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켜고 채널을 야구 경기로 맞춰놓습니다.

그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씻고, 밥을 먹고, 집안 정리를 하면서, 그렇게, 배경음악처럼 흘려 듣거나, 오며가며 슬쩍슬쩍 경기를 봅니다.

어떤 날은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가서, 거의 1회 말부터 경기를 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운동을 갔다가 들어가면 후반부만 보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약속으로 늦어져서 아예 경기를 보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야구 시즌의 제 일상은 데충 이렇습니다.  

개막전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드디어 야구가 시작되었다는 기쁨과 흥분에 경기 내용은 기억에 나지도 않을 만큼 많은 맥주를 마시고 취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더이상 야구를 보기가 힘이 듭니다.

어제 이래저래 늦게 들어가서, 다른 일 좀 하다가, 야구를 틀어보니 10회가 시작되었더라고요.

점수를 못냈고, 10회말 공격이 시작되면서, 박정진 선수가 나왔고, 손아섭 선수는 지칠대로 지친 투수의 초구를 쳐서, 펜스를 맞추는 3루타를 만들어냈지요. 수비 실책까지 더해져서 인사이드 파크 홈런 되는 줄 알았습니다. 10회말이라 롯데가 무리를 안한거지, 다른때 같으면 되고도 남았을..

그리고 뒤에 두 타자를 거르고, 투수가 바뀌고, 송창식이 나오네요, 무사만루에 송창식이라,,

감독의 머리 속에 들어가지 못해서,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감독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바꿔야 하는 상황인데, 나올 수 있는 투수가 송창식 밖에 없었겠죠.

이것도 동의할 수 없는데, 지더라도 그냥 박정진 선수가 마무리하게 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좋지 않은지 벌겋게 상기되어 부어있는 얼굴과,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막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눈빛을 보이면서

마지막 강민호 선수에게 스트레이트 볼 네개 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롭게 겨우 겨우 서있던 그 5분.

더이상 잔인할 수 없었네요. 최악이었습니다.

승리를 필요로 하고, 원하는 마음이야 감독이나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그 마음이 누가 더 크다 잴 수 없을 만큼 같을 겁니다.

그런데 1승과, 그 1승이 연패를 끊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1승이라고 해도, 승리와 선수들 중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마음은

아쉽게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무사 만루를 막지못할 경우, 그 선수가 받을 충격과,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누가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 있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감독의 의도가 그 위기를 스스로 넘기면서 지난 주의 절망을 이겨내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고 해도,

중심 타선에서의 무사 만루, 그리고 말 공격, 그리고 선수 스스로 떨어진 자신의 구위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선수를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마운드에 세우는 것은 너무너무 잔인한 행동입니다.

덕아웃에서의 선수들의 표정과, 경직된 분위기를 보아하니, 더 이상, 이 팀은 제가 20여년 보던 그 팀이 아니었고,

쉽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왜 경기를 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선수들을 봐야 하나요? 지더라도 이기더라도 즐겁게, 말 그대로,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보고 싶을 뿐인데.

이러려고 야구 개막을 기다려온 것은 아니었는데 어쩜 이러나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