선수 붙잡고 물어 보거라. 고교 때 야구 못한 사람 있는지. 참고 견디면 꼭 성공할 수 있으니 조급해 하지
말거라.” 내가 그때만 해도 술, 담배를 못하니까 김선생이 나한테 50원씩 앙꼬빵 사먹으라고 용돈을 쥐어줬어. 도망 못 가게
하려고 말이지(웃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각종 실업대회에서 우수선수상을 휩쓰셨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을 휩쓴 셈인데요. 선생님만의 투구 비법이라도 있으셨는지요.
아무래도 공이 빨랐지(원로 야구인들은 당시 김양중의 직구가 시속 150km를 넘었다고 말한다). 내가 직구를 던지면 이게 직구인데도 슈트처럼 아래로 ‘휙’하고 꺾였다가 또 ‘획’하고 공중으로 뜨곤 했어. 그걸 던지려고 던진 게 아니었는데도 포수들이나 타자들이 그렇게 공이 간다고 하더라고. 내가 투수할 때만 해도 투수들이 변화구는 거의 던지지 않았네. 그냥 오직 직구만 던졌어. 드롭이나 커브는 던질 줄 알았지만 거의 던지지 않았어.
변화구 없이 직구로만 타자와 승부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청룡기 때 장태영과 연장 11회까지 갈 때도 우리 둘 다 직구만 던졌어. 우리 때는 어린 투수들이 변화구 던지면 근육을 반대로 틀어야 하니까 어깨가 빨리 상할 수 있다고 해서 지도자들이 못 던지게 했거든.
1955년 육군에 입대하시면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하셨는데요.
이거 재미난 이야기니까 잘 듣게. 내가 가정 빈곤으로 군입대를 연기하고 있는 상태였어. 거기다 1955년 1월 3일 결혼도 해서 군대 갈 정신이 없었다네. 그런데 마침 그때 육군 야구팀이 1개 사단 규모도 안 되는 공군 야구팀한테 진 거야. 육군 별들께서 난리가 났지. “똑바로 야구 못 하냐”고 역정을 내니까 그때 육군 야구부에 근무하던 이용일(한국야구위원회 초대 사무총장) 부관이 나를 잡으러 온 거야.
어디로 끌려 가셨습니까.
돈암동에 있는 이용일 씨 댁으로 끌려갔지. 그런데 가보니까 장태영, 박현식이 이미 와 있는 거야. 육군에서 나한테 그러더라고. “딱 2년만 도와달라.” (그때 정여사가 “그런데 이 사람이 육군에서 도망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사실이신가요.
사연이 있었어. 그때 공군에는 경남중 출신들이 많았거든. 육군이 질 수밖에 없지. 허곤이란 양반이 공군 중령이면서 야구단 감독을 맡고 계셨는데 그 양반이 “네가 오면 공군 장교를 시켜주겠다. 뭐든 다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어. 그 당시야 군번 먼저 내준 사람이 임자였던 시절이니까 내가 가면 육군보다 먼저 군번을 달아줄 요량이었지. 그런데 헌병대에서 그 사실을 알고 내가 도망가자 금융조합 회장실에 쫓아 와서 난리를 친 거야. 회장님이 불러서 신신당부 하시더라고. “아그야, 기냥 육군 가니라.”
육군에서도 투수셨지요.
박현식, 장태영 등 쟁쟁한 투수들이 있었지만 내가 들어오고 박현식은 좌익수, 장태영은 중견수로 나갔어. 한마디로 육군을 김양중이가 지키게 된 거야(웃음). 우리가 주로 상대한 팀이 미8군이라고. 왜냐하면 걔네들이랑 야구를 해야 장비를 얻을 수 있었거든. 8군 리그가 6~8월에 했는데 우리가 아마 2번 우승했을 거야.
미8군에 메이저리그 출신 병사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우린 그런 거 몰라. 그냥 던지는 거지. 이런 일이 있었네. 내가 오늘 던지면 내일도 던지고 모레도 던지고 하니까 하루는 미군 감독이 묻는 거야. “아니 당신 팔은 고무로 만들었느냐. 왜 매일같이 던지냐.” 그때 붙여진 별명이 ‘철완’이야.
1958년 10월 2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경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첫 만남이었는데요.
그때 우리는 메이저리그를 처음 만났네. 그전이야 메이저리그가 뭐 하는 동네인지도 몰랐어. 그런데 이 놈들이 배팅 연습을 하는데 기가 차더라고. 10개를 치면 7개가 담장을 넘어가는 거야. 그런데 작전을 잘못 짰어. 오윤환 씨가 대표팀 감독이었는데 “저 놈들은 슬로 볼 투수에 분명 약할 테니까 배용섭(대한통운) 네가 나가 본때를 보여줘라”고 한 거야.
작전대로 되던가요.
아니지. 치면 다 안타야. 노아웃에 만루가 되니까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지. 오감독님이 “양중아, 빨라 나가서 네가 수습해라”하시더라고. 정신없이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은 것 같아. 나중에 2점인가 주긴 했지만 잘 막았지 뭐.
6회에 당대 최고의 타자 스탠 뮤지얼과 상대해 삼진을 잡으셨습니다.
그게 누군지도 몰랐어. 나중에야 알았지. 1997년에 뮤지얼이 한국을 찾아왔을 때 나를 찾더라고. 롯데호텔에 묵고 있는 뮤지얼을 찾아가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 뮤지얼이란 친구가 그러데. “당신 그때 던진 공 정말 무서웠다”고.
장태영 씨와는 줄곧 라이벌이었습니다. 특히 두 분 모두 감독이 되신 후 라이벌 의식이 강해진 듯합니다.
다 친했어. 부인네들끼리 ‘육구회’라고 친목계도 만들고 했어.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기업은행 감독이 되고 장태영이 상업은행 감독이 되면서 라이벌 의식이 생겼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1962년 기업은행이 창단했을 때 내가 감독을 맡았어. 그때 기업은행은 은행팀 가운데 가장 가난했어. 전국 지점도 30개
정도밖에 안 됐어. 김성근(SK 감독), 최관수(전 군산상고 감독)가 있는데 우리가 질 게 뭐가 있느냐고 덤벼들었지.
상업은행전에서 선수들이 잘 치면 용돈을 주기도 했다니까.
당시 김성근은 어떤 선수였습니까.
일화가 있네. 한 번은 서대문 로타리에서 고양군 원당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거리가 20km 가까이 됐어. 그런데 김성근이 갑자기 “먼저 가십시오”하면서 자기만 뛰어서 가는 거야. 굉장한 노력파인데다 무척 성실한 선수였어. 그때 기업은행 투수를 가리켜 ‘좌 성근, 우 관수’라고 불렀지.
1967년 돌연 야구계에서 은퇴하시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새 삶을 사셨는데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 새 삶을 살고 싶었던 게지. 집사람 고생이 말도 못했거든. 이 사람이 지금도 그런다고. “당신이 문만 두들겨도 그날 경기를 이겼는지 졌는지 알았다”고 말이야. 당시 감독이 은행 대리직급이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은행 지점장이 될 수 있었네. 1986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은행원으로 잘 살았어.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지 않았나요.
잘 아는구먼. 부산 롯데는 장태영, 인천 삼미는 박현식, 나는 광주 해태를 맡아줬으면 했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실은 해태가 아니라 금호가 창단할 뻔 했거든. 금호 박성용이 나랑 동기동창이어서 “네가 꼭 맡아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 그런데 이미 야구계를 떠난 몸이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동대문운동장이 헐립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그렇지 않아도 올해 청룡기 때 동대문운동장에 갔다고. 귀빈실에 앉아 있는데 이거 말할 사람이 없는 거야. 친구들은 나 두고 먼저 다 떠나고 연배가 한참 밑인 후배들만 있는데 거기나 나나 영 불편하잖아. 친구들 생각이 계속 나는 거야. 그런데 그때 창문으로 보니까 경남고가 경기를 하고 있지 않아. 경남고, 그 옛날 그 경남고 말일세.
혹시 시구 제의가 들어오면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젊은 야구팬들에게 한국야구사에도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전 박현식이 죽기 전에 그 무슨 구장이지.(기자가 문학구장이라고 하자)그래 그 구장에서 시구를 하는데 가슴이 아프더라고. 그 친구가 공을 던지는데 왼쪽 다리에 힘이 없다 보니까 공이 가지 않는 거야. 아마 그러다 3개월 있다 저세상으로 갔지. (눈을 감으며) 철완이면 포수한테까지 공이 가야 하지 않겠나. 철완이면.
김양중
1930년 9월 3일 전남 광주 출생
광주서중(현 광주제일고)-금련-육군-기업은행
1949년 제4회 청룡기 우수투수상
백구회 회장
SPORTS2.0 제 57호(발행일 06월 25일) 기사
작년 박동희 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SK가 의미있는 시구자를 모셨네요. 인천 야구의 대부 고 박현식 감독님에 이어 50년대의 전설적인 투수 김양중 씨를 모셨네요.
박동희 기자 / 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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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야구장 1층에 마련된 귀빈실에서 결승전을 바라보는 한 노인의 마음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안타가 터질 때면 노인의 어깨는 눈썹이 떨리듯 작게 들썩이기도 했다. 경남고가 투수 하준호의 역투로 강릉고를 5－0으로 꺾는데. 그때 노인의 눈이 잠시 감겼다.
1949년 6월 13일 제4회 청롱기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경남중과 광주서중의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동대운동장. 경남중 투수는 해방 이후 중학야구 최고의 스타인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장태영. 제1회 청룡기대회 때 이미 왼손 유격수로 출전했던 장태영은 경남중을 1947, 1948년 청룡기대회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바 있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청룡기 3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울 터. 반면 광주서중은 무명팀이었다. 투수 김양중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경남중의 완벽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경기는 8회까지 0－0 팽팽한 투수전으로 진행된다. 9회초 경남중이 선취점을 올려 1－0으로 광주서중에 앞서며 경기를 끝내는 듯하지만.
“김양중 선생님.” 대한야구협회 구경백 홍보이사가 노인의 이름을 부르자 그때서야 노인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노인의 왼손이 야구공을 손에 쥔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년이면 동대문야구장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구이사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노인의 젖은 시선이 운동장에서 헹가래를 치고 있는 경남고 선수단으로 향했다. 정확히 58년 전 이맘때 노인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경남고는 반대로 낙담과 실의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 야구를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내가 찬찬히 이야기를 할 테니까 들어보라고. 일제시대 때 찜푸를 했거든.(기자를 바라보며) 자네 찜푸라고 들어봤나? 아이들끼리 동네별로 그 찜푸란 걸 했는데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연필내기를 했어. 그러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들이 광주비행장에 들어왔는데 거기에서 주말마다 야구를 한 거야.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운동장이 없던 시절이니까 비행장에서 야구를 할 수밖에.
그게 시작이셨나요.
들어 보라고. 그때 우리처럼 꼬맹이들은 담 너머로 미군들이 하는 야구를 구경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가끔 공이 담을 넘어 우리한테 왔어. 걔네들은 공 찾을 생각도 안 해. 그러면 우리가 잽싸게 가서 주웠지. 방망이도 부러지면 그냥 그 자리에 놓고 가는데 그것도 우리가 챙겨왔어. 그때는 지금처럼 스타킹, 언더셔츠 같은 건 꿈도 못 꿨어. 모자, 배트, 공도 구할 수 없던 시절이라고. 유니폼도 광목으로 만들었다니까(웃음). 그걸 주워서 야구를 시작한 거야.
광주서중(현 광주제일고)이면 당시 호남지역 최고 명문이었습니다.
웬만큼 공부해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학교였어. 죄다 머리가 괜찮은 아이들이었어. 사실 말이야. 광주 호남지역은 야구 불모지였거든. 부산, 서울, 인천은 개화가 빨라서 도시대항야구도 벌이고 했었지. 광주서중에 야구부가 없었어. 그런데 1947년 내가 중3 때 심양섭 씨란 분이 무보수로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 거야. 그때 16명의 학생으로 광주서중 야구부가 창단됐지.
처음 포지션은 3루수 아니었습니까. 투수로는 언제 전향하셨는지요.
잘 아는구먼. 그래 왼손으로 3루수를 봤지. 그런데 우리 팀 투수가 약했어. 맨날 나가면 두들겨 맞는 거야. 심선생님이 하루는 나를 불러서 “네가 한번 던져봐라”하시기에 던져봤지.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내가 생각해도 그때 공이 빨랐어. ‘자연 슈트’도 막 들어가는 거야.
1949년 청룡기대회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주서중과 경남중이 벌인 결승전은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명승부입니다.
1천 명 가운데 95%가 경남중이 대회 3연속 우승을 할 거라고 예상했어. 그 친구들은 야구를 할 줄 알았거든. 아무래도 부산이 일본하고 가까우니까 일찍 야구에 눈을 뜨지 않았겠나. 광주서중이야 다 촌놈들이었지(웃음). 당시 경남중 3번 타자가 장태영이었어. 투수인데도 방망이가 좋았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서로 삼진을 3번씩 먹였던 게 기억나는구먼.
8회까지 0－0의 팽팽한 투수전을 벌였습니다.
나로서는 경남중의 강타선을 8회까지 막은 게 대단한 것이었네.
그런데 9회초 경남중이 선취점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9회말 광주서중이 2사까지 몰려 패배가 확실해 보였는데요.
맞아. 우리 학교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거든. 주자 없이 2사였으니까 당연한 게지. 그런데 우리가 말 공격인 게 다행이었어. 우리 2번 타자가 이완재였을 거야. 이 친구가 친 공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경남중 2루수(정상규)가 멋 부린다고 언더핸드로 1루수에게 송구했는데 그게 뒤로 빠지면서 이완재가 2루까지 달려갔지 뭐야.
다음 타자가 선생님이었는데요.
그렇지. 내가 전 타석에서 3번이나 장태영한테 삼진을 먹지 않았나. 이번에도 어렵구나 싶었는데 심선생님이 부르시는 거야. “양중아, 눈 감고 쳐라. 네 기분 가는 데로 쳐라.” “네, 알았습니다” 했지. 그때 마운드에서 장태영이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투스트라이크 원볼로 내가 몰렸어. 그런데 말이야. 그냥 맞춘다고 맞췄는데 그게 안타가 된 거야.
직접 동점을 만드셨군요.
일어났던 관중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지. 사실 말이지. 실력으로 치면 우리가 경남중한테 10분의 1도 안 됐어. 하지만 야구는 상대를 얕잡아 보면 안 되거든. 경남중 선수들이 리드를 하다가 나한테 견제구로 3번이나 죽었다네. 촌놈이라고 깔본 게지.
연장 11회까지 갔는데요.
연장에 들어가니까 경남중 애들이 숨이 죽더라고. 기세가 떨어졌어. ‘옳지. 너그들 딱 걸렸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장태영이 처음으로 볼넷을 허용하더군. 심선생님이 문택영한테 보내기번트 사인을 냈는데 장태영 공이 어찌나 빠른지.
번트 실수라도 했나요.
우리는 그때까지 야구를 잘 몰랐어. 번트 댈 줄도 몰랐지만 번트에 대비한 전진수비가 뭔지도 몰랐거든. 그런데 경남중이 전진수비를 하니까 문택영이 깜짝 놀랐지. 번트 댈 때 배트를 뒤로 빼면서 ‘톡’ 대야 하는데 그냥 번트 자세로 공을 배트 심에다 ‘쿵’하고 맞춘 거야. 공이 3루수 키를 넘어 좌익수 있는 데까지 날아가는 게야. 그런데 재미난 게 말이지. 1루 주자가 3루까지 냅다 달렸는데 좌익수가 긴장했는지 공을 3루에 던진다고 던진 게 이번에도 3루수 키를 넘기고 만 거야. 그때 1루 주자는 송구에 죽는 줄 알고 3루에 넘어져 있었거든. 그걸 보고 우리가 “야, 뭐해. 일어나서 빨리 달려” 했어.
결국 홈에서 세이프가 됐나요.
얼떨결에 세이프가 됐지. 참, 그때 세이프가 됐을 때 우리를 응원하는 관중은 기뻐서 울고 우리는 정신없어서 울고. 재경 선배들이 이겨 놓고 보니까 응원가는 불러야겠는데 마땅한 응원가가 없는 거야. 부를 거라곤 일제시대 때 교가밖에 없었거든.
교가를 부르던가요.
(손을 저으며)아니네. 교가를 일본어로 부르기는 그렇고 하니까 ‘라라~~라라’하고 불렀지. 아직도 그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
우승기념 회식이라도 하셨을 듯합니다. 그때가 이맘때인 6월이었네. 재경 선배들이 더우니까 밀짚 모자를 쓰고 나왔거든. 그런데 난데없이 우리가 우승하니까 밀짚 모자로 ‘후배들 저녁이나 먹이자’면서 돈을 걷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모아준 돈으로 쌀밥 먹은 게 회식이라면 회식이었지.
우승 퍼레이드는 멋지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서민호 씨라고 조선전업 사장님이 계셨네. 그 분이 군용트럭 같은 차를 한 대 내주셨어. 우리 팀 선수들이 우승기를 들고 거기에 올라 타 동대문에서 을지로, 서대문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그랬다고. ‘저 미친 놈들 뭐 하는 거야.’(웃음) 광주로 돌아갔을 때 재학생 700명이 송정리역에 모두 나와서 우리를 환영했지.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6남매 가운데 장남이라네. (옆에 있던 아내 정희연 여사가 “시아버지가 상공부에 다니던 공무원으로 남편의 어린 시절은 매우 유복했다”고 말했다)집사람 말대로 유년 때는 집안이 좋았어. 그 당시 광주 중앙유치원에 다녔다면 말 다한 거지. 그런데 아버님이 사업실패로 매일 술만 드시기 시작한 거야. 그때부터 집안 살림이 어려웠지. 내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가족이 힘들었어.
그때 광주지역에서 선생님을 가리켜 ‘나무꾼 투수’라고 불렀다는데요.
산에 가서 나무를 많이 베었어. 소나무 껍질을 까면 기름이 나오는데 그걸 기름 대신 썼어. 내가 산에 오를 때 늘 방망이를 들고 올라가서 그걸로 나무를 ‘펑펑’ 쳐서 쓰러뜨렸다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 같아.
야구에도 도움이 됐을 법 한데요.
그럼. 도끼질이 검도할 때처럼 손목을 굉장히 좋아지게 하거든. 투수는 손목힘이 생명 아닌가. 거기다 매일같이 산에 오르니 하체가 좋아질 수밖에. 나중에 실업팀에 갔을 때 동료들이랑 허벅지 둘레로 빵내기를 하면 내가 늘 이겼다고. 아마 그때 허벅지 사이즈가 23인치였을 거야.
다음해 광주서중을 졸업하셨습니다. 서울상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라이벌 장태영 선생은 서울상대에 입학하셨는데 선생님께서는 금융조합에 입단하셨습니다.
대학 욕심도 있었지. 내가 그래도 광주서중 출신 아닌가. 그런데 가난이 말도 못했거든. 내 꿈이 뭐였는지 아나. 쌀 뒤주를 가득 채우는 게 젊었을 때 소원이었다고. 마침 금융조합 감독이던 김영조 선생과 광주서중 감독이던 심양섭 선생님이 친분이 있으셔서 자연스럽게 금융조합에 가게 됐어(김양중은 1949년 12월 31일자로 금융조합 전남지부 양곡과 서기보로 발령받는다).
김영조 선생 하면 한국야구에 큰 획을 남기신 분 아닙니까.
그 양반 인상이 부리부리했다고. 엄하기는 말도 못했어. 포지션은 포수였는데 입단하고 나니까 이거 광주서중 때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거야. 김영조 씨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투수는 공 던지는 데만 신경 써야지 배트를 휘두를 욕심내면 절대 안 된다. 하루 300개씩 투구 연습을 해라.”
힘드셨을 듯합니다.
힘든 건 둘째 치고 화가 나더라고. 방망이도 못 치게 하고 맨날 뜀박질만 시키니까 화가 나지 안 났겠어(웃음).
그런 김선생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시려고 짐까지 싼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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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실업대회에서 우수선수상을 휩쓰셨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을 휩쓴 셈인데요. 선생님만의 투구 비법이라도 있으셨는지요.
아무래도 공이 빨랐지(원로 야구인들은 당시 김양중의 직구가 시속 150km를 넘었다고 말한다). 내가 직구를 던지면 이게 직구인데도 슈트처럼 아래로 ‘휙’하고 꺾였다가 또 ‘획’하고 공중으로 뜨곤 했어. 그걸 던지려고 던진 게 아니었는데도 포수들이나 타자들이 그렇게 공이 간다고 하더라고. 내가 투수할 때만 해도 투수들이 변화구는 거의 던지지 않았네. 그냥 오직 직구만 던졌어. 드롭이나 커브는 던질 줄 알았지만 거의 던지지 않았어.
변화구 없이 직구로만 타자와 승부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청룡기 때 장태영과 연장 11회까지 갈 때도 우리 둘 다 직구만 던졌어. 우리 때는 어린 투수들이 변화구 던지면 근육을 반대로 틀어야 하니까 어깨가 빨리 상할 수 있다고 해서 지도자들이 못 던지게 했거든.
1955년 육군에 입대하시면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하셨는데요.
이거 재미난 이야기니까 잘 듣게. 내가 가정 빈곤으로 군입대를 연기하고 있는 상태였어. 거기다 1955년 1월 3일 결혼도 해서 군대 갈 정신이 없었다네. 그런데 마침 그때 육군 야구팀이 1개 사단 규모도 안 되는 공군 야구팀한테 진 거야. 육군 별들께서 난리가 났지. “똑바로 야구 못 하냐”고 역정을 내니까 그때 육군 야구부에 근무하던 이용일(한국야구위원회 초대 사무총장) 부관이 나를 잡으러 온 거야.
어디로 끌려 가셨습니까.
돈암동에 있는 이용일 씨 댁으로 끌려갔지. 그런데 가보니까 장태영, 박현식이 이미 와 있는 거야. 육군에서 나한테 그러더라고. “딱 2년만 도와달라.” (그때 정여사가 “그런데 이 사람이 육군에서 도망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사실이신가요.
사연이 있었어. 그때 공군에는 경남중 출신들이 많았거든. 육군이 질 수밖에 없지. 허곤이란 양반이 공군 중령이면서 야구단 감독을 맡고 계셨는데 그 양반이 “네가 오면 공군 장교를 시켜주겠다. 뭐든 다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어. 그 당시야 군번 먼저 내준 사람이 임자였던 시절이니까 내가 가면 육군보다 먼저 군번을 달아줄 요량이었지. 그런데 헌병대에서 그 사실을 알고 내가 도망가자 금융조합 회장실에 쫓아 와서 난리를 친 거야. 회장님이 불러서 신신당부 하시더라고. “아그야, 기냥 육군 가니라.”
육군에서도 투수셨지요.
박현식, 장태영 등 쟁쟁한 투수들이 있었지만 내가 들어오고 박현식은 좌익수, 장태영은 중견수로 나갔어. 한마디로 육군을 김양중이가 지키게 된 거야(웃음). 우리가 주로 상대한 팀이 미8군이라고. 왜냐하면 걔네들이랑 야구를 해야 장비를 얻을 수 있었거든. 8군 리그가 6~8월에 했는데 우리가 아마 2번 우승했을 거야.
미8군에 메이저리그 출신 병사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우린 그런 거 몰라. 그냥 던지는 거지. 이런 일이 있었네. 내가 오늘 던지면 내일도 던지고 모레도 던지고 하니까 하루는 미군 감독이 묻는 거야. “아니 당신 팔은 고무로 만들었느냐. 왜 매일같이 던지냐.” 그때 붙여진 별명이 ‘철완’이야.
1958년 10월 2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경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첫 만남이었는데요.
그때 우리는 메이저리그를 처음 만났네. 그전이야 메이저리그가 뭐 하는 동네인지도 몰랐어. 그런데 이 놈들이 배팅 연습을 하는데 기가 차더라고. 10개를 치면 7개가 담장을 넘어가는 거야. 그런데 작전을 잘못 짰어. 오윤환 씨가 대표팀 감독이었는데 “저 놈들은 슬로 볼 투수에 분명 약할 테니까 배용섭(대한통운) 네가 나가 본때를 보여줘라”고 한 거야.
작전대로 되던가요.
아니지. 치면 다 안타야. 노아웃에 만루가 되니까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지. 오감독님이 “양중아, 빨라 나가서 네가 수습해라”하시더라고. 정신없이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은 것 같아. 나중에 2점인가 주긴 했지만 잘 막았지 뭐.
6회에 당대 최고의 타자 스탠 뮤지얼과 상대해 삼진을 잡으셨습니다.
그게 누군지도 몰랐어. 나중에야 알았지. 1997년에 뮤지얼이 한국을 찾아왔을 때 나를 찾더라고. 롯데호텔에 묵고 있는 뮤지얼을 찾아가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 뮤지얼이란 친구가 그러데. “당신 그때 던진 공 정말 무서웠다”고.
장태영 씨와는 줄곧 라이벌이었습니다. 특히 두 분 모두 감독이 되신 후 라이벌 의식이 강해진 듯합니다.
다 친했어. 부인네들끼리 ‘육구회’라고 친목계도 만들고 했어.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기업은행 감독이 되고 장태영이 상업은행 감독이 되면서 라이벌 의식이 생겼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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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성근은 어떤 선수였습니까.
일화가 있네. 한 번은 서대문 로타리에서 고양군 원당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거리가 20km 가까이 됐어. 그런데 김성근이 갑자기 “먼저 가십시오”하면서 자기만 뛰어서 가는 거야. 굉장한 노력파인데다 무척 성실한 선수였어. 그때 기업은행 투수를 가리켜 ‘좌 성근, 우 관수’라고 불렀지.
1967년 돌연 야구계에서 은퇴하시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새 삶을 사셨는데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 새 삶을 살고 싶었던 게지. 집사람 고생이 말도 못했거든. 이 사람이 지금도 그런다고. “당신이 문만 두들겨도 그날 경기를 이겼는지 졌는지 알았다”고 말이야. 당시 감독이 은행 대리직급이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은행 지점장이 될 수 있었네. 1986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은행원으로 잘 살았어.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지 않았나요.
잘 아는구먼. 부산 롯데는 장태영, 인천 삼미는 박현식, 나는 광주 해태를 맡아줬으면 했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실은 해태가 아니라 금호가 창단할 뻔 했거든. 금호 박성용이 나랑 동기동창이어서 “네가 꼭 맡아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 그런데 이미 야구계를 떠난 몸이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동대문운동장이 헐립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그렇지 않아도 올해 청룡기 때 동대문운동장에 갔다고. 귀빈실에 앉아 있는데 이거 말할 사람이 없는 거야. 친구들은 나 두고 먼저 다 떠나고 연배가 한참 밑인 후배들만 있는데 거기나 나나 영 불편하잖아. 친구들 생각이 계속 나는 거야. 그런데 그때 창문으로 보니까 경남고가 경기를 하고 있지 않아. 경남고, 그 옛날 그 경남고 말일세.
혹시 시구 제의가 들어오면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젊은 야구팬들에게 한국야구사에도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전 박현식이 죽기 전에 그 무슨 구장이지.(기자가 문학구장이라고 하자)그래 그 구장에서 시구를 하는데 가슴이 아프더라고. 그 친구가 공을 던지는데 왼쪽 다리에 힘이 없다 보니까 공이 가지 않는 거야. 아마 그러다 3개월 있다 저세상으로 갔지. (눈을 감으며) 철완이면 포수한테까지 공이 가야 하지 않겠나. 철완이면.
김양중
1930년 9월 3일 전남 광주 출생
광주서중(현 광주제일고)-금련-육군-기업은행
1949년 제4회 청룡기 우수투수상
백구회 회장
SPORTS2.0 제 57호(발행일 06월 25일) 기사
작년 박동희 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SK가 의미있는 시구자를 모셨네요. 인천 야구의 대부 고 박현식 감독님에 이어 50년대의 전설적인 투수 김양중 씨를 모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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