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정회훈]

2006년 3월. 대한민국은 '야구의 나라'였다. 명실상부한 최강의 대표팀이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멕시코·미국을 차례로 격파하고 6전 전승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 4강 신화(비록 준결승에서 3번째 만난 일본에 패해 탈락했지만)를 이룩하자 온국민은 야구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이승엽의 홈런포, 이종범의 결승타, 박진만의 그림 같은 수비, 박찬호의 깔끔한 마무리 등 이야기 꽃은 시들 줄 몰랐다.

그러나 TV 화면에 잡힌 김인식 당시 대표팀 감독의 건강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황폐해져 갔다. 점퍼에 장갑을 끼고 더그아웃 앞 난간에 기대어 경기를 지휘한 그의 얼굴에는 검은 빛이 짙어졌고, 입술은 시퍼렇게 변색되어 갔다. 금의환향의 귀국 환영회 때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아예 공언을 했다.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건강상 무리"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2004년말 뇌경색 판정을 받고 꾸준히 재활로 일어선 김 감독이 WBC로 악화된 건강을 다시 찾는 데는 2~3개월이 걸렸다.

지난 5일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회는 "내년 3월에 열리는 제2회 WBC 대표팀 감독으로 김인식 한화 감독을 만장일치로 추대한다"고 발표했다. "그 동안 건강을 이유로 고사를 했지만 최근 많이 좋아져 수락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당초 기술위원회는 2008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인 김성근 SK 감독을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솔직히 체력에 자신이 없다"고 난색을 표하자, 김인식 감독으로 선회한 것이다. 10년전 신장암을 앓은 김성근 감독은 한쪽 신장이 없어 일반일들보다 쉽게 피로를 느낀다. 한국시리즈 및 아시아시리즈 준비로 악화돼 최근 자주 병원을 찾아 검진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기술위원회의 대표팀 감독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두 감독 모두 건강이 안 좋긴 마찬가지지만 덜 시급한 사람은 맡아도 된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만일에 하나 김인식 감독이 대회에 출전해 몸이 심하게 나빠진다면 기술위원회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김인식 감독은 베이징올림픽 전인 지난해부터 이번 WBC까지 대표팀 감독직과 관련해 취재진으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아 왔다. 그때마다 "이젠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고사의 입장을 나타냈다.

한 기술위원은 "그 동안 김인식 감독이 고사를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엔 김인식 감독이 희생정신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KBO 기술위원회의 역량과 역할에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베테랑 감독들의 건강 체크를 하는 곳만은 아닐런지.

정회훈 기자 [hoo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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