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이고, 격세지감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물론 대다수 야구인들은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경쟁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10구단 창단을 두고 수원시-KT와 전북-부영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야구단 창단을 위해 경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프로야구에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KT는 대표적인 통신 대기업이다. 이런 대기업이 야구단 창단에 뛰어들자 프로야구의 가치와 위상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며 야구계는 반색하고 있다. 재계서열 30위인 부영그룹도 "유치에 성공하면 돈에 구애받지 않고 투자를 하겠다"며 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프로야구단은 천덕꾸러기였다. 2007년 말 현대가 해체를 앞두고 있을 때 마땅한 인수기업이 없어 벼랑에 몰렸던 프로야구다.

당시 KT가 현대를 인수하기 위해 적극 나섰는데, 사외이사들을 설득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현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우여곡절 끝에 모기업 없이 새로운 실험에 나선 넥센이 탄생했다.

일종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야구단을 운영했던 대기업의 흥미가 떨어진 것은 현대 뿐만 아니었다.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시즌 연속 꼴찌를 기록했던 롯데는 커다란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자이언츠의 모기업 롯데그룹이 야구단의 부진이 계속되자 팀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처럼 프로야구는 대기업의 눈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지금 KT같은 대기업과 부영그룹이 서로 야구단을 유치하겠다며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프로야구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선수와 지도자, 구단 관계자, 팬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프로야구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KT가 10구단 창단에 나선 이유에서부터 잘 알 수 있다.

이 석채 KT 회장은 지난달 6일 경기도-수원시와 협력해 10구단 창단을 선언하는 자리에 전격적으로 등장했다. 사전에 예고가 없었던 것으로 KT의 10구단 창단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회장의 강한 추진력을 입증하기 위해 준비한 '깜짝쇼'였다.

당시 이 회장은 창단선언 기자회견에서 "KT가 야구단을 운영하려고 시도한 것이 두어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내부의 반대에 부딪혔다"며 아픈 과거를 추억처럼 언급했다.

그 토록 심했던 내부 반발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KT 관계자는 "이제는 국민 스포츠로 우뚝 선 프로야구가 길을 열어줬다"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사외이사와 노조 등을 설득하기 위해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프로야구 호감도가 조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5년 전 현대 인수에 실패할 때만 해도 사외이사의 승낙을 받지 못했다. KBO에 지급해야 하는 창단 가입금과 야구발전기금을 투자할 만큼 프로야구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 실 그럴 만했다. KT가 현대 인수를 시도했던 2007년 프로야구 총관중은 410만4429명이었다. 2005년에 338만명을 기록했다가 2006년 304만명으로 추락한 뒤 반등에 성공한 시즌이었다. 그렇다고 프로야구가 다시 흥행기를 맞았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프로야구는 2008년부터 초고속 성장을 했다. 2008년 525만명으로 역대 최대 증가량(115만명)을 기록한데 이어 1995년(540만명)에 딱 한 번 기록했던 500만 시대를 다시 열었다.

이후 프로야구는 신바람을 냈다. 지난해 600만명을 넘어섰고, 올시즌 700만명 시대를 맞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호재가 프로야구 흥행에 힘을 불어넣었다.

KT는 이석채 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이 야구단 창단 방침을 나타내자 노동조합과 이사회가 박수로 화답했다고 한다. KT 관계자는 "이사회는 물론 노조까지 나서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노조는 이른바 '돈 안 되는' 스포츠단 운영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달라진 프로야구의 위상이 이런 편견들을 날려버린 것이다.

묵 묵히 사업성장과 사회공헌에 몰두하던 부영그룹이 10구단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KT에 맞서 당당히 경쟁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지명도면에서는 KT에 비해 떨어지지만 야구단 창단에 대한 의욕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1226n12626?mid=s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