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정지나] 페넌트레이스 장기전이 어느덧 막을 내리고 준PO, PO까지 치열한 전초전을 거쳐 한국시리즈가 조금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올해도 역시 시즌 내내 1위 독주의 길을 걸어온 SK가 우승을 차지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됐던 일일지도 모른다.

일년간 땀과 노력이 단 몇 경기로 뒤바뀐다는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바, 웬만하면 1위팀을 응원하는 편이다. 하지만 SK 우승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건 그들의 야구에 승리는 있을지 몰라도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시즌 중에도 윤길현의 입테러나 '출첵야구'(과다한 투수교체)가 한바탕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지만, 그 사건이 그리 놀랍지 않은 건 SK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SK는 원래 그런 구단이었으니까. 그동안 SK가 대외적으로 형성한 이미지는 그들 스스로도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과와 재발 방지로 당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도덕 불감증에서 비롯된 비슷한 문제는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대로 노출됐다. 1차전에서 발생한 정근우의 손테러다. 공이 빠진 사이, 수비수가 2루에서 3루로 뛰려던 주자의 발을 잡는 기막힌 일이 연출됐다.(무릎의 핏자국도 상당히 의심스런 상황이다)

원래 '발근우'로 악명 높은 정근우. 잘 치고 잘 달리는 것까진 좋지만 문제는 발을 잘 쓴다는 것이다. 앞서 2007년에도 이종욱은 정근우의 스파이크 테러로 인해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어 15일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스파이크로 동료를 찍을 생각을 하는지.

경기 외적으로도 SK는 인천 연고란 이유로 팀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삼미-청보-태평양을 마치 자기네들 전신인 양 구장에 버젓이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실질적인 조상인 쌍방울은 우주미아로 만들어놓고 남의 역사를 빼앗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다.

왜? 잠시나마 인천 연고였던 현대까지 자기네거라 우겨보지? 태평양까지는 자기 거고 현대는 아니고 대체 그런 원칙도 상식도 없는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한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돈 앞에, 기업 논리 앞에 양심이란 것이 있는 지조차 의심스럽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길 때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역사를 도둑맞은 쪽의 심정을 헤아리기나 하는걸까.

프로야구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승리라고 해서 다 같은 승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감동을 만들어내고 명승부를 만들어낼 때 경기는 더욱 빛이 난다. 이런 면에서 SK는 큰 실책을 하고 있다.

까놓고 말해 SK는 우승팀일지 모르나 비인기구단이다. SK의 승리가 소수의 자기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지언정 이기적인 구단 운영을 지속하는 한 경기가 주는 감동은 먼 일이 될 것이다. 우승을 많이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랑받는 야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로가 지향해야 할 점이 아닌가 한다.

SK 홈구장인 문학구장에 가보면 구장 시설도 그렇고 다양한 이벤트도 경기 외적인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SK가 지향하는 스포테인먼트의 장점은 계속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무리해서 남의 것을 빼앗거나 이익을 내기 위해 승리나 돈의 노예가 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쩔 수 없이 올해도 1위는 했다지만 승리만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감동없는 야구, 더이상 보고싶지 않다. 어쩔 수 없는 1위팀이 아닌, 축하받는 우승팀을 보고싶다.

정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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