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을 취재하고 있는 시간이 쌓여 갈수록 중식 레스토랑의 주방과 공통점을 많이 발견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역할과 책임 그리고 시스템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중식 레스토랑은 총주방장의 관리 속에 칼판장과 불판장 그리고 면장이라는 포지션이 존재한다.

먼저 칼판장은 재료를 준비한다. 불판장은 최종적으로 요리를 완성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식당 쉐프는 중화 팬인 웍을 강한 화염 속에서 흔들며 요리를 완성하는 불판장이다. 그러나 요리의 시작을 책임지고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고 그 구성비율을 결정하는 칼판장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칼판장과 불판장은 미묘한 선의의 경쟁구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면장은 면을 뽑는 역할로 칼판장, 불판장에 비해 주방 안에서 서열이 뒤진다.

 

재료에 대해 조예가 깊은 칼판장 출신이 경영적 감각이 오너 쉐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기 스타인 이연복 쉐프, 세계적인 중식 요리사로 꼽히는 여경래 쉐프가 모두 칼판장 출신이다.

중식 레스토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칼판장과 불판장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조리 기술이 뛰어나도 재료가 부실하고 그 섞임의 비율이 맞지 않으면 맛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재료가 완벽해도 불과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면 형편없는 중국요리가 나온다.

 

야구칼럼에서 중식당에 대해 이처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칼판장과 불판장의 역할이 각각 야구단의 단장, 감독 혹은 프런트와 현장 코칭스태프와 공통점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여기 ‘마법성’이라는 신장개업 중식당이 있다. 1년간의 준비를 거쳐 2015년 문을 열었다. 주위에는 3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한 집들이 있다. 최근 몇 해 수 백억 원을 쏟아 부어 투자하는 곳도 있고 규모는 작지만 확실한 시그니처 메뉴로 성공한 집도 있다. 2년 먼저 개업한 곳은 화끈한 불맛으로 1~2위를 다툰다. 마법성은 개업과 함께 파리만 날리며 큰 위기에 처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고 올해 많은 기대 속에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초반 반짝 했던 성적은 '아차'하는 사이 다시 최하위다. 무엇이 문제일까. 칼판장과 불판장 중 어느 쪽에 책임이 클까. 그리고 이 곳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희망은 있을까.

 

11일 kt는 7연패를 당했다. 4할 승률은 무너졌다. 아무리 뛰어난 불판장이라고 해도 재료가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 kt는 지난 2년간의 황금 찬스에서 소극적인 투자를 했다. 1군 데뷔를 앞두고 구단 사장과 단장이 갑자기 교체되는 참극도 있었다.

 

KBO리그 감독은 메이저리그 사령탑과 다르고 달라야 한다. 선수도 직접 키워내야 하고 트레이드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구단의 적극적인 의지와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지난겨울 FA시장, 조범현 감독은 A구단 B선수를 원했다. B선수도 내심 kt행을 바랐다. 그러나 구단의 의사결정은 매우 늦었다. 초조해진 선수는 결국 kt를 기다리지 못했다.

치밀하게 FA전략을 수립해 2014년 겨울 우선협상시간 종료 직후 손시헌과 이종욱의 FA계약을 발표한 NC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NC는 지난겨울에도 모른 정보망을 총동원해 박석민이 삼성과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 직후 극도의 보안 속에 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박석민을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 냈다. 90억원이 투입된 프로젝트 이었지만 준비기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결정은 빨랐다.

조범현 감독은 지난해 마무리 훈련을 전북 익산에서 진행하며 스카우트 팀이 가져온 외국인 선수 영상을 보다가 한 투수를 주목했다. “굉장히 뛰어난 투수 같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200만 달러에 가까운 몸값을 요구하고 있어 힘들 것 같다”였다. 이 투수는 11승 3패를 기록하고 있는 헥터 노에시(KIA)다.

 

kt는 삼성과 LG, KIA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외국인 선수 전문가들이 있지만 타고투저가 극심한 KBO리그에서 생존할 수 있는 투수 영입에 쩔쩔매고 있다. 2년 연속 교체 카드 2장을 모두 투수에게 썼다.

 

교체에 따른 추가 비용을 생각하면 더 아쉬움이 크다. NC는 2013년부터 에릭 해커와 찰리 쉬렉이라는 외국인 선수 원투 펀치를 보유하면서 안정적으로 이재학 등 선발 자원을 육성할 수 있었다.

 

kt는 올 시즌 검증된 외국인 타자 댄 블랙까지 포기하면서 외국인 투수 3명을 선택한 것은 NC 전략을 벤치마킹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1987년 빙그레 108경기에서 47승 51패 4무 승률 0.454로 7개 팀 중 6위. 1992년 쌍방울 126경기에서 41승84패 승률 0.329로 8개 팀 중 8위. 2014년 NC 128경기 70승 57패 1무 승률 0.551로 9개 팀 중 3위. 1982년 원년을 제외화고 순수 창단 팀의 1군 2번째 시즌 성적이다.

 

1987년 빙그레는 매각을 앞둔 약체 청보가 있어 최하위를 면했다. NC가 3위에 오른 2014년은 최악의 상황을 맞으며 추락한 한화와 KIA가 있었다. kt는 중하위권 전력 평준화 속 1992년 쌍방울처럼 매우 어려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순수 창단 팀들은 모두 큰 어려움을 겪었다. NC 김경문 감독은 창단 사령탑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만큼 1군 안착은 힘겹다. 순수 창단 팀 1호인 빙그레는 86년 첫 해 3할에 미치지 못하는 0.290(108경기 31승 76패 1무) 승률로 최하위(7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3번째 시즌인 88년 김영덕 2대 감독이 팀을 2위로 이끌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한 빙그레는 이듬해인 89년 창단 4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올랐다.

빙그레는 1986년 10명, 1987년 3명, 1988년 3명을 1차 지명할 수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신인드래프트 제도는 신생 팀에게 큰 도움을 줬다. 당시 지명한 주요 선수는 송진우, 강석천, 한희민 등이다. 1987년에는 2차지명도 최하위 2팀은 2명을, 1988년에는 2팀이 3명씩을 먼저 지명하는 해택도 있었다. 1987년 2차 지명에서 뽑은 주인공이 이정훈이다. 연습생 출신 장종훈은 1987년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창단과 함께 트레이드한 유승안, 이강돈. 그리고 재일교포 고원부까지 가세해 팀의 단시간에 완성됐다.

 

두 번째 창단 팀 쌍방울은 1차지명이 2명에서 다시 1명까지 축소돼 빙그레 같은 행운이 없었다. 1군 데뷔 후 5시즌 동안 중·하위권을 해매다 1996년 2위로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대형 신인이 곧장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쌍방울은 김기태, 조규제, 김원형, 박경완이 큰 역할을 했다. 삼성에서 트레이드한 김실, 김현욱, 오봉옥. OB에서 건너온 김광림 등도 역할이 컸다.

외국인선수, FA 제도가 없었던 당시 빙그레와 쌍방울은 신인의 성장과 외부영입 선수의 조화가 이뤄지는 순간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큰 성장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NC는 나성범 등 신인 발굴에 FA영입과 외국인선수 선발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매우 단기간에 강팀의 반열에 올라섰다.

 

kt의 모델은 2010년대 창단한 NC일 수밖에 없다. 훌륭한 모범답안이다.kt는 김재윤, 장시환, 홍성용, 조무근, 심재윤, 배우열, 고영표 등 공을 들인 불펜 육성에서 큰 성과가 나오고 있다. 선발투수 주권도 큰 수확이다. 장성우, 김상현의 이탈이라는 큰 악제가 이어진 타선도 신구조화의 위력이 매섭다. 그러나 내년 당장 한명이 줄어드는 외국인 선수를 생각하면 선발진의 전력이 너무나 약하다.

 

다시 중식당으로 돌아가 보자. 투자에 인색한 칼판장은 불판장에게 민망한 듯 2%로 부족한 재료를 건네며 “당신은 최고의 중식 쉐프다. 믿는다”고 한다. 불판장은 온힘을 다해 보지만 최고의 요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불판장은 곧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이 주방에서 곧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야구에 마법은 없다.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성취를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과 영리하면서 과감한 투자 그리고 조화로운 역할 분담과 큰 밑그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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