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여자야구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사진=스포츠춘추 조현득 작가)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이 잠정 유보된 가운데 한국야구의 저변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6월 16일 국내 최초로 중학교 3학년까지 뛰는 주니어 리틀리그가 출범하데 이어 이번엔 역시 국내 최초로 여자야구리그가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7월 23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연맹 김을동 회장, 이한수 익산시장, LG전자 경영지원부문장 이영하 사장이 참석해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개최를 위한 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는 LG전자와 익산시가 주최하고, 연맹과 익산시 야구협회가 주관하는 전국여자야구대회로, 여자야구대회로서는 첫 대규모 스폰서 리그다. 연맹 박철호 이사는 “LG전자가 여자야구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고. 연맹은 대회 운영을 맡을 예정”이라며 “익산시는 국가대표 야구훈련장과 부대시설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여자야구리그 개최

여자야구선수가 홈을 향재 질주하는 장면(사진=나인빅스)

기존 여자야구대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1년에 5개 대회가 열렸다. 올해도 CMS기, 익산시장기, 계룡시장기, KBO 총재배, 연맹회장기가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대부분 협회나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대회다. CMS기는 협회나 지자체가 아닌 센트럴메디컬서비스(주)가 연맹과 공동주최하는 스폰서 대회이나 총 후원금이 3천만 원 정도다.

대회 규모도 작았다. 5개 대회 공히 토너먼트로 진행돼 2, 3주면 끝이 났다. 3, 4경기만 치르고 결승까지 오르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는 기존 여자야구대회와는 규모와 운영방식이 다르다. 먼저 규모다.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는 연맹에 등록된 28개 팀 5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연맹에 정식등록된 29개 팀 가운데 1팀을 제외한 전 팀이 참가하는 셈이다.

대회일정도 9월 1일부터 11월 25일까지 정규경기를 비롯 한·일전, 올스타전 등 총 56경기를 치르는 장기레이스로 진행될 계획이다. 지금껏 여자야구대회가 2달 이상 운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본에서도 3개월 가까운 장기레이스 대회는 매우 드물다.

장기레이스답게 대회운영방식도 색다르다. 연맹 박철호 이사는 “승자 토너먼트와 패자부활전을 결합한 경기방식을 적용해 승자 토너먼트 우승팀과 패자부활전 우승팀이 겨뤄 최종 우승자를 가릴 것”이라며 “많아야 3, 4경기 만에 결승까지 오르는 다른 대회와 달리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는 패자부활전을 거쳐 결승까지 오를 시 최소 7경기 이상을 치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장기레이스가 가능한 이유는 LG전자의 전폭적인 후원 때문이다. LG전자는 이번 대회 개최를 위해 기존 여자대회 후원금보다 20배나 많은 돈을 내놓기로 했다. 아마추어대회, 그것도 여자야구처럼 비인기 종목에 기업이 이처럼 많은 스폰서비를 쾌척한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흥미로운 건 LG전자가 이처럼 대규모 지원을 하면서도 별다른 내색이나 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여자야구 발전에 힘을 보태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할 뿐 정확한 후원금을 공개하는 건 꺼렸다. 다수 대기업이 비인기 종목에 투자하면서 대대적 홍보를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태도였다. 이유가 뭘까.

연맹 관계자는 “LG전자 측이 ‘여자야구 지원의 순수한 의도만 받아줬으면 좋겠다’며 ‘떠들썩한 홍보는 사양한다’는 뜻을 전했다”며 “아마도 LG전자 대표 구본준 부회장의 뜻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고 귀띔했다.

LG 구본준 부회장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하지 마라.“

국가대표 여자야구선수의 투구장면(사진=스포츠춘추 조현득 작가)

구 부회장의 야구사랑은 잘 알려졌다. LG 트윈스의 구단주이기도 한 구 부회장은 61살의 나이에도 직접 사회인야구선수로 뛴다. 지금도 마운드에 오르면 웬만한 젊은 타자들을 쉽게 제압한다.

구 부회장이 여자야구와 인연을 맺은 건 오래됐다. 구 부회장은 모교인 경남고 OB 야구팀에서 뛰며 여자야구팀과 1년에 한 번씩 친선경기를 벌였다. 지난 4월에도 경남고 OB 야구팀 소속으로 여자야구 수도권 연합팀과 경기를 치렀다. 경기가 끝나고서 구 부회장은 여자야구선수들과 식사자리에서 “한국여자야구의 현황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때 여자야구선수들은 “팀은 늘어나는데, 아직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며 “외부 후원이 절실한 상태”라고 답했다. 당시 자리에 배석했던 ‘나인빅스’팀 최수정 선수는 “구 부회장님이 여자야구선수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으셨다”며 “여자야구를 팍팍 밀어달란다’는 선수들의 말에 구 부회장님께서 밝은 표정으로 ‘한국야구발전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다’고 화답했다”고 회상했다.

구 부회장이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구 부회장은 실무진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지원이 여자야구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지 살펴보도록 지시했다. 덧붙여 ‘사회적 공헌과 한국야구발전이란 대의가 훼손되지 않고, 후원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 규모를 공표하지 말고 조용히 지원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LG전자와 연맹은 6차례의 회동 끝에 ‘전국 규모의 여자야구대회 신설로 여자야구붐을 조성하자’는데 합의했다.

LG전자의 파격적인 지원으로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는 국내 최대 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연맹 박철호 이사는 “기존 대회는 대회 전 기간 동안 팀당 50만 원의 출전비만 지원했지만, 이번 대회는 경기당 50만 원의 출전비를 참가팀에게 지급한다”며 “7경기를 치러 결승전에 오르는 팀은 총 350만 원의 출전비를 지원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다 모든 참가팀에겐 포수장비 일체가 지원될 예정이라고.

중요한 건 LG전자의 후원이 단발이 아니라는 점이다. LG전자는 최소 3년간 여자야구대회를 지원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프로야구처럼 여자야구가 정규리그로 발전하길 바란다”며 “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가 그 출발점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는 MBC SPORTS+로 중계될 예정이다. MBC SPORTS+ 관계자는 “전체 56경기 가운데 20경기를 중계할 방침”이라며 “LG전자, 연맹과 힘을 합쳐 여자야구 붐 조성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자야구가 간간이 중계된 적은 있으나 한해 20경기가 중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자야구가 발전한 일본에서도 지역 케이블채널을 통해 부정기적으로 녹화 중계되거나 스포츠전문채널에서 하이라이트를 방송했을 뿐 한해 20경기 이상 중계한 건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여자야구선수 최수정 씨는 “폭발적인 야구 인기와 함께 ‘보는 야구’에서 ‘직접 하는 야구’를 즐기려는 여성이 상당수나, 아직 홍보부족으로 ‘보는 야구’에 만족하는 여성이 많다”며 “정기적인 TV 중계를 통해 꾸준히 여자야구를 알린다면 선수층이 두터워지고, 이윽고 경기력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G전자의 ‘통 큰’ 후원과 연맹의 노력 그리고 방송사의 합세로 한국여자야구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