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야구를 별로 안보던 시절이 많이 있고 대충의 기억과 검색에 의해서 쓰므로 디테일은 많이 틀릴 수 있습니다. 

원래 한국 리그에서 투수의 혹사, 체계적 트레이닝과 재활시스템의 부재, 체력훈련의 경시 등으로 선수수명이 짧았고 FA 요건은 빡셌으니 FA는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아니었죠. 하지만 현대의 돌풍 이후로 튼튼한 자금력을 가진 삼성과 엘지가 FA시장에 적극 나서면서 FA 총액이 상승곡선을 긋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대 유니콘스는 왕자의 난 이후 모그룹의 몰락을 겪으면서 01년부터 현대그룹에서 지원이 끊기고 시장에서 물러납니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여력은 없었지만, '현대' 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범현대가의 지원으로 현상유지는 가능했습니다. 이중 중심 역할을 했던 현대기아차 그룹의 경우 매년 7~80억 정도를 06년까지 지원했다고 하는군요.  

재계 2위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 그룹이 2000년대 초중반 타이거즈 지원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데에는 이같은 사정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그래도 프로야구 침체기에 홍보효과도 딸리는데 비용은 사실상 두 개 구단을 굴린 것과 다름이 없는 시기였으니까요. 이 기간이 정재공 전 단장이 타이거즈를 이끌던 시기인데, 단장 개인적으로는 구단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인물입니다만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내지는 못했고 그렇다고 육성형 스몰마켓팀 체제를 정착시키지도 못해서 결국 타이거즈의 암흑기를 함께하게 되었죠..

거기에다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이 FA 영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결과적으로 3대 큰손 삼성, 현대(차), 엘지 중 엘지만이 시장에 남아있는 상황이 됩니다. 한동안 엘지가 홀로 FA 시장을 주도하게 되죠.

여기에 김성근 전 SK 감독 특유의 조련능력과 화수분 야구로 일컬어지는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의 육성시스템이 히트하면서, SK 삼성 두산의 3강이 모두 거액영입보다 육성에 초점을 맞추며 성적까지 거두는 형태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때부터 팬들의 시선 역시, FA 시장에서 돈을 많이 쓰는 팀이 강한 팀이 아니라 강한 2군 육성체계와 과학적 재활체계를 갖춘 팀이 강팀이다 라는 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다시 FA 시장이 불붙고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프로야구가 돈이 된다는 것이겠죠. 프로야구 인기가 불붙으면서 대형 선수에 (기존에 생각했던 적정가보다) 10~20억 더 쓰는 게 손해가 아니다 라는 인식.

둘째로, 우리도 육성 시스템 갖춰보려고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 (육성시스템 재활시스템도 돈 많이 들고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데 공으로 먹으려고 들어봐야)

셋째로 넥센이 일방적 셀링을 중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냄 (FA보다 싼값에 더 젊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데 왜 FA를 사들임? 이라는 분위기였는데 이택근의 50억 한방이라는 강한 반전이 일었죠.)

넷째 현대차그룹의 귀환. 현대차그룹이 적극적 투자를 약속한 것은 09년 우승효과를 보고 감동해서라는 게 정설이지만, 어차피 스포츠계의 큰손인 재계 2위그룹이 프로야구붐을 맞아 야구단을 약체로 방치할 리는 없었고 쓸놈쓸이었죠. 유니콘스에 대한 지출 중단과 프로야구 부흥에 따라 타이거즈에 대한 지출 증가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봅니다.

FA 및 현금성 영입에 관한 각 구단의 태도 (00년대 후반 이후)

공격적 (자팀 선수는 거의 다 방어해내며, 기회가 있을 경우 거액 지출을 감수한다)

기아 삼성 엘지

 

실용적 (가능하면 방어하며, 자팀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적절한 매물을 구입한다)

SK 두산 롯데

방어적 (조건이 맞는 한 방어하며, 꼭 필요한 매물의 구입을 시도한다)

한화 넥센

앞으로의 예상은

SK는 충분히 공격적 태도를 갖출 수 있는 사이즈의 모기업을 가지고 있지요. 그동안 김성근 감독이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행보를 취할 필요가 없었으나, 앞으로는 약화중인 전력추세를 반전시키고 경쟁기업 KT의 진입도 의식해야 하므로 공격적 태도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KT는 당연히 전력안정화 시기까지 공격적 행보를 하겠죠. 사이즈도 되고.

롯데 역시 현금보유량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모기업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동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았고 연고지 영역의 축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최근 영입건들에서 보듯 성향이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두산은 현재 시스템이 잘 굴러가고 있고, 굳이 변경할 필요는 느끼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화는 류현진의 해외진출과 팀의 전력에 대한 고민 등이 맞물려서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아직 결실은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에 두칸씩 예상변경을 해서 '공격적' 항목에 위치시키기는 좀 어렵습니다만...

넥센은 비록 이택근 계약이라는 큰 건을 치르긴 했지만 구단의 운영목표 자체를 자력운영 가능한 구단으로 잡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엔씨의 경우 초반에 필요한 전력감이 나오면 누구든 배팅을 하겠지만, 이미 구단창설과 관련해 많은 투자금액이 들어간 상태이고, 대형 매물을 놓고 '큰손'들과 경쟁하여 한도 이상의 거액배팅을 질러댈 수준의 투자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당장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닌 이상 사실 거액FA는 그리 좋은 전력증강방법이 아니죠.

결론적 예상

공격적

기아 삼성 엘지 SK 롯데 KT

실용적

두산 한화 NC

방어적

넥센

따지고 보면 그동안 FA 계약 규모 증가는 물가상승률과 스포츠시장의 성장 및 스포츠 선수들의 연봉 평균 증가추세에 오히려 못미친 경향이 있습니다. 04년 60억 계약기록이 아직도 갱신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요. (물론 그만한 매물이 없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현재 FA 시장은 과열이나 거품이 아니라, 현실화 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전제조건은 현재 프로야구 시장의 활황이 지속된다 입니다.) 각 구단들이 포지션을 한 단계씩 적극적인 방향으로 올리고 있는 중이라고 보고요. 선수생명 연장과 맞물려 당분간 FA 계약은 기존의 90년대 말~00년대 초 전례를 가지고 거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에서 새로운 평형을 찾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